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부터 적용되는 2022 교육과정은 기존의 교육과정과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산업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므로 '디지털'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협력, 공동체, 소통과 같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이슈인 인간소외를 방지하고자 하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자기 주도성'에 대해 강조한다.
자기 주도성은 고교학점제에서 꼭 필요한 능력이고
중학교의 자유학기제에도 길러져야 하는 능력이다.
여기에 진로교육이 강화되는 방안까지 추가하면 얼렁뚱땅 2022 개정교육과정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교육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는 지인들을 만나면
'엄마 주도성'에 혀를 끌끌 찬다.
애는 아무 생각이 없고 엄마는 별의별 것까지 다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인 것 같다.
엄마가 학습에 있어서 자기 주도성의 중요성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것에 반해
아이는 점점 더 알아듣지 못하고 있으니
주도성 앞에 '엄마'라는 글자가 붙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엄마(나 포함)들의 니즈를 누구보다 잘 아는 프랜차이즈 학원은
중학교 수행평가를 관리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학교에서 나오는 수행평가 준비, 독서 후 독서감상문 쓰기, 탐구보고서 양식에 맞춰 보고서 쓰기 등을
지도 및 첨삭해 주겠다는 것이다.
자기 주도성이란 뭘까?
나 스스로에게도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 것인지 묻게 된다.
도달해야 할 지점은 명확히 알겠고 나는 그것을 할 수 있겠는데
내 아이는 내가 정한 목표지점에 도달하기까지 너무 멀리 있다.
때가 되면 아이는 그런 일들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실행할까?
엄마 주도성을 멈추면 자기 주도성이 시작될 것인지도 의문이다.
입시 현장에 계신 분에게 물으니 지적호기심이 없으면 수능 준비에 집중하라고 하신다.
(수능은 언제부터 지적호기심이 없는 학생들의 전유물이 된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엄마로서, 인생선배로서
길어진 인생에 스스로 느끼는 지적호기심과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모르고 사는 것이
얼마나 지겹고 수동적인 삶을 살게 하는지 알기에
내 아이에게는 그것들을 깨닫게 해주고 싶다.
물론, 나 조차도 대학교에 가서야 무언가가 궁금해졌고
(그전까지는 나에게 지적 호기심이란 게 있는지도 몰랐다.)
도리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해결하게 되었다.
헛웃음이 나지만 그래서 또 나는
내 아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지적호기심을 흔들어 일으켜 깨우고 싶은데
이것 또한 엄마 주도성일까?
잘 모르겠지만 독서를 해야 할 것 같은 것,
영어 문법도 중요하지만 영어 책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읽어야 할 것 같은 것,
청중을 대상으로 어떤 주제를 가지고 발표준비를 해 봐야 할 것 같은 것,
여행을 갈 때 계획을 세워봐야 할 것 같은 것,
체험학습 결과 보고서에 내가 한 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을 만한 자료를 모아두는 것
엄마의 육감적으로 하면 좋을 것 같은 일들은
자기 주도성 자체를 키워주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무엇인가를 해결하려고 할 때 머릿속에서 꺼내볼 수 있는 도구가 되어 준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지?
그때처럼 자료를 먼저 조사해 볼까? 그때처럼 내용을 구분해서 생각해 볼까?
a.k.a 구조적 사고
이 또한 타고난 아이들이 있어서 약간의 좌절을 딛고 일어나야 하지만
만들어지는 구조적 사고
이것도 쓸만하다. 지금 내가 쓰고 있으니
내신 4등급에 수능도 잘 안 나오는 친구들을 만나면
아이들이 그렇게 멍하다고 하시는데
멍청하다고 가 아니라 멍 하다고
남의 아이 멍한 것은 두고 봐도
내 아이 멍해지는 것은 두고 볼 수가 없는 엄마의 마음이
욕심은 아니지 않나.
공부뿐만 아니라 인생을 독립하려면
평소에는 멍하더라도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길 때는
뇌를 팽팽 돌릴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인생 주도적 인간으로 만들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