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진학할 수도 있는 중학교에 이미 첫째를 보내고 있는 엄마를 만났다.
중학교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고충을 들으며 몇 개월 남지 않은 시간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점점 마음이 분주해졌다.
독서를 조금 더, 아니 과학 과목을
아니 체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 자기주도 학습 방법 익히기
이렇게 하나둘씩 할 일이 늘어가는 걸 체감하다 보니
늘 도달하는 그 결론에 도달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지금처럼 살기.
자유학기제로 시작하는 중학교라 내신 부담도 내려놓고
가서 천천히 몸 풀며 적응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그날 들은 얘기 중 다른 수행평가도 아니고 체육 수행평가가 며칠이 지나도록 잊히질 않는다.
사실 별것은 아니다. 고작 줄넘기 수행평가.
초등에서 음악줄넘기로 발바닥에 스프링이 달린 것처럼 방방 뛰는 어린이들을
흔하게 봐왔으니 줄넘기가 무섭다고 하는 것은 엄살일 수 있다.
하지만 그저 내 아이가 조금 운동에 특화된 아이는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을 어렵게 했다.
누군가는 재미있어서, 또는 별게 아니라서 후루룩 해 버릴 줄넘기의 몇 가지 버전을
내 아이는 하나하나 따져 배워야 했다.
나도 남편도 운동을 잘한 적이 없는데
그러고도 이만큼 잘 살아왔는데
아이가 체육 실기 때문에 고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왠지 약 오른다.
남편에게 그 중학교를 가면 줄넘기를 이렇게나 해야 한다고 하며
평가기준을 내밀었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이렇게 하면 뭐가 늘어? 한국 교육은 도대체 뭘 가르치겠다는 거야?"
하는데 이게 내 발작버튼이다. 마음이 우르르쾅쾅했다.
"내가 지금 한국교육을 바꿔달래? 우리 애가 이걸 어떻게 준비할지 걱정이 돼서 말하는 거잖아!"
남편의 말 한마디에 나는 단번에 한국교육옹호자가 되었다.
나라고 지금 다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남편에게 한국 교육 밖 대안이 있나? 홈스쿨링? 흉내도 내기 어려운 처지다.
나는 언제나 체제순응적 인간이고 남편은 언제나 규칙밖으로 튀어나오는 습성이 있다.
나도 아이를 규칙 안에 가둬 키우고 싶지는 않지만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불만을 갖게 하는 태도를 길러주고 싶지 않다.
여하튼 요즘 수행평가에 대한 이슈가 많은 게 느껴진다.
우리 아이가 체육에 좀 자신이 없으니 체육 수행평가를 없애달라고 할 수는 없다.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 학교 수업을 빼달라고 하는 것이 이것의 다른 버전이다.
나는 중학교 기간 동안 아이가 많은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
다양한 정보원을 검색해 보고
몸으로 뛰는 프로젝트 활동을 해 봤으면 좋겠다.
중학교 시기에 이런 학습의 다양한 요리법을 연습하지 않으면
고등학교에 가서 입시를 준비할 때 커다란 벽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나에게 닥친 과업을 문제라는 말로 바꾸고 그 과업을 잘 마치는 일을 해결력이라고 말하면
문제해결력이라는 단어가 탄생한다. 문제해결력의 부재가 바로 그 커다란 벽이다.
학교를 열심히 따라간다고 해서 강력한 문제해결력을 가질 수는 없지만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면서 학교 외 시간에 자력으로 그 역량을 기르는 것이 더 어렵다.
입시 공부를 하기 전에 더듬더듬 거칠게라도 알아놔야 한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실패를 중학교 기간동안 해 보는 것을 고려 중이다.
시간관리 실패, 수행평가 실패, 시험준비 실패 등
상상만 해도 솔직히 숨이 막혀오지만
시행착오가 있어야 아이도 나도 좀 더 단단해지고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고등에 가서는 우리 실패하지 말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