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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업체들은 과연 유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AI시대의 역설 : 데이터마이닝과 창작의 그림자

by Jake공원

아르헨티나 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매혹적인 단편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성서 속 배반자 유다 이스가리옷을 세상이 보는 방식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인류 구원을 위한 신의 계획 속에서 예수의 죽음이 필연적이었다면, 예수를 팔아넘기는 유다의 행위 역시 그 신성한 계획의 일부였고, 예수가 세상의 모든 이를 대신해서 희생한 것처럼 유다도 누군가는 '배신을 해야 하는 신의 계획 속에서' 세상의 누군가를 대신해서 희생했을지도 모르며, 그래서 '유다의 배신행위는 신성하다'는 역설적 해석은 충격적이면서도 깊은 사유를 이끌어냅니다.


하위 질서는 상위 질서를 반영해야 하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낮추어 세상에 죄를 졌듯이 그의 제자 유다 역시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의 아들을 팔아넘긴 불명예스러운 밀고자가 되었다는 주장, 혹은 '배신자'라는 그 큰 비난을 자처하며 지옥행을 택한 무한한 금욕의 화신이었다거나, 나아가 '유다가 곧 신의 가장 철저한 자기희생의 모습'이었다는 경이로운 가설에 이르면, 유다의 배신은 역설적으로 인류 구원에 필연적인 신의 계획으로서 재탄생합니다.


이러한 보르헤스적 역설의 견해 아래, 현대 기술 발전과 미래 성장의 핵심 동력인 'AI와 저작권' 문제를 조망해 보면 어떨까요?


생성형 AI 발전을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 그중에서도 인간 창작자들의 수많은 저작물을 학습하는 과정, 즉 TDM(Text and Data Mining)이 필수적입니다. AI 개발사들은 이러한 학습이 AI 성능 향상의 '필연적인 이유'이며, '공정 이용(Fair Use)'이라는 법적 원칙에 따라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자신들이 이를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해버릴 것'이며, 저작물 이용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느라 투입된 시간과 자원의 벽은 'AI의 발전과 인류성장의 길'을 늦출 뿐이라 말합니다. 그들은 마치 AI라는 '위대한 인류 구원'의 도구가 지능이라는 '육신'을 얻기 위해, 기존 창작물이라는 '피부 세포'에 기록된 사소한 질서를 본뜨는 과정이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 저작권 논란을 감수하는 '불명예스러운 밀고자'와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그러나 저작권자들, 즉 작가, 예술가, 음악가 등 창작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강하게 반발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저작물이 AI 학습의 '원자재'로 무단 채굴되어, AI 업체들의 막대한 이윤 창출에 기여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창작자들에게는 '한 푼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합니다.

일부 밀리언셀러 작가를 제외하면 전업 작가의 평균 연봉이 높지 않으며, 이들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공정이용'을 주장하는 것은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추악한 배신자'라고 말합니다. 미국 저작권청은 방대한 저작물의 상업적 이용, 특히 불법적 접근을 통한 이용은 기존 공정 이용의 경계를 넘어선다고 선언했으며, 한국 현행 저작권법상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되어, 주체가 인간이 아닌 AI 산출물 자체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미국 법원 역시 AI를 발명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개발사들의 행위는 마치 구원을 위한 유다의 배반처럼, AI 발전이라는 '상위 질서'를 위한 '하위 질서'의 반영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깁니다. AI 학습 데이터 이용이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구원'과 같은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더라도, 현재의 저작권 침해 논란은 유다의 배신이 구원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렵고 수용하기 힘든 견해일 수 있지만, AI 개발사들은 단기적인 비난을 감수하고 장기적인 기술 발전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듯 보이며, 이는 더 큰 비난을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또는 신의 계획에 일부로서 '필연적으로' 배신을 택했다는 보르헤스의 유다 해석과도 겹쳐 보입니다.


유다의 배반이 구원의 이야기에서 불가결한 부분으로 재해석되듯, AI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데이터마이닝 행위가 미래 역사에서는 새로운 창조 시대를 열기 위한 '필연'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요?


AI 업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AI 발전이라는 '선'을 위한 불가피한 '악'으로 정당화하며, 자신들을 새로운 시대의 '유다'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유다가 그랬듯, 그들의 역할이 진정으로 구원과 필연적으로 연결된 것인지, 아니면 탐욕과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인간적 욕망의 발현일뿐인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입니다.


과연 AI 업체들은 창작자들의 고통이라는 대가 위에 서서, 자신들이 자처한 혹은 시대의 필연적인 '유다'의 역할을 주장하면서 2000년 전의 유다에게 '배신자'라며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요?

이 질문은 AI 시대의 가장 깊은 역설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명확한 사실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창작자들의 피해는 명백한 비극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투명성 의무 부과, 적절한 보상 체계 마련 등 법적, 제도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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