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전쟁시대의 미국 미디어기업의 존망
최근 몇년간 미국 거대 미디어기업간 인수합병이 활발했습니다. 그중 가장 최근에 워너브라더스(타임워너)와 디스커버리가 2022년 4월에 합병을 단행했었죠. 워너브라더스는 미국의 최대 통신회사인 AT&T가 최대 방송 미디어 중하나인 타임워너를 2016년 인수하면서 (공식적으로는 독과점 소송 판결에서 승소한 2018년 6월 인수합병 승인) AT&T 산하에 방송부문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후 2022년 4월 AT&T가 타임워너를 디스커버리에 재매각하면서 합병법인으로 <워너브라더스디스커비리(이하 WBD)>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WBD 산하에는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한 HBO와 라이브 뉴스의 CNN을 필두로, 방송사 CW, DC코믹스, 카툰네트웍스, 워너브라더스 픽처스, 뉴라인시네마 등 워너브라더스 계열 미디어 기업과 디스커버리 채널, 애니멀플래닛, 사이언스채널, TBS, TNT 등 유명 채널들이 포진해있고, OTT로는 HBO Max, Discovery+, CNN+ 등을 두고 있는 미디어 그룹이죠.
부진한 실적
WBD는 지난 22년 4월 합병 이후 첫 분기 실적에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2분기 98억 달러의 매출로 전년 동기 대비 3% 감소했으며 시장 예상치인 118억 달러에 못미쳤습니다. OTT인 HBO Max와 Discovery+도 가입자가 170만명 증가에 그쳐 9,210만명을 기록, 1위 사업자인 넷플릭스의 2억2천만명에 크게 못미치는 규모 상황에 봉착했죠.
합병시 떠안은 부채
WBD는 AT&T의 워너미디어 사업부와 디스커버리사의 지난 합병과정에서 550억달러 (한화 약 71조 4,300억원)의 부채를 떠안고 있습니다. 앞으로 비용이 많이 들수 밖에 없는 스트리밍 전쟁에서 Netflix나 Disney+와 같은 거대 기업과 경쟁하면서 빚을 갚아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기도 하죠.
합병으로 인한 비용절감 기대
또 회사는 비용 절감에 대한 월스트리트의 기대에도 직면하고 있습니다. WBD 두 회사간 합병으로 인해 약 30억 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비용감소를 위한 전사적 노력
경영진은 그일환으로 CNN+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선언하였습니다. CNN+는 3억달러 (약 3,900억원)을 투입해 지난 2년간 준비한 대평프로젝트였습니다. 고퀄러티 뉴스와 여행, 음악, 역사 등의 다큐멘터리, 뉴스 오디언스와의 상호교감을 목표로 '새로운 방송 뉴스 구독 모델'을 꿈꾸며 시작한 서비스였죠. 하지만 경영진은 과감하게 비용절감과 경쟁력 통합차원에서 이 서비스를 폐지했습니다. 또한 9,000만 달러(약 1,170억원)을 투입해 촬영을 마친 영화 '배트걸'의 개봉 계획을 철회하고 해당 영화를 개봉하거나 스트리밍도 하지 않고 폐기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통상 제작비의 20~30% 이상 소요되는 마케팅 비용조차도 아깝다고 경영진이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유료구독 OTT 성장 정체
10억명의 유료구독자를 가입시키겠다는 포부를 펼쳤던 OTT 시장 1위 Netflix는 최근 글로벌 구독자 2억 2천만명에서 성장 정체를 맞았습니다. 22년도 1분기에 처음으로 가입자가 감소하였고, 2분기에는 그폭이 커졌습니다. 시장에서는 OTT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짐에 따라 오디언스가 수용가능한 OTT가 이미 포화 상태에 달하지 않았나 우려하고 있습니다. WBD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내 OTT시장 1위 사업자인 넷플릭스는 올해 1분기 10년 만에 처음으로 구독자수가 줄어든 데 이어 2분기에도 구독자 수가 감소했습니다. 넷플릭스는 2분기 실적 발표에서 구독자가 2억 2,067만명으로 전분기보다 약 97만명 줄었다고 밝혔죠. 애당초 시장이 예상하던 200만명 규모의 감소는 아니지만 넷플릭스의 성장 정체는 곧 OTT시장의 성장한계를 확인한 것 같다는 시장의 중론입니다. 덕분에 넷플릭스의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가 절대 광고를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뒤집고 내년까지 광고기반의 무료 서비스 상품을 선보이기로 하고 MicroSoft와 광고판매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WBD는 1분기 HBO Max와 케이블 HBO의 글로벌 가입자가 7,680만명으로 전분기 대비 300만명이 증가한 수치를 달성했지만, HBO Max와 Discovery+의 글로벌 합산 가입자는 직전 분기 대비 170만명 늘었지만 1분기 500만명 증가세 보다는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상황이죠. 이 수치 또한 시장 1위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죠.
2022년 8월 4일 WBD는 투자자들에게 무료 OTT 서비스를 2023년 여름부터 선보인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유료OTT 가입자를 2025년까지 1억 3천만명을 달성하겠다고도목표를 세웠죠. 유료구독자 베이스의 OTT외에도 광고기반의 무료 OTT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은 이미 미국의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하고 있다는 판단에서인 것 같습니다.
시장조사 업체 칸타(Kantar)의 영국시장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1분기 150만명 이상이 유료 스트리밍 구독을 해지했는데 그중 38%가 스트리밍 서비스에 들어가는 "돈을 아끼고 싶기 때문"이라고 응답하였다고 합니다. 시장에서는 OTT서비스에 대해 유료로 가입할 의사를 지닌 유효수요가 예상보다 훨씬 적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광고기반의 무료 OTT가 포화된 유료 OTT시장을 바꿀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료구독기반 OTT가입자가 포화상태이고 OTT 구독경쟁이 치열하다고 하지만 광고기반 무료 OTT는 OTT가 효과적인 광고 매체라는 인식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광고로 충당할 수 있는 시장내 광고주의 예산 규모와 지불의사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는지 여부와 시장내 경쟁상황이 시장 진출의 유효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시장내 OTT 수용력
리니어TV시장이 지속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거대 미디어 사업자들은 자사가 보유한 스트리밍 및 비디오 인벤토리를 기존 TV광고와 묶어 세일즈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고주 입장에서는 이 같은 광고 기반 OTT 광고 패키지에 대한 효과성을 집행 전반에 걸쳐 확인하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광고주들은 패키지에 포함된 광고기반 OTT 자산이 과도하게 프리미엄이 책정되어 있다고 보고 있으며 독립 광고기반 OTT인 Pluto TV, Roku Channel, LG Channels, Samsung TV Plus 등에 비해 비용대비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는 상황입니다.
통상 케이블 광고 CPM이 10~12달러 정도 이지만 TV와 패키징 되는 스트리밍 광고의 CPM은 20~30달러로 훨씬 높게 책정되어 있거나 이보다 더 높은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광고 경쟁
이미 디지털동영상을 제공하면서 광고기반의 무료 영상을 제공해주는 사업자와 서비스는 상당부분 디지털광고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 유료와 무료 서비스를 차별화하여 운영 하고 있으며 유튜브를 필두로 Fox가 소유한 Tubi, Hulu, Pluto TV, Roku, Peacock, Xumo, LG, Samsung 등 쟁쟁한 광고기반 OTT 서비스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기존 리니어 TV 방송사업자들도 광고수주에 사활을 걸고 시장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HBO Max와 Discovery+를 통합한 무료 기반 OTT가 왕좌의 게임 같은 강력한 콘텐츠IP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전적으로 광고시장에 뛰어 들어 일정 지분을 확보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대규모 제작 투자의 지속 가능성
Netflix가 미디어 동영상 시장의 경쟁 구도를 새롭고 신선한 그리고 강력한 신규콘텐츠의 우선 확보라는 기준을 중심으로 재편한 이래 제작비는 이미 2배 이상 상승하였습니다. 소위 가장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방영하기 위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제작비 투자가 지속되어야한다는 공식이 확립된 상황입니다. WBD가 인기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뒤를 이을 <House of Dragon> 출시를 예고 하고 있지만, 이 시리즈로 얼마나 많은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을지, 광고비를 얼마나 책정해서 받을 수 있을지,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투자를 광고비만으로 지속 충당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WBD가 고민하는 것이 오롯이 WBD만의 고충은 아닐 것입니다. 미국시장내, 한국시장내에서도 1~2위 사업자가 아닌 방송사, 제작사, OTT가 똑같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인수합병이 비교적 용이한 미국 미디어 시장에서는 WBD가 생존을 위해서는 새로운 합병을 시도해야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서 제공하는 서비스이 원가율을 낮추고 시장내 경쟁력을 확보해야한다는 의미이겠지요. 이러한 도전은 또 다른 사업자인 미국의 Paramount도 지속적으로 요구받고 있는 도전입니다. 리니어 TV 시장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뿐 아니라 콘텐츠소비의 판도가 이미 OTT로 넘어가고 CTV가 전체 시장의 40%이상 시청점유를 가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방식의 스트리밍 콘텐츠 제공 확대가 시청자에게 선택받을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유료와 광고사이의 고민도 깊어지는 것이겠지요.
한국은 미국시장과 달리 미디어의 겸영과 소유에 대한 정부와 법의 규제가 강력하기 때문에 쉽게 인수 합병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한 그리고 OTT광고의 수용력이 높은 한국이지만 방송사업자나 제작사가 느끼는 체감율은 미국의 그것과 현저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OTT가 방송과 광고시장의 메인으로 등장하고 CTV로 시청행태가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케이블TV와 IPTV만으로 송출되는 리니어 TV시장에 안주하고 있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미국에서 발생한 트렌드가 통상 한국에 반영되기까지 2~3년 걸리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금 이자리가 계속되리라고 믿고 있다면 아무 준비 없이 사막에 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을까요?
최근 네이버와 협력하여 가입자를 급속도로 늘리고, 시즌과 합병을 통해 2위 사업자로 변화하고, KT의 프리미엄 상품군에 가입자를 유치할 기반을 마련하면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TVing의 움직임이 단순히 로컬시장에서의 단순한 시도라고 보기에는 선행시장인 미국에서의 변화가 심상치 않습니다.
TV 5사 (KBS, MBC, SBS, CJENM, Jtbc)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요? 좁은 국내시장에서 눈앞의 매출경쟁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요? 미래를 뒤바꿀 시장의 변화에 이제는 눈을 돌리고 행동을 옮겨야하지 않을까요? WBD의 고민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곳이 살아 남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