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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거닐다 Feb 10. 2020

달과 6펜스 - 서머셋 몸



읽은 시기: 2012년 12월 장기 여행 중. 내 삶을 변화시킨 그 여행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이렇게 재미있고 감동스럽게 읽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재미있게 읽기 위한 tip:  초반에 화자가 가지고 있는 주인공 스트릭랜드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서술한 부분이 살짝 지루한데, 그 고비만 넘기면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됨. 화가인 폴 고갱의 삶을 모티프로 서머셋 몸이 쓴 소설이다. 읽고 나면 폴 고갱의 삶과 예술이 궁금해진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소설로, 인간에 대한 서머셋 몸의 통찰이 빛난다. 


제목 <달과 6펜스>의 의미와 상징:  둘 다 동그랗고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지만, 상반된 의미를 갖고 있음. 달은 저 멀리 잡을 수 없는 이상, 상상의 세계, 열정을 상징하고, 6펜스는 당시 가장 낮은 가치를 지닌 화폐단위로써 현실, 돈과 물질의 세계, 관습과 타성적 삶을 상징한다. 제목을 통해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 대해 생각하게 됨. 물론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달을 선택할 수도, 6펜스를 선택할 수도, 또는 둘의 균형을 맞춰나갈 수도 있는 일이다. 


추천대상: 관습적 삶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 열정적 삶이 목마른 사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막막한 사람, 자신이 이방인 같다고 느끼는 사람 등


내가 꼽은 이 책의 킬링 포인트는 다음 세 가지이다. 


1. 사람의 이면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자기만의 고정관념으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법!


그의 부인과 주변 사람의 묘사에 따르면 예술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증권 중개인인 찰스 스트릭랜드가 사실은 미술에 그토록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다. 우리는 자신만의 또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고정관념에 따라 타인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이면에 어떤 또 다른 모습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낮에는 선생님으로 일하지만, 밤에는 밴드 드러머로 일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밤에 댄서로 일하는 사람이 낮에는 사서로 일하고 있을 수도 있다. 

중년의 스트릭랜드가 집에 편지 한 장만 남기고 홀연히 떠났을 때, 사람들은 자기만의 고정관념으로 이유를 추론하려 든다. 부인이나 주변 사람은 그가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났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떠났다는 것을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트릭랜드 부인인 에이미는 사교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집에 문인이나 화가, 음악가 등 예술가를 초대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를 두고, 화자와 화자의 지인이 나눈 이야기이다. 

“그분(스트릭랜드 부인)에게 남편은 있습니까?”

“그야 있고말고요. 시내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다나 봐요. 아마 증권 거래소 중개인일 거예요. 그런데 굉장히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부부 사이는 좋은가요?”

“너무 좋아서 깨가 쏟아지요. 만찬회에 초대받으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만찬에 초대하는 일은 여간해선 없어요. 어쨌든 그 집주인은 아주 말수가 적은 데다 문학이나 미술에는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훌륭한 여성이 어째서 그렇게 무취미한 사람을 선택했는지 모르겠군요.”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여러 측면의 모습을 갖고 있다. 굳이 타인들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나의 일면만 가지고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판단하려 드는 사람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나 또한 스트릭랜드를 떠올리면서 사람을 일면만 보고 판단할 때가 있지 않은지 반성하게 된다.


2.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열정의 경이로움


스트릭랜드 부인의 청을 받고, 화자인 나는 스트릭랜드가 왜 런던에서 파리로 홀연히 떠났는지 알아보러 간다. 스트릭랜드를 만나 어떻게 가족을 버리고 그렇게 떠날 수 있는지 묻고, 그 나이에 화가가 되겠다고 모든 걸 버린 그의 행동이 너무 모모한 것이 아닌지 묻는다.


“그럼 당신이 앞으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삼류 화가밖에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래도 모든 것을 버린 만큼의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시겠습니까? 그것이 다른 직업의 경우라면 그렇게 뛰어나지 않더라도 별로 상관없습니다. 다만 그 일을 해낼 만한 힘이 있다면 얼마든지 훌륭하게 해낼 수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예술가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정말 당신은 바보로군요.”

“아니, 나는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데, 뭐가 바보란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지 않다고 하지 않았소. 이 마음은 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거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를 따지고 있겠소? 어떻게 해서든지 물속에서 빠져나와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 것 아니오.”

그의 목소리에는 강한 정열이 담겨 있었으므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감동했다. 폭풍우 같은 것이 그의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말하자면 뭔가 강하고 압도적인 힘이 그를 옴짝달싹도 못하게 꽉 잡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열정을 따르는 편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누구에게나 그 길을 따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열정을 가지고 이상을 좇든 현실을 쫓든 또는 그 둘의 밸런스를 적절히 맞추든 그건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그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솔직하고, 선택에 뒤따르는 것을 감수할 용기와 책임을 강조하고 싶다. 적어도 스트릭랜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3. 누구도 타자의 존재를 규정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


이 소설에서 주되게 다루는 내용은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지점이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태어난 곳에서도 마냥 낯선 곳에 온 사람처럼 살고, 어린 시절부터 늘 다녔던 나무 우거진 샛길도,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바글대는 길거리도 한갓 지나가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가족들 사이에서도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고,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보아온 주변 풍경에도 늘 서먹서먹한 기분을 느끼며 지낼지 모른다.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또는 격세유전(隔世遺傳)으로 내려온 어떤 뿌리 깊은 본능이 이 방랑자를 자꾸 충동질하여 그네의 조상이 역사의 저 희미한 여명기에 떠났던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그는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그들이 죄다 태어날 때부터 낯익었던 풍경과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정착하고 만다. 마침내 그는 이곳에서 마음의 안정을 발견하는 것이다.


머나먼 타이티 섬에서 평화를 얻고 삶을 마감한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를 듣고, 화자인 내가 문득 든 생각에 이어 의대생 친구 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한 친구인 아브라함은 의대 시절부터 굉장히 뛰어난 수재로 앞날이 보장된 친구였다. 휴가를 떠나 잠깐 화물선의 의사로 일을 하다 우연히 내린 알렉산드리아란 곳에 매료되어 그는 돌연 사표를 낸다. 모두 놀랐지만, 그의 이야기는 잊히는데, 10여 년 뒤 우연히 화자와 만난 아브라함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휴가 때 잠깐 일하던 배가 당도한 알렉산드리아에서 그의 마음에 마술처럼 변화가 일어났다고. 벅찬 환희를 느꼈는데, 그것은 힘껏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해방감이었다고. 


“남이야 뭐라고 생각하건 상관할 바가 아니었어. 내가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더 강력한 힘이 발동한 거야. 사방을 둘러보다 아담한 그리스인의 호텔로 갈 생각을 했지. 그러자 그 호텔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만 같더군. 글쎄. 이상하게도 나는 그곳까지 한 번에 찾아갔다네. 그리고 호텔이 눈에 띄자 곧 ‘아아, 저 집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니까.”

“알렉산드리아엔 처음이었던가?”

“그럼,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영국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간 일이 없었지.”

“후회해 본 적은 없나?”

“물론이지. 조금도, 살아갈 만한 정도의 수입은 벌고 있으니 아무 걱정이 없네. 죽는 날까지 이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야. 이곳 생활은 아주 멋있다네.”


그리고 화자인 나는 알렉산드리아를 떠났고, 아브라함에 대한 일은 잊었지만 얼마 전 또 다른 친구인 알렉 카마이클을 만나 이야기하던 중 아브라함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알렉 카마이클 역시 의사로 기사 작위를 받았는데, 그의 입에서 아브라함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나도 꽤 노력은 했다고 보지만, 그러나 이 성공도 사실상 조그만 행운에서 시작된 것일세.”

“그건 또 무슨 뜻인가?”


무슨 이야기인가 궁금해하는 나에게 알렉이 말을 이어나간다. 너무나 뛰어났던 아브라함이 돌연 사표를 내는 바람에 자신에게 그 자리가 돌아왔고, 행운이 시작된 것이라고. 그리고 덧붙인다.


“정말 호박이 넝굴째 굴러온 셈이지. 아무래도 아브라함에겐 좀 특이한 면이 있었던 것 같아. 정말 딱한 사람이야. 완전히 바닥으로 처지고 말았으니, 그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말이 의사지 완전 형편없는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야. 뭐 검역관이라든가. 들리는 말에 의하면 늙고 볼품없는 그리스 여자와 같이 사는데 선병질의 아이들이 대여섯이나 된다는군. 정말이지 사람이란 머리만 좋아도 소용없어. 문제는 인격이야. 아브라함에게는 그게 없었어.”

인격이라고? 아무리 다른 생활에 사는 보람을 느꼈다고 해서 30분 남짓의 생각으로 자기 일생의 경력을 내던진다는 점에 있어선 역시 상당한 인격의 힘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뿐만 아니라 그런 파격적인 전환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점에선 보다 강한 인격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잠자코 있었다.

“물론 아브라함이 취한 행동을 내가 아쉬워하는 표정이라도 짓는다면 그건 위선이겠지. 결국 나는 그로 인해 덕을 본 셈이니까.” 그는 피우고 있는 코로나 담배 연기를 기분 좋게 뿜어냈다. “그러나 나 개인의 입장을 떠나 생각하면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다니 한심하다고 생각하네. 그 친구처럼 일생을 허무하게 끝낸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노릇이야.”

나로선 과연 아브라함이 그가 얘기하는 것처럼 일생을 망친 것인지 의심스럽다. 자기가 바라는 것을 실행하고 자기가 만족하는 환경 속에서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일생을 망친 것이 될까? 연수입 1만 파운드의 유명한 의사가 되어 미인 마누라를 얻어 사는 것이 성공일까? 요컨대 그것은 자기가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며, 사회가 부과한 자기에 대한 요구를 어느 정도 인정하느냐에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쨌든 상대방은 훈작을 받은 사람이니까, 나 같은 사람이 왈가왈부한 일은 아니다. 


주인공인 화자가 이 일화를 삽입한 이유는 자신만의 고집으로 자신만의 삶을 선택한 스트릭랜드를 옹호하기 위해서인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스트릭랜드는 괴팍하고 극단적인 면이 있으니까...  달과 6펜스를 상징하는 다른 보통의 인물의 이야기를 삽입함으로써 주제를 더 명확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나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로 시작하는 이 구절이 마음에 든다. 우리는 생득적으로 타고난 것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압력을 받는데, 그것에 대한 반문으로 위로를 건네는 문구이기 때문이다. 종종 나를 만나러 오는 내담자(client) 중 이 사회에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변, 특히 가족들은 그런 자신에게 왜 적응하지 못하냐며,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내담자들은 그런 반응에 자신이 정말 문제 있는 사람일까 고민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이 구절은 언급하며, 당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주곤 한다.


이 내용은 비단 태어난 지역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더 넓게는 생득적 성별을 비롯한 여러 조건에 적용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적어도 어떤 누구도 알렉처럼 타자의 존재를 규정하거나 판단할 권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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