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지 않고 사는 법
어릴 적 솔로몬 동화책을 읽으며 신께 기도했던 적이 있다. ‘저도 솔로몬 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기도가 이루어 졌을까?
나를 숨기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산 적이 있었다. 내 생각은 있어도 발설하지 않았고 남이 좋은대로 살았다. 항상 자아가 있었는데 2017년 회사의 기획부서에서 일하면서C-Level임원을 위한 보고서를 쓰면서 부터 조금 더 극단적으로 나를 숨겼었던 것 같다. 상식적인 내용이 아닌 정치적이고 개인의 욕심이 향하는 방향으로 작성되는 보고서를 영혼 없이 작성하기에는 내 성격이 이를 뒷받침 하지 못했었다. 비밀이 많았기 때문에 입도 다물어야 했고 사람들과 만나는 일 조차 눈치가 보였다. 유일하게 나를 잡고 산 건 주말에 하는 공부 였다. 닭장같은 학원에서 따닥따닥 붙어 공부하는 주말이 싫었지만 유일하게 나를 증명하는 삶이 었기에 싫은 내색 없이 공부 했었다. 공부는 나를 위해 하는 것이었지만 이 또한 스트레스 였다. 여기에 남편이 가세했다. 외도를 한 것이다. 내 삶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가 부터 내가 누구인가,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간 나를 찾고 싶었다.
나를 숨기는 일은 처음 해 본 것은 아니었다. 독일이나 영국에 있을 땐 나를 숨기지 않았다. 어릴 적 경험했던 좋은 기억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언어 구조의 차이 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한국은 늘 ‘우리’였고 나는 그 속에서 의견을 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우리’에 동화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 마다 자아가 없어지는 경험을 했었던 것 같다. 독일에서 돌아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도 내가 없었는데 커서 독일에 다시 돌아갔을 때 살아있음을 느꼈던 기억은 아주 뚜렸했다. 한국에서 취직을 하고 조금은 답답했지만 항상 자아를 숨기지는 않았는데 17년부터 시작된 극단적 타인의 삶을 살아보니 이렇게 살면 큰일 난다는 사실을 알려야 겠다 싶었다.
내가 없어 졌는데 남편도 그 자리에 없다 보니 비현실 그 자체 였다. 남편이 외도한 여자는 심지어 필리핀 여자 였는데 나랑도 가지지 못한 애를 배었다고 했다. 그 사건이 한참 지나서 제 정신으로 글을 쓰며 하는 말이지만 그 필리핀 여자는 남편의 돈을 노리고 접근한 범죄자 였고 그 아기도 남편의 아기가 아닌 임신한 상태에서 남편을 유혹했다고 한다. 다시 내가 나를 잃어버린 그 이야기를 돌아가서, 잘 먹고, 잘자고, 운동하는 것, 하루를 단순하게 살아내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죽을 것 같아서 정신과에 전화하니 2주 뒤에나 예약을 잡을 수 있었는데 오늘 죽으면 어떡하라고 이렇게 예약을 받나 싶었다.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어쩌면 유학시절 죽으려고 한참을 고민했던 그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쁜 생각으로 가득했던 그 새벽이 아니었다면 내가 나를 견디는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 예약은 예약이고 일단 운동화를 신고 미친년처럼 울며 달렸다. 몸을 움직이면 전두엽이 활성화 되고 전두엽은 도파민이라는 신경물질을 만들어 우울감을 견딜 수 있게, 오늘은 살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기다려 간 정신과에서 선생님은 내게 뭔가 하려고 안해도 된다고,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고 이렇게 지내라며 항 우울제 처방을 해 주셨다. 우울제를 처음 먹어봤는데 신기하게도 슬프지 않았고 하루가 견딜만 하게 흘러갔다.
지금은 부서를 옮겨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남편을 신뢰하기 까지 몇년이 걸렸지만 나도 남편도 이 계기로 서로 잘 지내고 있다. 내 몇 안되는 친구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같이 울어 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솔로몬에게 구한 지혜는 어쩌면 뇌를 이해하는 일이었지 않았을까? 감정과 느낌에 대한 이해. 이렇게 짧은 글로 나를 잃지 않는 법을 다 이야기 할 수 없고 각자가 다르기 때문에 꼭 이 방법이 잘 맞다고 말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살면서 내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올바로 사고할 수 있도록 잘 먹고, 잘자고, 운동하는 심플한 삶을 살아 볼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내가 일상을 찾은 후에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도 해보고, 내가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게 소통하며 살아가는 것이 다음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블로그에 일기를 썼다. 가끔 눌리는 좋아요, 또는 댓글은 위로가 되었다. 그러다 가족에게 블로그가 들통나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엄마가 글을 읽고 간섭하며 전화오는게 싫었다. 아직도 엄마는 학부형인 줄 안다. 나는 어른인데. 그래서 어쩌다 보니 내가 쓰는 글이 이원화 되었다. 블로그는 화이트, 브런치는 블랙 이런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회사에서는 책임을 다 해서 일 하되, 절대로 업무가 나 보다 우선시 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처음 입사 했을 때 선배님들이 일을 열심히 안하는 것같아 실망했었는데 지금은 왜 그렇게 하셨는지 이해가 된다. 일을 너무 잘 하지 않아도 괜찮다. 학교다닐 때 처럼 잘 하지 않아도 괜찮다. 사장님이 보시면 인상을 찌푸리시겠지만 좀 놀면 안되나요? 일 빵구 내는 것도 아닌데요. (창의력은 멍 때리는 곳에서 나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