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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ter Lieberman Aug 13. 2023

남의 집에서 살아보기

도시 소년, 미국 집 (혹은 중국 가족이 살던 미국 집)에 살아보다

중국인 친구이자 동료가 가족이 다함께 중국으로 일년 동안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부탁했다. “일 년 동안 우리 집에 살면서 집 좀 관리해줄 수 있어? 그냥 전기랑 수도세 같은 거만 내면 돼.”  


일 전의 놀러가본 친구 집은 방이 5개, 화장실이 3.5개, 널찍한 뒷마당이 딸린 2 층 집이다. 평생 성냥갑 같은 빌라/연립에서 살아온 도시 보이인 내 기준에서는 대궐 집이다.


소심한 도시 보이는 고민이 되었다. 아무리 친한 동료라지만 괜히 껄끄러운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만약 집에 문제라도 생기면? 그리고 굳이 살게 되면, 돈을 내는 게 더 마음이 편한데.  


다른 한 편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래 미국에서 살 거면 이런 큰 집에도 한 번 살아봐야하지 않겠어? 혹시 알아? 나도 언젠가 이런 집을 장만할 지. 무턱대고 사기 전에 경험을 좀 해 봐야지.


고민고민 끝, 결국 동료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래, 까짓 거. 한 번 살아보자. 마음의 부담을 덜기 위해, 약간이라도 렌트를 내겠다고 강하게 설득했다.  


그리고 오늘 이사를 마무리 지었다. 미국은 이사 비용이 너무 비싸서, 큰 짐만 이삿짐 센터에 맡기고, 남은 짐은 3 번의 걸쳐 내 차로 직접 옮겼다.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거실이다. 거실 천고가 무척 높다. 1, 2 층 공간을 다 뚫어놨기에 거실 만큼은 집의 높이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천장 중간 중간 창이 나있어 하늘이 보인다. 거실에 앉아 하늘을 볼 수 있다니. 이게 말이 되나. 넓직한 거실에는 그랜드 피아노도 놓여져 있고, 화로도 있다. ‘ㄱ’ 자로 가지런히 놓여진 자주색 소파도 정겹게 느껴진다. 소파와 베개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 느낌이랄까.


이 집의 또 하나의 특징은 빨간색에 대한 엄청난 애정이다. 집 곳곳에 빨간색 “福” 부적/장식이 난무했고, 빨간색 나무가 그려진 대형 산수 풍경화, 그리고 온 가족이 빨간색 옷을 입고 찍은 대형 가족사진이 있다. 하다못해 집안 슬리퍼도 빨간색이다. 조선 반도에서 온 대담하지 못한 나는 이 공격적인 실내 디자인에 살짝 쫄아 버렸다.

 

그래도 힐링 포인트는 있다. 쫄았다 싶으면 창 밖을 바라보면 된다. 넓게 펼쳐진 초록색 잔디 마당이 내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초록 잎이 무성히 달린 배 나무도 있고, 사과 나무도 있다. 아 이것이 고국의 푸르름이구나. 그리고 각양 각색의 꽃들… 마당 경계선을 따라 늘어진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평화가…. 하다가 방심은 금물. 아뿔싸. 역시나 강렬한 빨간색 꽃들이 정원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즐기고 있다.  이 곳의 주인공은 나야 나! 라고 외치며. 잠시 오해해서 미안..



큰 집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던가?


이런 집에 살려면, 지하실 물탱크 비우기 (지하실 습도 관리를 위해 늘 건조기를 돌려야한다고 한다), 꽃들 물주기, 잔디 깍기를 비롯한 각종 정원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 외에도 건물 보수라든 지 안전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궁금하다. 일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계속 이런 집에 살고 싶을까?  


먼저 미국에서 집을 산 사촌누나는 살아보니 역시 아파트가 최고라 했다.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역시 코리안은 아파트라 했다.


나도 평생을 작은 마음을 가지고 작은 집에만 살아왔던 지라, 낯선 환경에 놓여진 내가 걱정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솔직히 집에 막 도착했을 때 내가 지금 남의 집에서 뭐하는 거지? 잠깐 현타가 왔다.


반나절을 집 정리를 하다보니 그래도 애정이 다시 생긴다.

 

그래 역시 인생 뭐 있나. 나름 이것도 재밌네.


그냥 살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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