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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현 Dec 05. 2022

감안하는 삶

 13년 동안 함께 살다가 떠난 우리집 강아지가 있다. 나는 목숨받쳐 우리 강아지를 사랑했다. 목숨을 받치지 못한게 한이 될 정도로. 자식 같았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너무 사랑하는 개체에게 아무것도 가르치고 싶어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었다. 너를 너답게 살게 하는 것. 그게 나의 사랑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가장 나답게 살게 할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하나 알게 되었다. 남편은 나를 가장 나답게 살게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 나 또한 아이를 그저 아이인체로 두지 못한다는 것. 다행히 5세 전후 까지는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었다. 위험한 것 빼고, 안돼는 것 빼고. 그러나 보육에서 교육으로 전환기가 분명히 있었고 그 시점부터 나는 굉장히 냉정한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교육’을 만나면 ‘치열하다’라는 뜻이 된다.      




 아이의 재능을 살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의 재능이 보이지 않았다. 운동신경은 0이 아니라 마이너스 같았고 흥은 있으나 소질은 없어보였고 그림도 졸라맨이었다. 책도 좋아하지만 ‘카봇’을 더 좋아했고 ‘터닝메카드’와 ‘포켓몬스터’의 나날들이었다. 대학 친구가 말했다. “재능은 너무 뾰족해서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거라고 생각해.” 깊이 공감했다. 뾰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아이를 보며 답답했지만 아이를 가장 아이답게 키우려고 했던 날들을 기억해냈다. 결론에 이르렀다. 남편에게 결론을 발표해주었다. “아빠, 너가 돈 많이 벌어. 얘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아이의 친구 중 하나는 정말 영양분을 주기만 하면 빨아들이는 나무처럼 학습력이 뛰어났다. 또 다른 친구는 승부욕이 굉장해서 혼자 연습을 해서라도 못하는 것을 해내고 마는 아이도 있었다. 여러 친구가 모였을 때 함께 놀 수 있게 리드를 기똥차게 하는 친구도 있었고 함께 한참을 놀다가 갑자기 책을 읽고 쉬는걸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다. 아이들은 참 다양했다. 그래서 각자의 방식에 맞춰서 각자 갈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나아가야하는 길이 하나로 몰렸다. 영어는 SR점수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수학은 교과진도와 사고력과 연산정도가 수준을 나눠주었다. 수영, 피아노, 미술, 태권도, 겨울엔 스키까지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장이 동네 곳곳에 열려있었다. 그런데 내 아이는 그 어떤 곳에 가도 자기다워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우리집 침대 위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피규어를 가지고 놀 때만 자기다워 보였다. 


 



 여름에 한 달동안 캐나다에 다녀왔지만 우리 아이는 그 흔한 영어캠프에 가지 않았다. 사실 몇 번은 가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하루를 가고 말았다. 그 때도 아이는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에 나무 아래 혼자 앉아있었다. 아이는 그 전날 밤에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쉬는시간에 혼자 그냥 앉아있어도 돼?”


 난 당연히 “그럼~, 너 편한대로 하면 되지.”라고 했다. 아이가 괜히 그런 말을 해보는 줄 알았는데 멀리서 보러 갔더니 정말 혼자 앉아있었다. 

 아이를 나무랄 수도, 짠해 할 수도 없었다. 그저 괜찮은 척 하는 것이 엄마됨의 기본이다. 나도 몇 시간 만에 누군가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이 아닌 것을. 너라고 노란머리 친구들과 몇 시간 만에 친구가 될 수 있겠니. 우리는 이만큼을 경험했으니 됐다. 나라는 엄마와 너라는 아이를 감안했을 때 우리에게 이정도면 충분해.

       



 아이의 기질을 감안하여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시작점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남자아이 중에 우리아이와 비슷한 기질을 가진 아이는 한 반에 3명을 넘기가 어렵다. 드문 유형의 내 아들을 보시며 우리 시어머니도, 내 친구 중 몇몇도 “너무 곱게 키워서 그러는거 아니야?”라고 묻곤 한다.      



 “응, 아니야.” 애 by 애, 사람 by 사람.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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