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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현 Nov 28. 2023

팽이를 돌려 비교과를 씁니다.

다른 초등 엄마들도 그러실지 모르겠지만

여름 방학식, 겨울 방학식에 집으로 받아서 오는 2~3장짜리의 서류(a.k.a 성적표)에는

큰 관심이 가지 않는다.


모든 교과목은 대체로 잘하였고 적어도 보통 이상이며

그 안에 있는 과목별 내용조차 큰 감흥이 없어서

하얀 종이를 빽빽이 매운 그 글을 읽어봤자 우리 아이의 특성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장차 대학에 가는데 그 성적표(학교생활기록부)가 중요해진다는 말이 실감이 나기 어려운 것 같다.


오래도록 간직해야 하나 싶은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가 중등으로 올라가면 조금 더 힘을 갖게 되고 고등으로 가게 되면 대학에 제출하는 유일한 내 서류가 된다.


인적사항과 출석일수를 시작으로 창의적 체험활동(창체), 교과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라는 항목은 내 아이의 대학의 레벨을 결정하는 주요 항목들이다.


"엄마, 오늘 창체시간에 팽이 만들어서 팽이 시합했어."

창체가 이 창체 맞다.


다만 고등학교 학생부에는 창의적 체험활동을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으로 구분하여 학교나 학급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이나 그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이 받은 영향에 대해 기술함으로써 이 학생이 어떤 활동을 자발적으로 확장해 나갔는가를 살펴본다.


예를 들어, 학급 전체가 자율활동 시간에 팽이를 만들어 팽이 대회를 했다면

문득 내 아이는 궁금증이 생겨야 하는 것이다.

'팽이를 더 빨리 돌게 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내 아이는 팽이의 중심부 축이 팽이를 더 빨리 돌게 하는 부분이라는 가설을 가지고

팽이의 축을 다양하게 바꿔본다. 무겁게, 두껍게, 얇게, 소재를 바꿔가며 팽이를 돌려

어떤 팽이가 가장 빨리, 오래 도는지를 실험하였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팽이대회에서 1등을 하기 위해 적합한 팽이의 축을 찾아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팽이의 축보다는 팽이 자체가 어떤 소재로 만들어지는가가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되어

후속 연구를 계획한다.


앞으로 만나실 입시 설명회에서 학생부의 비교과활동, 자기 주도적 주제탐구라는 키워드가 나온다면

팽이대회의 일련의 과정을 떠올리셔도 된다.

여기서 수준이 높아지고 주제가 조금 더 학구적이 되면 그것이 학종이다.


팽이의 중심축을 보다가 지구의 자전축을 생각한다고 한들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지구과학으로의 호기심이 생겼다면 오히려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대체로 학생부의 한계는 '팽이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좋은 성적을 거둠.'이나 

'팽이를 돌려봄으로써 회전운동에 대한 이해도를 높임.' 정도로 기록되고 활동도 거기서 멈춘다는데 있다.

이런 이야기가 바로 초등학교 한 학급에 있는 학생 전체에 적혀 있는 그런 말이다.

준서도 하은이도 우리 아이도 팽이를 통해 회전운동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는 그 문장은

부모에게조차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이다. 내 아이의 특징이 아니니까.

특히나 그런 종류의 말은 고등학교 서류로서 아무 의미가 없다.

개인의 역량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나만 갖고 있는 한 문장이 필요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우리는 자연스럽지만 드라마틱한 호기심의 발현을 비교과에서 만들어내야 한다.


창체에서 시작한 팽이가 지구과학 교과목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심화주제로 업그레이드되어 기재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읽게 된 도서명이 물리에서 배운 어떤 지점과 겹쳐 다시금 사용될 수 있다.

아니 그렇게 되는 것을 잘 된 비교과활동이라고 평가한다.

팽이의 속도를 측정하기 위한 수학 공식을 고민하는 것으로 이어져도 좋다.


한 때 나도 내 아이를 영재원에 지원시키고 싶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고등과정에서 학종을 준비하며 해야 할 일련의 주제탐구 과정을

입시와 상관없이 천천히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 영재원의 커리큘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내 아이는 조금도 더 공부하고 싶어 하지 않아서 지원 준비조차 해보지 못했지만

미련이 남는다.

긴 시간에 걸쳐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해 보는 것.

그게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아이라면 훗날 학종에 지원해도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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