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팔순 기념으로 떠난 보라카이. 보라카이 바다를 보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이 사람들은 매일 이런 자연을 보며 살아가겠지. 눈부시게 빛나는 에메랄드 바다와 야자수는 너무나 비현실 적이었다. 바닷가 백사장에서 보트 투어 아저씨와 가격흥정 끝에 성사된 내일의 여정. 아저씨가 못믿어워 팔로우 한 인스타그램 속 그는 우울했다.
그가 물었다.
“왜 한국인 투어 안하고 필리핀 투어 해요?”
글쎄, 나도 모른다. 여기까지 와서 한국인들끼리 다녀야 하나 뭐 이런 생각이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새벽부터 호객행위를 했고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에서 전등하나 겨우 켜고 살고 있었다. 배 투어를 하며 점심을 먹으러 잠시들린 섬에서는 대나무로 어설프게 만든 다리를 건너 쓰레기가 난무하는 숲을 지나 어설프게 정리된 헛간 같은 곳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마을의 어린이들이 여행 온 부유한 필리핀 사람과 외국인들에게 과자를 사 달라고 조르거나 돈을 요구했다. 저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구나. 신분이 너무나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보라카이 사람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 조차 없어 보였다. 그저 오늘만 잘 살아내면 되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보라카이 하면 떠 오르는 황홀한 바다 뒤에는 너무나 가난하게 살아가는 보라카이 사람들이 있었다. 멋진 바다 풍경이 무슨 소용일까. 더러운 섬에 사는 배 사장님, 예쁜 해변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아저씨, 그들의 손에 이끌려 온 손님들을 배에 나누어 주는 선착장의 찐 여행사 사장님, 이것이 필리핀 투어였다. 손님도, 배 사장님과 해변의 삐끼도 필리핀 자본주의에 놀아나는 느낌이었다. 너무 예뻤던 바다보다 보라카이 원주민들이 기억에 남았던, 시어머니의 팔순 여행 이었다: 에메랄드 빛 바다 뒤에 숨겨진 그림자; 보라카이 사람들
번외:
(우리 시어머니는 수영을 너무 잘 하셔서 그 나이에 핀을 끼고 바다 위를 날아 다니셨다. 나와 우리 남편은 그런 시어머니를 안전상의 이유로 잡으러 다니느라 너무 힘들었다. “어머니, 거기로 가시면 안돼요~! 그쪽으로 배가 오고 있어요~!” 배 밑으로 들어갈 뻔 한 시어머니를 남편이 구해 왔다. 물론 다른배도 우리 시어머니를 보고 있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