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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도 끊고, 국어도 끊고...

by 서유현

내가 지금 이토록 마음이 불안한 이유는

두 달 전 그만둔 영어학원과 더불어 오늘 전화로 국어학원에도 이별을 고했기 때문인 것 같다.

부디 그 이유가 아니길 바라지만

아무래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이제 내게 남은 학원이 많지 않다. 거의 이순신 장군의 마음과 동일하다.


그런 이야기도 들어 본 적 있다.

"우식이 다니는 학원들 보면 다 좋은 학원만 보내시는 것 같아요."


학부모간의 대화에서 나오는 흔한 칭찬멘트일 수도 있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소위 말하는 괜찮은 학원에 보내는 것에 대한 나의 집착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유니콘 같은 아이들이 다니는 탑학원, 탑반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습관이 무섭다고 쇼핑을 하듯 학원도 구색을 맞춰두려고 애썼음을 인정한다.


국어학원을 그만두는 나의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은

'이제 영어학원은 새로 등록하자'라는 마음을 먹는 것이다.

아이와 두 달 남짓 엄마와 함께하는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번 주에는 한 시간도 하지 못했다.

이 한가로운 여름방학에 한 시간도 영어공부를 못할 만큼의 게으름이 우리 집엔 가득 차 있다.


학원이 탐탁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래 다녀서 타성에 젖은 데다

학원에서 학기말에 나눠주는 성적표의 꺾은선 그래프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그래왔건만 이제는 정말 거슬렸다.

영어실력이 정말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웬걸. 학원을 그만두니 학원이 그래도 썩은 동아줄이라도 되어

영어의 끊길듯한 숨통을 겨우겨우 이어가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은 여전히 학원을 다니는데 혼자만 그만둔 게 어색하고 걱정스러웠던 아이도

어느새 적응되어 영어 없는 세상에서 속 편하게 살게 되었다.


여기에 방학이 왔고 오전시간까지 뚫려버려서

급한 대로 방학특강 수학수업을 넣긴 했지만

어쩐지 여러모로 널널, 넉넉하다. (그래도 수학만은 잡고 있다.)

그리고 오늘 국어학원에도 그만 가겠다고 선포했다.

내겐 떨리는 일이었으나 아무에게도 아무 일은 아니었다.

작은 일에도 왜 가슴이 쿵쾅거리는 건지 아줌마로서의 삶에 너무 오르내림이 없었던 것인지

나 자신에게 살짝 화도 났다.


국어학원을 그만둠으로써 '1주에 책 한 권 독서' 시스템도 사라지게 되었다.

난 사실 한 주에 한 권씩 책을 읽어가야 하는 초등논술학원 덕분에 재미를 좀 봤다고 생각한다.

시키지 않았다면 꾸준히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고

일정 수준의 글밥이나 책의 주제로 넘어가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자유가 본격적으로 주어진 인간은 얼마나 더 자유로워질 것인가?

굉장히 기대되는 대목이다.

몇 년간 채워놨던 족쇄를 몇 개는 풀어준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그동안 너무 박했었나 싶기도 하지만

주변을 보면 그런 소리는 쏙 들어간다. 나는 꽤 관대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인지 계속해서 생각 중이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시점에 학원을 자꾸만 정리하는 것은 왜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인가?

학원은 공부를 보장해 주는 곳인가?


나처럼 불안해하며 학원을 정리하는 다른 엄마도 있을까?

나처럼 불안해서 학원을 더 등록하는 엄마가 더 많을까?

공부를 안 하는 게 불안한 건가? 못하는 게 불안한 건가?

학원을 안 다녀서 불안한 건가?

내가 불안하지 않아야만 내 아이가 잘 공부하고 있는 것인가?

내 아이는 공부를 하는 아이인가?


내 질문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참을 생각하고 고민해서 얻은 내 결론은

'흔들려 보는 것'이다. 일부러 한번 나를 불안하게 해 보는 중인 것 같다.

일종의 예행연습을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감정적인 사건에 대한 준비를 촘촘히 하는 J이다.

내 의지로, 아이의 의지로 학원을 그만둘 수 있는지 시험 삼아해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학원을 위해 공부하는지, 공부를 위해 학원을 다니는지 정의를 해 보는 중인 것 같기도 하다.

유난히 이번 여름은 왕성한 생명력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너무 더워서 헬 그 자체 같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 여름은 만물이 생장하는 봄 보다

여름이 무언가 더 강력한 생명력을 내뿜는다는 느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인생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면

나는 어디쯤일까. 내 아이는 어디쯤일까.

부모는 아이와 함께 다시 한번 사계절을 시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무더위로 기억될 올해 여름은

나중에 곱씹을만한 좋은 추억이 남을까.

그때 참 학원을 그만두고 하길 잘했다는 그런 흐뭇한 마음이 나중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어쩌면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아쉬움의 후회가 남을지도 모르겠다.


기꺼이 불안해보고 생각해 보도록 해야겠다.

생각대로 살아보기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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