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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로

by 서유현

학종에서 가짜 진로는

학종을 위해 급하게 정해진 진로이다.


진로를 구체화하지 않은 채로 학종을 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종 지원을 결정했다면 나의 희망진로, 전공학과를 정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아니 사실 진로 없는 준비가 가능하다. 합격의 가능성이 매우 낮을 뿐이다.

학종 준비의 일환으로 내가 관심 가는 이것저것을 찔러보고 찾아보고 탐구해 보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서울 상위권 대학에서 좋은 결과를 받기 원한다면 진로는 명확해야 한다.


어른도 모르는 진로를 애들이 어떻게 안담?

자기가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아이들은 모른다고 아무 생각 없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진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대학을 가기 위해 필요하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기도 한

옵션이 아니다.

내 진로는 무엇이길래 여기에 글을 쓰고 있는가?

당신의 진로는 무엇이길래 이 글을 읽고 있는가?

일상 순간순간에 마주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인생 전반을 끌어가는 키워드도 있다.

인생에서 진로라는 것은 방향성을 나타내는 소중한 키워드가 된다.


학종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의 삶을 위해

진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다.


다시 학종의 가짜진로로 돌아가면

내가 기계공학과를 타깃으로 할지 토목공학과를 타깃으로 할지 정도는 정해야 한다.

문과 이과 정도가 아니라 경영학인지 경제학인지 사회복지학인지 정도는 정해야 한다.

뭉뚱그려 경제학과 경영학의 중간쯤 걸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나의 희망은 명확해야 한다.

가짜 진로라면 명확한 척해야 한다.


'저의 진로는 경영학과입니다.'라고 교수님 앞에서 한 마디 내뱉기 위해 가짜진로를 정한 것은 아니다.

어른들은 어린 시절 나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종종 물었다.

나는 변호사와 피아니스트, PD까지 빛나 보이는 직업들을 아무 생각 없이 잘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꿈과 내 삶이 어떻게 맞닿을 것인지에 대해 막연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 피아니스트가 될까? 내가 말을 잘하면 변호사가 될까?

나의 리얼 라이프와 나의 장래희망은 어떤 과정을 통해 E.T와 지구인이 손가락 맞춤을 하는 것처럼

그런 맞닿음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일까?

그때의 나는 하나도 몰랐다. 그때 나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는 어른 들 중 그런 것을 가르쳐준 어른은 없었다.


학종준비를 위해 경영학으로 진로를 정했다면 이제 경영학에 닿기 위해 손을 뻗어야 한다.

고등학교 수준에서 손을 뻗는 행위는 관련된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어디에? 학생부에.


국영수사과는 교과목이 있으니 시간표 대로 공부를 하는데

경영학 수업은 교과목이 없다면 어떻게 흔적을 남긴단 말인가.


사회과목 수행평가에 관심 있는 기업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주제가 나왔다고 해보자.

나의 진로가 경영학과라면 나는 이 보고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적어도 우리 반에서는 가장 진심인 보고서를 내가 써내고 만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

경영학을 지망하는 나는 경영학 중에서도 늘 마케팅을 잘하는 00 기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00 기업의 성공비결이나 지난 실패요인, 마케팅 사례 등을 분석하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기사 수준의 자료뿐만 아니라 00 기업이 발표한 공시자료도 들여다 보고 00 기업이 활용하는 마케팅 기법에 대한 학문적인 개념에 대해서도 연결해서 찾아볼 수 있다. 유사한 외국의 기업 사례를 통해 다음 스텝을 모색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검색창에 치면 나오는 첫 번째, 두 번째 기사로 범벅한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한 보고서를 읽은 선생님은 내용이 참신하고 새로운 제안점을 제시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시고 나의 희망전공이 경영학과라는 것을 감안하여 학생부에 나의 분석보고서에서의 활약을 적극 기재해 주실 것이다. 이렇게 내가 정한 진로와 관련된 첫 번째 활동이 나의 학생부에 기록된다. 학종 준비가 실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가짜진로라고 하기엔 참 어려운 일이다. 진심을 다해야 하는 활동인데 가짜로 진로를 정해서 입시를 위해서만 이것을 이끌어 나가려면 중간쯤엔 번아웃이 올지도 모른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프로 학종러들은 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이 가장 유리한 위치에 가기 위해 가짜진로를 기꺼이 하드캐리해 가기도 한다. 경영학에서 미끄러진다면 유사학과라도 가기 위해 노인과 관련된 마케팅이나 기업활동에 대해서도 학생부에 살짝 밑밥을 뿌려두기도 한다. 사회복지나 보건복지 등의 학과에도 접목이 될 수 있을만한 활동을 넣어 플랜 B까지 준비하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의 꿈은 적어도 확실하다. 이 학생들의 꿈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계획을 세워 실행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볼 땐 인정머리 없어 보여도 막상 발등에 불일 때는 이렇게 빠릿빠릿하게만 생각해 주는 학생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입시는 중요하고 진로도 쉽게 정할 수 없지만

합격이라는 목표아래 넉 놓지 않고 뭐라도 하려고 하는 아이들이 성공하는 것이 옳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내 진로랑 안 맞아서 이것도 튕기고 죽는소리만 하는 아이들이 대학합격하는 것보다 훨씬 말이 된다.


진로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아이들은 대학에 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해 보는 경험을 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엄마 생각대로, 학교 생각대로, 같이 노는 친구가 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 말고

내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가짜 진로를 잡든 진짜 진로를 잡든 그 과정에서 분명 성장할 것이고

합격을 한 뒤 전혀 다른 일을 하겠다고 이 모든 일을 뒤집어 버린대도

그 아이는 신뢰할 만하다.


그래서 초등 아이에게 진로탐색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하기 싫은 것, 나라는 사람의 성격, 내가 견디는 것과 견디지 못하는 것 등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모두 진로로 다가가는 길이 된다.


나의 아이가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길 언제나 원해왔다.

때론 너무 잘 알아서 먼저 뒤로 누워 버려 아차 싶기도 하지만

내 아이가 가짜 진로를 만든다고 해도 나는 그 몇 년을 기꺼이 최선을 다해 함께 해 줄 생각이다.

진로도 정해봐야 알지 해 보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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