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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학년도 서울대 전형(안) 독후감

by 서유현

고등학교 교과과정 편제표를 몇 장 인쇄했다.

이 학교랑 저 학교랑 무슨 차이가 있는지 실눈을 뜨고 비교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 보니 2028학년도 서울대학교 입학 전형(안)이 발표되었단다.


서울대의 2028학년도 전형(안) 발표 덕분에 교과과정 편제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고등학교 교과과정 편제표를 보는 이유는 내 아이에게 '더욱 적합한' 교과과정을 가진 고등학교를

선별해 내고 싶기 때문인데

'더욱 적합한'이라고 할 때 이 '적합한'의 기준인 서울대의 전형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입시에서 서울대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나쁜 뜻이 아니라 그만큼 강력하다는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내신 등급이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바뀌면

1등급에 해당하는 학생이 학교 당 4%에서 10%으로 증가한다.

서울대의 수시 지역균형전형은 보통 내신에서 전교 1,2등을 다투는 아이들이 지원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지원자 평균 역시 1등급 앞쪽에 위치한다.

1등급이 4%인 9등급제 에서는 자사, 특목을 다니며 서울대 지역균형전형에 지원할 할 수 있는 내신을

받기가 어려웠는데(그래도 간혹 있다. 무서운 친구들)

5등급제가 되면 1등급이 10%로 바뀌기 때문에 특목고와 자사고의 1등급이 나올 것이고

그럼 그동안은 1등급을 받지 못했기에 지원할 수 없었던 지역균형전형에

특목고와 자사고 아이들도 지원을 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2028학년도 서울대 지역균형전형은 수시이던 정시이던 일반고등학교 재학생만 지원이 가능한 것으로 바뀌었다. 5등급제에서 1등급을 맞고 특목, 자사에서도 서울대 지균에 지원해보려고 했던 시나리오는 이제 무쓸모이다. 사실 자사, 특목에서 1등급을 맞는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소수에게 해당되는 일이기 때문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수는 없을 변화인 것 같기도 하다.


반면 여전히 서울대의 수시 일반전형은 모든 유형의 고등학교에 열려 있다.

지균에는 지원할 수 없어도 일반전형에는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더 칼을 뽑은 듯한 변경사항이 있다.

정시 전형에서의 학생부 반영비율에 상당한 힘을 실었다는 것이다.

서울대 정시는 수능 60%에 '교과역량평가'라는 영역이 40% 반영된다.


그렇다면 '교과역량평가'에는 무엇이 평가대상이 될 것인가?

역량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정의도 어렵지만 일단은 40%가 면접이 아니라 서류평가라는 이야기다.

서류평가라 함은 학생부를 평가하는 것이고

풀어서 말하자면 내신과 비교과활동을 평가하는 것이고

여기서 정시에 고교내신이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또다시 특목, 자사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정시는 수능이 결단을 내는 그런 전형인데

서울대 정시에 학생부 내신을 제법 담을 것 같은 전형(안)을 발표했다는 것이 상당히 새로운 국면이다.

이를 '수능의 자격고사화'라고 부르는 전문가들이 많으니 나도 그렇게 부르겠다.


정시 전형에 교과역량평가가 들어가는 것이 수능의 자격고사화가 아니라

수능은 자격을 갖췄는지 정도를 판단할 때만 사용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프리(pre-) 단계로 보는 것이다. 수능점수를 넘고 나면 교과역량평가 40%가 존재하고 있다.


서울대는 교과역량평가를 무려 7개의 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하겠다고 했다. 등급 간 격차는 2점인데

관건은 교과역량평가에서의 2점 차이를 수능점수로 메꿀 수 있는 구조일 것인가이다.

말하자면,

내가 내신으로는 바닥인 등급을 받았을 때조차 수능 점수로 이 부분이 커버되는 정도일지

아니면 수능은 정말 자격요건 수준이라 2점 차이도 수능점수로 극복이 쉽지 않은 정도 일지가 궁금한데

전자는 현 서울대 정시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후자일 가능성을 보고 있다.


입시는 전과 후를 비교해서 알지 않으면 하나도 새롭지 않다.

하지만 전과 후를 비교해 보면 어떤 의도가 숨어있는지를 알 수 있다.


정시에서의 학생부 반영은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입시전문학원으로 변한 3년의 고등생활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다. 특히 내신을 놓아버리고 수능 문제풀이에만 집중하는 정시형 고등학교를 선택한 정시러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기타 변동 사항들도 슬쩍 보자면,


서울대는 N수생도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재수를 해도, 삼수를 해도 지난 고교 3년의 내신은 변하지 않고 반영되는 정시를 만들었다.

수능 점수만 높인다고 해서 서울대를 갈 수 있는 것이 아닌 셈이 되는 것이다.


고교학점제 운영취지를 강화하기 위해 어떤 교과목을 이수하고 어떤 전공에 지원했는지를 살펴본다고 했다.

고교에서 점수 따기 유리한 과목만 듣다가 수능으로 고득점을 맞아 인기학과에 진학하는 일을 막아보기 위한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대학 입학 후 전공부적응으로 인한 중도이탈을 막기 위한 것, 문과침공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어쨌든 내가 이수한 과목과 내가 지원한 희망학과가 잘 매치되지 않을 때 오는 불리함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 역시 과거에는 수시전형에만 해당되던 문제였는데 이제는 정시에서도 적용되게 되었다.


서울대 외의 다른 대학은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지

3년 예고제에 맞춰 2025년 4월까지는 2028학년도 신입생 전형(안)을 발표할 텐데 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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