II. 길 위에서
여행 기록을 정리하다 보니 의미 있게 남는 것 중 하나는 사람과의 추억이다. 오다가다 만난 같은 처지의 여행자이기도 하고 현지인이기도 하고, 몇몇은 아직도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기도 하고 몇몇은 이제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들과 함께 한 추억과 느낌은 생생히 기억난다.
앞서 다른 글에서 언급했던 산에서 만난 친구들 뿐 아니라(https://brunch.co.kr/@walkinmind/16), 길 위에서 만나 친구가 되고 마음이 잘 맞아 즐겁고 뭉클한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 얼굴이 떠오른다. 라오스에서 중국으로 오는 슬리핑 버스 안에서 만나 버스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를 도와주었던 페이비와 토마스가 그랬고, 루앙프라방에서 봉사단으로 와 있던 아키코는 아직도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는 애틋한 친구로 남아있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중국 쿤밍까지 이동했던 24시간 슬리핑 버스(https://brunch.co.kr/@walkinmind/24)에서 만난 페이비와 토마스는 시크하지만 따뜻한 배려가 인상적인 친구들이었다. 셋다 각자 라오스로 여행을 온 여행자였는데, 버스에서 만나 어찌하다 보니 친해지게 되었고 쿤밍에서 하루를 같이 보내게 되었다. 떠올려 보면 그 버스 안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를 돕다 보니 영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두 명의 중국인인 페이비와 토마스가 나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 셋이 함께 뭉치게 될 수 있었던 거 같다.
버스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고 다음날, 아직 해도 뜨기 전인 새벽에 쿤밍 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는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잡아 탄다. 광저우에서 온 페이비와 하이난에서 온 토마스도 쿤밍은 낯선 곳이기에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어 버스를 탔다. 계속 혼자 다녔던 터라 이들이 없었어도 어떻게든 길을 찾아갔을 거지만, 이 두 친구들 덕분에 아무 고생 없이 도심으로 나갈 수 있어 편하게 이동을 했다.
페이비는 2달 간의 휴가를 얻어 동남아시아를 여행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한다. 내가 회사를 관두고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하니, 자신도 원래를 회사를 관두려 했으나 회사에서 2개월 휴가를 주어 여행을 했다고 한다. 내가 "너 틀림없이 굉장히 유능한 직원인가 보다."라고 말하니, "아니야, 보스가 좋아서 그런 거야."라며 겸손을 떤다. 그러나 이틀간 함께 지내본 내 눈에는 페이비는 2개월 휴가를 주면서까지 회사에서 잡아두고 싶을 만큼 똑똑하고 좋은 품성과 태도를 지닌 친구였다. 토마스는 2주일 동안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돌았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갔던 여행 경로와 유사하다. 씨엠립, 돈뎃, 방비엥, 루앙프라방. 지나가다 봤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하는 일을 물어봤더니 '시크릿(secret)'이란다. 알면 다친다며.
상대방이 말하지 않으면 굳이 여행하면서 사적인 질문은 잘 안 묻게 된다. 마음이 맞으면 그냥 친구가 되는 것이지,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여행 중에는 더더욱. 그래서 페이비와 토마스의 나이도 모르지만, 이야기를 토대로 추론해 보건대 페이비는 나보다 어리고, 토마스는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듯했다. 페이비는 겉으로는 과묵하지만 사려 깊게 배려하는 스타일이었다. 토마스는 엄청 유머러스하고, 매 순간 상황을 유쾌하게 만들면서도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멋진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다.
도심 버스역에서 내려 페이비가 스마트폰으로 근처 호텔을 검색한다. 그녀도 배낭여행자였기에 비싸지 않으면서도 접근성이 좋은 곳을 찾았다. 그러고 나서 먼저 기차역으로 가서 다음날 출발하는 기차표를 끊었다. 중국어가 안 되는 나를 위해 페이비가 먼저 나의 따리행 표를 끊는 것을 도와주고 그녀의 광저우행 기차표를 끊었다. 오전 8시, 10시 기차가 있었는데 길도 잘 모르는데 서두르기 싫어 10시 표를 달라 했더니 좌석표는 없단다. 할 수 없이 침대칸 표를 끊는다. 토마스는 다음날 하이난 행 비행기표를 예매해두었던 터라 옆에서 우리를 기다려줬다.
외국인이 중국에서 기차표 끊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이렇게 중국인의 도움을 받아 너무나 쉽게 기차표를 구매하게 되었다. 기차표 예매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페이비가 찾은 호텔로 갔다. 토마스는 혼자 싱글룸을 쓰고, 페이비와 나는 같이 방을 쓰기로 했다. 이렇게 방 잡기도 성공하고, 샤워를 한 후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쿤밍에 국수로 유명한 집이 있다며 빗속을 뚫고 간 곳은 '桥香园(치아오시앙위엔)'이란 곳. 큰 체인점으로 중국 전역에 있단다. 내가 저 글자 뜻 안다며, 'bridge, scent, garden' 아니냐고 물으니, 둘이 날 보며 놀란다. 내가 한국에서도 한자를 배워서 몇몇 글자는 그 뜻은 안다고 말하니 그래도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어도 못하는 애가 문자의 뜻을 아니 놀랍지 않겠는가.
먼저 계산을 하고 테이블에 앉으면 식사가 나오는데, 내가 하도 고마워서 밥을 사겠다고 하며 계산원에게 돈을 내미니 한사코 말린다. 점원에게 주었던 돈을 빼앗아 각자 돈을 계산하게 한다. 토마스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Korean! You make me nervous!" (토마스는 한동안 날 코리안이라고 불렀다. ㅋㅋ)
식사를 끝내고 페이비가 묻는다.
"영, 너 바로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 아님 어디 구경 가고 싶어?"
흔한 대답을 한다. "난 둘 다 괜찮아. 너는?" 페이비도 둘 다 괜찮다고 하고, 토마스도 둘 다 괜찮단다.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이런 상황에서 대답은 똑같구나. 결국 택시를 타고 쿤밍에서 유명한 취호공원에 갔다. 이름은 나중에 알게 된 거고, 나는 그냥 이들이 가는 대로 또 졸졸졸 따라갔다.
호수가 엄청 컸다. 입구에서 토마스가 묻는다.
"여기 호수 주변 걸어볼래? 아님 케이블카 타고 산에 올라가 볼래?"
이번엔 선호가 생겼다. "나는 케이블카 타고 싶은데."
외국인 특별대우로 내 의견을 반영해서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돈을 내려고 하자 토마스가 우선 모든 비용을 자기가 먼저 내고, 나중에 나누잖다. 오케이? 오케이!
날씨가 흐려 호수가 선명히 보이지는 않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엄청 큰 호수이다. 흐린 날씨가 아쉬웠다. 케이블카를 내려 숲길을 따라 내려가 보기로 한다. 거리가 꽤 있어 두 시간가량 걸렸는데, 우리 모두는 사실 이곳에 올지 예상 못하고 샤워 후 동남아에서 신던 쪼리(플립플랍)를 신고 나온 터였다. 밥을 먹고 서로에게 '어디 가든 괜찮아.'라고 했지만, 사실은 모두 밥만 먹고 들어올 생각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쪼리를 가리키며, 우리의 공통된 속마음을 확인하고 셋 다 한참을 웃었다. '쪼리 신고 트레킹'이라며. 그러면서 또 서로를 위로했다. 이게 다 추억이지 않냐며. 이 한바탕 웃음으로 우리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었지만, 오래 만난 사이처럼 한층 가까워졌다.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슬리핑 버스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문득 다음날 따리까지 낮에 침대칸에서 7시간 동안 누워서 갈 생각을 하니, 좀 갑갑했다. 게다가 우리 호텔은 기차역에서 10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였다. 그래서 8시 기차가 좌석이 있으면 그걸로 바꾸면 좋을 거 같다고 한마디 흘렸는데, 나중에 산에서 내려와 택시를 탈 때 페이비와 토마스는 그 말을 기억하고 나에게 기차역으로 같이 가자고 말을 해주었다. 사실 산길을 걷는 것이 예상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거리도 길었기에 (게다가 우리는 쪼리 신고 트레킹) 마지막에는 나도 그렇고 다들 지친 기색이라 기차역에 들러 가자고 말하기가 미안했던 터였다. 그래서 그냥 바로 호텔로 가려고 했는데, 고맙게도 이 둘은 무지몽매한 외국인 여행자를 위해 비 오는 날씨에도 다시 기차역에 함께 들러주었다. 그렇다고 선심 쓰듯 말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나 시크한 방식으로 툭 던지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대했다. 중추절(추석) 전이라 기차역에는 기차표를 구입하기 위한 사람들도 장사진이었다. 그 줄을 보고 표를 안 바꿔도 될 거 같다고 하자, 이 둘은 괜찮다며 나와 함께 기꺼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나 대신 표까지 바꾸어주었다. 나로서는 너무 미안했지만 토마스와 페이비는 싫은 내색 하나 없었고, 토마스는 미안해하는 나를 편하게 해 주려고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띄워 주었다. 그 상황과 그들의 태도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런 그들의 태도에서 감동을 느꼈을 뿐 아니라 진심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숙소에 다시 들어와 휴식을 취한 후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윈난의 맥주인 따리비어와 맛있는 식사를 했다. 오래전 상하이에 갔을 땐 못 봤던 거 같은데, 이번 여행 중 돌아다니며 보니 중국에서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고르면 요리를 해주는 식당이 많았다. 페이비와 토마스와 함께 예행연습을 할 수 있어서 이후 혼자 중국 여행을 다닐 때 헤매지 않고 주문해 먹을 수 있었다.
호텔에 돌아와 토마스에게 오늘 쓴 돈을 계산해서 주려고 하니, 익살맞은 토마스는 영수증을 써서 남겨야 한다며 영수증을 쓰고 증빙 사진을 찍자고 한다. 자기가 돈 받고 안 받았다고 오리발 내밀면 어쩌냐며. 토마스의 농담 덕분에 우리 셋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운 좋게도 버스에서부터 만나 쿤밍에서 하루를 같이 보내게 된 좋은 친구들과 유쾌한 하루를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셋다 하루 전에 처음 만나 서먹서먹할 법도 하고 불편할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죽이 잘 맞고 걸리는 게 없었다. 우리 모두 공통적으로 여행자 신분이었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방인이다 보니 이 친구들에게 분명히 도움을 받는 쪽이었다. 고마움을 표할 방법이 없어 토마스에게는 하회탈 열쇠고리를, 페이비에게는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복주머니를 선물로 주었다. '메이드 인 차이나'일 수도 있는 (아니 그게 분명한) 인사동표 기념품이었지만, 관련한 한국 전통을 설명해주었더니 둘 다 흥미로워했다.
다음날 아침, 11시 기차를 타는 페이비는 자고 있었다. 페이비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히 방을 나가는데, 페이비가 잠에서 깼다.
"안녕! 내가 이메일 쓸게. 더 자."
페이비도 굿바이 인사를 하고 다시 잠든다. 로비에 나가니 토마스가 떡 하니 앉아 있다.
"코리안! 아 유 레뒤(Are you ready)?"
비행기를 타는 토마스는 방향이 다른데도 굳이 나를 데려다주겠다며 자신의 짐을 챙겨 나온다. 마지막까지 토마스의 호위를 받으며 기차도 너무나 편하게 탑승했다. 나는 도대체 뭔 복이 있어 여행 중 이리 좋은 사람들을 만나나 싶나란 생각이 들었다.
헤어진 이후에도 이들과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전했다. 페이비는 중국 여행 중 물어볼 것이나 부탁할 것이 있으면 주저 말고 연락하라며 내게 전화번호를 건네주었고 나중에 홍콩 갈 일 있으면 광저우랑 가까우니 연락하라 했다. 토마스는 매번 내가 이동할 때마다 연락을 취해 내 생사를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가끔 하이난에서 찍은 멋진 풍경사진도 보내주며 하이난으로 오라는 유혹의 손길을 보냈다. 아마도 한국 돌아가서 언젠가는 한 번쯤 갈 날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도 못 가보고 있네. 이번 여행 중 만났던 친구들이 사는 곳으로 여행 다니려면 정말 돈 많이 벌어야겠다 싶다.
루앙프라방에 머물 때였다. 길을 지나다 보니 작은 도서관이 있길래 들어가 본다. 아이들을 위해 영어책을 읽어주고 가르쳐주는 자원봉사자를 구한단다. 루앙프라방에 있는 동안 소일거리로 자원봉사를 하는 것도 좋을 듯했다.
도서관 안에 사람이 없어서, 연결되어 있는 옆 건물로 가 본다. 한 일본 여자가 인사를 한다. 도서관에서 영어 가르쳐주는 자원봉사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어보니 이쪽은 도서관이 아니고 Children’s Cultural Center(C.C.C.)란다. 지금 오전 시간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자세한 것은 도서관에서 문의하란다. 궁금해진 나는 이 곳은 뭐 하는 곳이냐 물어보니 라오스 아이들에게 방과 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라오스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곳이며, 라오스 정부기관과 JICA(Jap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에서 운영하고 있단다. 가끔 외국 문화 체험도 하는데, 마침 다음날(토요일) 아침에 일본 다도 체험이 있으니 관심 있으면 오라고 제안을 한다. 그녀가 자신의 명함을 주었는데 이름은 아키코이고, JICA의 일원으로 라오스에 있은 지 1년 반이 다 되어 간다고 한다. 그녀가 다른 일정이 있어 자세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누지 못했다. 나도 다음날 다른 일정이 없으면 방문하기로 하고 그녀와 헤어졌다. 첫인상이 참 좋았고 친절했으며,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다음날 일찍 서둘러 C.C.C.에 간다. 아키코가 진짜 올 줄은 몰랐다는 표정으로 반갑게 맞아준다. 여행자들 중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 말하고 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금 놀란 듯하다. 아키코가 오늘의 다도 선생님과 그녀의 남편을 소개해 준다. 두 분 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는데, 남편 분 미추이씨께서 JICA의 멤버로 루앙프라방에 오게 되어서 2년 가까이 루앙프라방에서 살았다고 한다. 미추이씨는 국립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시는데, KOICA처럼 JICA도 2년 동안 해외 봉사를 하기 때문에 조금 있으면 라오스를 떠나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아이들이 꽤 많이 모였다. 아키코가 나를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해서 소개의 시간을 갖는다. 아키코가 라오스어로 나를 소개하고, 나보고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란다. 영어로 해도 되냐고 물으니 괜찮단다. 짧게 내 소개를 하고, 나름 이곳이 문화 센터이니까 한국어 인사말,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를 알려주었다. 고맙게도 애들이 함께 따라 해 주었다.
다도 선생님이 걷는 법, 인사하는 법, 차를 음미하는 법 등 일본 다도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아이들이 함께 체험한다. 나도 함께 참여했다. 마지막에 차를 실제로 마시는데 내 입맛에는 좋은 차 맛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조금 쓴가 보다. 한 모금 마시고는 얼굴을 찌푸린다. 체험 교육이 끝나고, 다도 선생님에게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다도가 있다고 하니 자기도 잘 알고 있다며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다도를 열심히 연구하시는 분인 듯했다.
JICA에서 운영하는 곳이니 일본 문화를 가르칠 수도 있겠지만, 혹시 지배적으로 일본 문화만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어 나중에 아키코에게 조심스레 다양한 외국의 문화를 가르치냐고 물어보았다. 주로 라오스의 전통문화를 가르치고 기회가 되면 외국의 문화도 가르치는데, 돈과 인력이 부족하여 다양한 것을 가르치지는 못한다고 한다. 내가 뭔가 재능이 있으면 우리 한국 문화도 가르쳐주면 좋으련만, 시간 부족과 나의 재능 부족이 아쉬웠다. 그래서 루앙프라방의 KOICA나 한국 사람들을 통해 한국 문화를 전할 기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키코에게 넌지시 제안했다. 아키코가 내 의중을 파악하고 웃으며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토요일은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라 제일 바쁜 날이라 했다. 아키코도 나도 서로 더 대화를 하고 싶어 차주 화요일에 내가 한번 더 방문하기로 했다. 언제 방문하는 게 좋겠냐고 편한 시간을 물으니, 아무 때나 오란다. 내가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오전이 아키코에게 펀한 시간 아니냐고 하니, 어떻게 알았냐며 웃는다. 사실은 오전이 자기에게는 한가한 시간이지만, 루앙프라방은 더워서 오전이 관광하기 좋으니 놀러 다니다 지친 오후에 와서 쉬어 가라고 했다. 배려가 깊은 친구임을 다시 느낀다.
화요일에 오전에 방문했더니 아키코가 부재중이다. 다른 볼 일을 보고 늦은 오후쯤 들렀더니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다. 아키코가 저 안쪽에서 한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 밖에 의자에 앉아서 기다린다. 아키코가 나를 봤는지 나와서 반갑게 맞아준다. 아까 센터에 있었던 어떤 사람이 내가 들렀던 걸 전했나 보다. 나와 엇갈려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며 다시 와줘서 고맙다고 한다. 나도 아키코를 다시 보게 되어서 너무 반가웠다. 그녀가 피아노 레슨이 끝나려면 20분 정도 더 걸린다며 기다려줄 수 있겠냐 했다. 마침 아이들이 전통 라오 춤을 연습한다길래 구경을 하며 기다리면 좋을 듯했다. 토요일에 나를 보고 기억하는 아이들이 인사를 해왔다. 아이들이 제법 진지하게 춤을 잘 추었다. 가끔 방송국에서 촬영도 나온다고 한다. 덕분에 라오 전통 춤도 구경할 수 있어 지루하지 않은 기다림이었다.
마침내 아키코가 피아노 레슨을 끝내고, 보여줄 게 있다며 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간다. 피아노에 새겨진 로고를 가리키며 이 회사를 아냐고 물었다. 내가 웃으며 한국의 건설회사 중 하나라고 이야기해주고 한글로 쓰인 '사랑으로'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아키코는 자기가 피아노를 가르치며 늘 궁금했었다며 이제야 의문이 해소되었다는 듯이 웃었다.
마침 아키코의 근무 시간이 끝나 아키코도 가방을 챙겨 나왔다. 야시장 거리에 있는 노상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묻고 답했다. 아키코는 일본 중학교의 영어 선생님이라고 한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지만, 행정 일이나 부모들 상대하는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 친구들 중 선생님이 많은데 그들도 그런 비슷한 말을 한다고 전했더니 극 공감을 표한다. 나중에 해외에 나와서 일하고 싶어서 JICA를 자원했단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라오스어를 잘하는 것 같아 어떻게 배웠냐 물으니, 라오스에 오기 전 일본에서 3개월 정도 교육을 받고, 라오스 비엔티엔에 와서 또 한 달간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단다. 그리고 1년 반 정도 이곳에 살다 보니 자연히 늘었지만, 아직도 이해 안 되는 말이 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영어 선생님이 어떻게 피아노도 가르치냐고 물으니 자기도 기초만 가르칠 수 있다며 겸손을 떤다. C.C.C.가 라오 전통문화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이것저것 가르친단다. 일종의 방과 후 교실 같은 개념이다. 그걸 혼자 다 하냐고 물어보니, 자원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나 같은 여행자를 보면 막 잡고 싶어 진다고... 가끔 찾아오는 각국에서 온 외국인 여행자들이 봉사에 참여하기도 한단다. 그런 면에서 자기는 운이 좋다고 한다. 맑은 영혼에서 나오는 진심이 느껴지는 말과 눈빛이었다. 마침 석양이 그녀의 얼굴을 비춰 영혼의 따스함이 발산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도 아키코에게 진심을 담아 말해 주었다.
“네가 운이 좋은 게 아니라, 너의 선한 열정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거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 정도가 흘러 내 선약 시간이 다 되었다. 라오스에서 만난 다른 친구와의 약속이 있었다. 내가 선약이 없다면 자신의 집으로 가서 밥을 같이 먹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하는 아키코의 말에 나도 무척이나 아쉬웠다. 나중에 아키코가 일본에 복귀하고, 나도 이 여행을 끝내고 나면 나중에 아키코의 고향인 야마가타나 내가 사는 서울이나 어느 곳에서 다시 보기로 약속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도 여운이 많이 남았다. 장기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아도 서로 통한다는 느낌이 오는 사람이 있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고, 무슨 말을 해도 그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은 그런 사람, 그리고 더 알고 싶어 지는 그런 사람, 일종의 소울메이트 같은 그런 친구 말이다. 아키코가 그런 사람이었다.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일본 친구, 아키코. 루앙프라방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상이 다른 것도 아니고 일본인 아키코가 될 만큼 그녀는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내 여행 중에 그리고 아키코가 일본으로 복귀해서도 가끔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서 메시지를 보냈더니 반가운 인사를 전해왔다. 안 그래도 주말에 단골 한국 음식점에 간다며, 한국 음식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삼겹살과 파전 그리고 막걸리 사진이었다. 나중에 아키코네 방문하게 되면 함께 가보고 싶다.
이 여행 이후 바뀐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나는 사람을 사귐에 있어 그 사람의 배경이나 신분보다는 그 사람의 본질 또는 나와 얼마나 가치나 취향이 맞는지에 더 많이 집중하는 듯하다. 길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는 것은 더더욱 그런 가치에 집중했을 때 가능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사람이 어느 지역 출신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는 사람을 사귐에 있어 크게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그리고 관계의 시간성에도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꼭 오래 알고 지내야 친구는 아니다. 사람은 변한다. 따라서 관계도 변한다. 10년을 알고 지냈어도 더이상 잘 맞지 않아 멀어지는 사람이 있고, 최근에 만났지만 10년을 만난 듯 찰떡같은 호흡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찰떡같은 호흡을 자랑하던 관계도 몇 년 뒤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일에서도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Here & Now)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원칙을 따르다 보면 만나고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이 걸러지는 것 같다. 즉, 만나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이 안 되는 사람이 걸러진다. 예를 들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든지, 나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든지, 에고(ego)로 똘똘 뭉쳐 있다든지... 내 컨디션이 최악이 아닌 이상 나는 사람을 만나면 집중을 잘하는 편인데, 내 마음 속 주의가 산만해지는 경우는 대개 이런 경우였던 것 같다. 어쨌든 사람을 사귀고 친구가 되는 데 있어 좀 더 간결한 원칙이 세워지고 더욱더 본질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내 삶을 더 충만하게 만드는 것 같다.
호도협에서 함께 걸으며 친구가 된 차오의 말이 떠오른다.
"우린 지금 친구야. 길에서 만나도 친구고, 비록 한 시간을 만나도 서로 도우면서 친구가 되는 거지. 너도 당연히 우리 친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