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에게 학종이 무슨 의미일까?
수년 전 여러 형태의 학생부를 보며 학종 컨설팅을 했던 내가
내 아이에게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다름 아닌 탐구력이었다.
탐구력이라는 말 자체가 익숙하지 않고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내 자녀가 탐구력을 가졌는가?라고 물으면 아마도 느낌이 조금은 오시지 않을까 싶다.
일단 내 아이는 탐구력이 높은 편에 속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유치원에만 다녀도 벌써 문제집 착력이 있는 애들이 한 둘 보였다. 양분을 주면 쭉쭉 빨아먹는 뿌리가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대로 흡수해 버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내 아이는 맑았다. 해맑았다. 너무 순수해서 너무 예뻤다. 늘 양보했고 잘 웃었고 갈등을 일으키지도 않는 착한 아이였다. 적어도 아직 드러난 탐구력이 없었다.
엄마라면 아이에게 빅픽쳐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물론 아이는 아이 그 자체로 잘 크겠지만 조금의 가지치기와 가이드라인 제시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내 머리와 달리,
7세 말에 나는 분위기에 휩쓸려(변명이다) 아이에게 영어를 퍼부었다. 지나고 나서 보면 아이의 언어 능력은 꽤 좋았던 것 같다. 단기간에 실력이 향상되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내가 지금 아이에게 시키고 있는 것은 탐구력과 관련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탐구력이라는 것은 대체로 결과보다는 과정중심의 학습으로부터 발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 이후로도 계속 나는 탐구력과는 상관없는 학습을 시켰다. 그런데 가끔씩 공부가 조금 깊어질 때쯤 우연 같지만 이것이 탐구력을 길러주겠다 싶은 지점이 있었다.
주장을 하기 위해 세 가지의 이유를 생각해 내는 숙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이가 영어학원에서 어떤 주제에 대해 매주 2분 스피치를 해야 했는데 2분 스피치를 위한 준비시간만 2시간쯤 걸리는 기분이었다.(준비시간, 거부시간, 눈물시간, 물먹는 시간 등등 포함) 눈물콧물 짜고 하던 그 시간이 3개월이 지나니 조금 짧아졌고 1년이 지나니 내 도움 없이도 스르륵 숙제를 해치웠다. 무슨 주제가 이렇게 어렵냐며 투덜거리던 시간도 사라졌고 세 가지 근거를 대는 양식에도 익숙해졌다.
예를 들어, 내가 마라샹궈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세 가지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면
처음엔 조금 기분이 상할 수 있다. 그냥 이유 없이 좋아서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실은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 짜내고 짜내서
1. 야채가 많이 들어있어서 식감이 좋다.
2. 내가 원하는 재료를 골라서 넣을 수 있다.
라는 두 가지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마지막 세 번째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상당히 인위적이고 불편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현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이 생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같은 말을 다른 단어로 표현하는 식의 근거를 만들어내기 일 수였다.
야채가 많이 들어 있어서 좋다. 내가 좋아하는 야채가 들어있다. 내가 좋아하는 재료를 많이 넣을 수 있어서 좋다. 재료를 직접 고를 수 있어서 좋다. 이런 식으로 나열하다 보면 다른 말 같지만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관찰 한 적 없었던 마라샹궈를 관찰하게 되고 요리하는 과정을 유튜브에 찾아보기도 하고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마라샹궈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기회도 생겼다. 사소하지만 이런 과정이 습관이 되었을 때, 그리고 이 주제가 학문적으로 바뀌었을 때 비로소 탐구력이 그 안에 숨어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라샹궈에서도 찾을 수 있는 탐구력은 아이의 삶 곳곳에도 적용하기가 좋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 스스로 자신의 취향과 호불호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의 발표를 들으며 여러 가지 자극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참여한 일과 관련된 발표를 듣는 것과 내가 참여하지 않은 일에 대한 발표를 듣는 마음가짐은 전혀 다르다. 내 준비과정의 고됨을 알기에 다른 친구의 발표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다.
주장에 대한 세 가지 근거를 대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의 생각이었다. '나는 이걸 맞다고 생각하는구나.' '나는 이걸 좋아하고 저걸 싫어하는구나.'
'내가 이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친구는 전혀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구나.'
그러면서 내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는 무엇인지,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도시가 살기 좋은지 시골이 살기 좋은지, 학교는 꼭 필요한지 등에 대한 자기의 입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알지 못하는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추상적으로나마 필요성을 느끼는 듯 하다.
완전히는 할 수 없겠지만 자아정체성을 가지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어디에 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무한히 반복해야만 학습적인 주제에 대한 궁금증도 생길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우리는 탐구력이라고 부른다.
탐구력은 배우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강력한 엔진 같은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 관련 유튜브를 몇 개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주제탐구, 지적호기심, 심화탐구 등이 모두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키워드이다.
초딩이 뭐 그런 심각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어느날 고딩이 된 아이에게 저 능력이 꼭 있지는 않더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학종을 할 생각이 없는 아이라고 할지라도 탐구력이라는 것은 이번생에 가져볼 만한 아주 괜찮은 것이라 추천드리고 싶다.
누가 읽어도 같은 의미를 전달받을 수 있는 문장을 써내는 것이 교육과정은 물론 우리의 인생에서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능력이다.
청자와 독자의 입장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설득할 수 있는 근거, 나의 의견을 순도 100%는 아니라도 그것에 가깝게 타인에게 전달해 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세계가 입체적으로 잘 가꿔져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하나도 먹고 싶지 않은 마라샹궈가 나에게는 왜 의미가 있는지 명료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의미 있는 음식은 아닌 것 같다는 말로 마지막 순간에 목소리가 작아지는 일은 만들지 않기 위해 사소한 탐구력을 길러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