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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ter Lieberman Nov 08. 2021

앨버트와의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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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Lee, can you give me one more question about state capitals?


검은 쿵푸 단복을 입은 짧은 머리 소년, 앨버트가 물었다. 알버트는 나의 중국인 동료의 아들이다.

나: "플로리다의 주도는?"
앨버트: "텔레하시."
나: "아 그래? 몰랐네."

앨버트: "Can you give me one more question?
나: "캘리포니아의 주도는? "
앨버트 "사크라멘토."
나: "아하 맞네. 그랬었지."

앨버트는 계속해서 또 다른 주도에 대해 물어봐달라고했다. 우리는 반복했다. 앨버트에게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게 즐거웠던 나는 몇 번이고 다시 물어봐도 지겹지 않았다. 앨버트는 미국의 모든 주를 그릴 수도 있다고 했다. 작은 손으로 카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주도 이름을 읽어내려가는 앨버트, 하얀 도화지에 미국 각 주의 경계선을 삐뚤빼뚤, 한땀한땀 그려가는 앨버트, 그리고 지도가 완성됐을 때 어머니에게 가져갈 그의 환한 미소가 상상됐다.  

주도를 물어봐달라는 앨버트의 평범한 질문이 나에게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자랑하고 싶은 마음, 놀고 싶은 마음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그가 좋아보였던 걸까. 아니지, 아마도 난 그가 부러웠던 것 같다. 나 이것도 잘해요, 나 더 놀고 싶어요, 라고 스스럼 없이 표현하는 그 모습이.

나에겐 선후 관계를 정확히 알 수없는, 두 개의 유년 시절 (아마도 내 인생 첫 기억이라고 생각되는) 기억이 있다. 첫번째는, 큰별 유치원에서의 일이다. 어느 날, 나름 힘겹게 사각형 박사들 안에 "로보트" "태권도" 같은 글자를 따라 써본 나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선생님께 자랑하려고 달려갔다. 이것 좀 보세요. 내가 쓴 글자에요.  그리고 또렷이 기억나는 건, 선생님의 검은색 안경테 너머로 보이는, 지쳐있는 표정이다. 응, 그래. 알았어.

두번째는, 군포 살던 시절, 집 마당에서 벌어진 일이다. 외삼촌이 넌 뭘 잘하니라고 물었을 때 난 당시 유행하던 최신 춤인 개다리춤으로 화답했다. 양팔과 다리를 열심히 흔들어가며. 그 후 외삼촌과 사촌들의 (어린 내가 보기엔) 비웃음에, 난 부끄럽고 화가났다. 다신 하나 봐라.

난 기억력이 그리 좋지는 않다. 하지만 무안하고 부끄러웠던 유년 기억은 그 사소함에도 불구하고, 참 선명하게도 남아 있다. 아버지 생신 때 바이올린 연주를 해드렸는 데 옆집 아저씨가 "얘 이제 크면 안할꺼야" 라고 했을 때 느꼈던 무안함, 어느 오후, 무슨 바람이 불었던 지 난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챙겨야죠" 하면서 운동을 하러 나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어린 애가, 얼마나 하나 보자" 라고 했을 때 부끄럽고 화났던 감정. 학교 캠프 마지막 날, 즐겁게 춤추는 친구들 사이에서, 너무 부끄럽고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르던 감정. 어느 저녁 산책 길, 아버지 손인 줄 알고 잡았는 데 다른 아저씨 손을 잡았을 때의 당혹감. 작은 바람 한 점에도 요란스레 나부끼는 감정들 때문에, 어린 나에겐 평범한 하루도 쉽지 않았다. 특별한 불행이 있는 하루에는 더더욱. 누가 어린이로 사는 게 쉽다고 했던가.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품었던 꿈이 있다면 바로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그 때는 이 모든 게 내가 어려서라고, 또 어려서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러한 피해의식?의 한 예로 난 꼬마라는 말을 너무 싫어했고, 어른이 되면 꼬마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노라고 다짐했다.

바람대로 꼬마를 말을 쓰지 않는 어른이 되었지만, 지금에나 예전이나 그리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난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점이다. 갖고 싶은 게 있다고, 놀고 싶다고, 칭찬받고 싶다고, 말하는 게, 늘 어려웠다. 부모님이 회상하는 나의 어린시절 단골 에피소드 중 하나는, 형의 새 신발을 혼자 조용히 바라보던 나의 모습이다.  새 신발을 사달라는 말은 못하고,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엄마는 그 모습이 그렇게도 슬펐다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른이 되어 가며 늘어간 거는, 무언가 욕구가 있을 때 나름대로 '그럴싸해보이는' 이유를 둘러대는 것이다. 내가 뭘하고 싶어서, 필요해서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배려심있어보이고, 멋져 보이는 변명을 만들어내곤  했다. 나의 욕구와 남의 욕구가 선명히 충돌해서 나의 욕구를 감출 수 없는 지점에서는, 늘 남을 우선시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혹은 그렇게 보이는) 능력에 비해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능력은 부족하게 커버린 것 같기도 하다.

앨버트와의 퀴즈 쇼 (?) 후, 앨버트는 나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쿠키도 집어서 건내주고, 조금 이따할 컬링 연습에서 나와 같은 팀이 되고 싶다고 몇 번 이고 말했다. 나는 그가 고사리손으로 처음 던져본 컬링 공에 열심히 빗자루질?도 해주고, 빨강색 파란색 컬링공과 어우러진 그의 멋진 사진도 찍어주었다. 앨버트는 경기장을 떠나고 나서도 유리창 너머로 내가 연습하는 모습도 지켜봐 주고, 몇 번이나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래저래 쓸데없이 포장했지만, 나도 그냥 자랑하고 싶었다. 앨버트에게 잠시지만, 사랑받아 기뻤노라고. 어른이 된 나는, 이 한 마디를 어떻게든 그럴싸하게 하기 위해 오늘도 많은 미사여구를 애써 고안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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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라는 세계 (by 김소영)  읽고 쓴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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