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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Sep 19. 2022

일탈 일곱.

프리다이빙 배우기



일탈 7.

프리다이빙 배우기<<



오랜만에 쓰는 일탈 매거진이다.

인생에서 누군가에게는 그냥 편하게 생각될 무언가가 어떤 사람에게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나는 그걸 체험하는 것이 정말 두려워.


이유 없이 그냥 싫어 일수도 있고 거기에 얽힌 과거 트라우마나 경험이 있을 수 있고 두려운 이유는 다양하겠으나 그것 자체가 두려운 것일까.


어쩌면 그걸 경험했을 때 마주하게 될 자신이 두려운 건 아닐까.




얼마 전 프리다이빙에 입문을 하였다. 제주에 살면서 물속 세상을 아름답게 누비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물밖에서만 놀았다. 해변에서 참방참방 물놀이하며 이 정도 즐기면 뭐 됐지 하고 위안을 하기엔 물 안 세계를 다니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그러나 머리까지 쑤욱 다 잠겨서 움직이는 건 왠지 모를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고 물 안에서 그런 자유로운 움직임을 난 영영 해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차 신청했다. 프리다이빙. 더 이상 미루다가 영영 못하겠네. 싶었고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한번 보고 싶었다. 수영장 실습 날, 막상 오긴 왔는데 고요한 수영장 물을 보며 내 몸은 이를 어쩌나 하고 있었다. 수트를 입고 장비를 이리저리 착용해 보는 것도 새로운 것을 배울 때의 즐거운 마음보다 전장에 가려고 폭탄이라도 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물에 들어가자마자 혼자 갖은 돌발쇼를 하며 나 두려워요. 를 시전 했다. 다 나열하긴 힘드나..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아래 바닥 사인을 지나쳐 수영장 벽에 머리박기, 구조라도 해야 될 듯 거품 뿜기, 레일 이탈하여 옆 레일로 나오기, 수많은 퍼덕임과 방황하는 몸뚱이의 향연..  

시간이 지나고...

열정 만렙 선생님의 친절한 지도와 아낌없는 격려에 힘 입어 조금씩 괜찮아졌다.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꾸벅) 첫날 나의 버디가 되어 준 분의 존재 자체도 어쩐지 그 공간을 편하게 만들었다.

그래. 물에서 움직인다는 것이 내게 주는 두려움은 그리고 어색함은 과장된 것일 수도 있어. 이렇게 생각을 전환할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백조처럼 움직이는 버디를 보며 자괴감이 몰려왔다. 난 성질이 왜 이렇게 급한 거지.. 아우. 하면서. 그간 내가 굉장히 고요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내가 만든 지금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그러하기도 했고) 그런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마주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망아지처럼 날뛰는 나의 모습이 수면으로 떠오르는 걸 느꼈다.   




뭘 느꼈나. 나의 통찰<<


1< 물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가족들이 물을 좋아라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어릴 때 물이랑 놀았던 경험이 많지 않다. 뭐든지 곧잘 다 잘했던 내 동생마저도 물에서 하는 것만큼은 여지껏 자신 없어한다. 우린 왜 물을 편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일단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한 자신의 허용이 낮다. 뭔가 내가 힘을 써서 열심히 하는 것, 그래서 이루는 성취, 이게 적용이 안될 성싶은 것은 그냥 지레 포기한다.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라는 자신 만의 확고한 원칙 하에 그걸 경험할 기회를 스스로 주지 않는 거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난 그게 두려운 거다.  


물이라는 환경 자체가 어쩌면 순응을 배우게 하지 않을까. 물의 리듬이란 게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힘을 빡 주고 내 맘대로 어찌해보려고 버둥거릴수록 그 안에서 자유로움은 느낄 수가 없다. 쿠바에서 살사를 배울 때 생각난다. 처음엔 모르니 스텝을 틀리지 않으려고 긴장을 하고 몸에 힘을 빡주고 있었고 얼추 잘 되는 듯하였으나 실상은 춤을 추며 느끼는 희열.. 그거 대체 뭐람 했다. 타고난 리듬, 박자감이 있는 역동적인 생선 같은 쿠바노들 사이에서 더 쭈구리가 된 느낌, 이걸 따라해보겠다고 되게 열심히 애를 쓰는 모습은 마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아득바득 통제를 하려고 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내가 쿠바에서 그들이 말하는 춤의 희열을 느낀 순간이라면 통제를 완전히 놓아버렸을 때였다.  




2< 잘하고 싶다. 의 욕심.


처음부터 잘하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이 논리를 자주 여기저기 적용해 왔다. 과도한 보호(어려움이 오기도 전에 해결해주심)를 하셨던 엄마와 통제력이 강하신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며 나는 실수를 하는 것에 관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잘하는 것은 기적이겠으나 이 열망이 강해서인지 가끔 그런 기적을 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기적이고 여러 번 넘어지고 깨지고 이런 과정들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걸어가야 하는 장기 레이스에서 나는 자꾸 자빠지거나 오래 넘어져 있으면 나를 혹독하게 몰아세웠다. 거기서 얻은 성과나 배움이 사실상 엄청 큰 것임에도 그걸 인식하기엔 내가 못한 부분이 너무 크게 들어오는 것이다. 그건 자주 소중한 배움의 경험을 기쁘게 다 누릴 수 없게 했다.


이번에 프리다이빙에서도 나는 그걸 다시 느꼈다. 물이 어색해 미치겠어. 하는 종전에 나를 극복하고 난 어쨌거나 그 레이스를 끝까지 돌아서 들어왔다. 그리고 처음이지만 2분 25초나 숨을 참았다. 이건 내게 큰 성과다. 특히 숨을 참을 때 몰려오는 몸의 소리들, 안 되겠어. 여기서 그만해. 그건 사실 더 할 수 있음에도 나의 리밋을 보길 두려워하는 마음들이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몸의 수축 반응이 와도 아직 몸에는 충분한 산소가 있는데 그걸 넘어가길 두려워하는 멘탈이 있는 거다. 잘하고 싶다. 성과를 내야지. 이 마음은 과정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고 순수하게 내가 느끼는 것을 다 인지하게 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 삶의 릴랙스. 이완의 상태. 이걸 제대로 쓸 수 있어야 힘줄 때 힘도 잘 줄 수 있을 거다.  




3< 지켜보는 것에 대한 부담.

 

이건 2번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데 나는 어릴 때 누가 나를 지켜보면 일을 그르쳐 버리는? 이상한 습성이 있었다. 멀쩡히 잘하다가도 줄곧 그러했는데. 엄마가 일찍이 유치원 보내 놓고 밖에서 지켜보는 그 시절부터 시작이 된 듯하다. 7살인가 피아노 발표회를 한다고 샤방 드레스를 입히고 화장까지 시켜 피아노 앞에 앉혀 놓았는데 나는 그 멀쩡하게 잘만 연주하던 곡을 수 십 번은 틀리고 내려왔다. 그렇게 틀리기도 쉽지가 않을 정도로 틀렸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는데 그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을 당당히 꺼내지도 못할 만큼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어쩐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 같은데 뭔가 잘할 수 있는 아이, 완벽한 아이가 이미 탁 나와 있어서 어디로도 도망갈 수도 없는 그 갇힌 마음. 난 여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거기에 실수를 하면 화를 내시는 아빠. 아.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의 심정이 커졌다. 잘하면 본전이고.  

내가 못하는 상황을 보기 힘겨워하는 그 마음이 느껴져서 거기에 부응하려다가 내 풀에 지쳐서 이상한 짓을 해버리는 거다. 아니면 혼자 안 보는데서 연마해서 잘하는 모습만을 보여드리고 싶은 거다.



프리다이빙을 할 때 중간에 선생님한테 그랬다. 저 혼자 잠깐 내버려 두시라고. 선생님은 안전의 의무가 있는데 이 사람이 왜 자꾸 혼자 내버려 두라고 하나. 싶으셨을 텐데 나는 뭔가를 하다가 내가 완전히 체화가 안 된다, 못 느낀다 싶으면 혼자 그걸 해결해 보려는 습성이 있다. 그게 오랜만에 저도 모르게 또 툭 튀어나온 거다. 와 내 무의식의 이런 면들이 두려운 것을 하니 다 튀어나오네.. 아아.. 했다. 과거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그 시선이, 통제하는 시선이 이미 사라진 후에도 나는 그 영향을 받고 있구나.

선생님의 물음대로 내가 어디가 있는가. 나 자신이 여기 있나. 이게 중요한데. 주변의 소란함 안에서도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면 나는 자유로울텐데.




4< 나를 칭찬해 주자. 오늘 내가 경험에서 배운 것을 소중히 여기자.


새로운 것을 배우며 내가 했던 그 무수한 삽질, 시행착오, 별로인 감정 상태 그건 결국 나를 보게 한다. 그것들을 피하지 않고 제대로 보면 나는 또 근육이 생길 거다. 지칠 때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들은 내가 그렇게 어설픈 나를 진심으로 인정할 때 만들어진 것이다. 타인과 비교해서 나의 성과를 측정하지 말고 내 기준에서 내가 한발 내디딘 그걸 내가 진심으로 축하해 주자. 현아. 잘했어.





@서정다이브








커버 사진; 넷플릭스, 숨 쉬어라 2022

(무인도에 추락한 여자, 거기 무인도 세팅은 어쩌면 여자의 무의식일지 몰라요. 여자는 애초에 무인도에 떨어진 게 아닌 거죠. 마지막에 계곡 물에 풍덩 뛰어드는 여자는 그녀가 만든 감옥을 그렇게 탈출해요. 저는 잘 보았답니다. 한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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