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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현 Dec 05. 2022

아웃사이더엄마의 대화법

 익명으로 수년을 잘 살았던 우리 동네인데 아이가 생기고 난 뒤부터 나의 신분이 상당히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리 아이 같은 반 친구 엄마는 물론이고 놀이터에 같이 놀던 애 엄마, 아이스크림 사러 가는 작은 슈퍼사장님도 아이를 기억하시고, 경비아저씨도 아이를 기억하시기 때문에 내가 인사드려야 할 분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동네에서 차를 몰 때 제발 함부로 빵빵거리지 말아달라고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저 앞차가 우리 애 친구네 차면 어떡하냐며.      


 아무리 아웃사이더라도 ‘인사’까지는 할 수 있다. 간단한 눈인사, 요즘은 마스크도 하기 때문에 큰 표정을 요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일단 반가움에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라고 말이 트이기 시작하면 사실 난 한동안 머릿속이 하얗다. 친한 친구에게도, 엄마에게도 먼저 연락을 하는 타입이 아닌데 이미 눈 마주치고 웃고 서있는 동네 엄마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게 좋을까? 

 게다가 난 아웃사이더처럼 살고 싶지만 얼굴인식의 대가, 목소리인식의 대가에다가 자동으로 아는 사람을 보면 상대방이 나를 못봤을 때도 지나치지 못하고 인사를 하는 병이 있다. 마스크 속에 숨어도 좋으련만.  



   

 가끔 이렇게 마주친 엄마에게 불쑥 아무말이나 해놓고 집에 와서 몇 번이나 곱씹으며 후회할 때도 많다.

 “제가 제본을 하려고 알아보다가 가격에 ‘눈탱이’ 맞을까봐요.” 

 상대엄마가 나의 거친 어휘력에 잠시 당황하시는 것 같음을 느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근데 원래 눈탱이 맞는다는 말 많이 안쓰나?   


 한번은 정말 오랜만에 오프라인상에서 뵈는 아이 친구 엄마를 등굣길에 만났다. 수학 문제집 이야기가 나오면서 아파트 주차장에서 2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당시 수학문제집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었고 그냥 “아이 수학 학원이 고민이에요.” 라고 내 머릿속에 가득찬 이야기를 첫 문장으로 두서없이 꺼냈던 것이 시작이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으면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했어도 좋았을 텐데, 혹은 그날의 작은 일정들을 위해 다음을 기약하며 양해를 구해도 좋았을 텐데. 나는 경청했다. 두 시간 동안. 그리고 맞장구도 정말 잘 쳤다.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고 그 시간이 좋았지만 좀 더 매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간 괜찮으시면 잠시 요앞에 커피숍에 갈까요?” 라던가 “아 너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오늘 약속이 있어서 괜찮으시면 금요일에 한번 뵈도 될까요?” 라고 해도 좋았을 것 같다.           




 어떤 때는 면전에서 기분 나쁜 말을 돌려서 듣고도 웃고 있었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분명히 나에 대한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포인트를 놓쳤다던가, 설마 저게 날 두고 하는 말일까 의심을 하며 하하호호 웃고 돌아왔다. 그런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엄마들은 지혜로웠다. 자신의 아이를 감싸면서도 남의 아이를 잘 케어했다. 반면에 나는 내 아이도, 남의 아이도 잘 알지 못한다는 기분이 모임의 끝마다 밀려왔다. 


 메타인지가 좋은 사람을 참 좋아한다.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정말 영리한 것이다. 내가 엄마들 사이에서 방황했던 시간들의 대부분의 이유는 내가 아이의 엄마로서 어떤 일을 해야하는 사람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한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라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인지를 하지 못했다. 내가 나인체로 살기를 너무 간절히 원했던 사람이라서.      



 하지만 K-장녀로서 이제 한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수년에 걸쳐 내 안에 업데이트를 마쳤다. 아이의 삶에 가장 단단한 바닥이 되어주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고로 이제 동네 엄마와 커피약속정도는 맘 조리지 않으며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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