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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현 Dec 14. 2022

산타의 커밍아웃 타이밍은?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25일 새벽에 오는거야? 26일 새벽에 오는거야?"

 "뭔 말이야?"

 "내가 산타 할아버지랑 5분정도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거든? 근데 어떤날 밤을 새야하는거야?"


 아. 너 산타할아버지 만나려고 밤샐 날짜 찾는거야? 

 내 아들. 초등학교 중학년. 아직 산타할아버지를 믿는다. 

 " 크리스마스 이브가 지나고 나서 오시니까 밤을 샐꺼면 24일 밤을 새야지."

 어차피 넌 잠들꺼니까. 알려는 준다. 


  사실 순수하기도 하지만 내가 공을 들인 탓이다. 나는 부단히도 산타 대필 카드를 아들에게 보냈고 글씨체도 일정하게 작성했으며 어플을 이용해서 우리집에 산타가 왔다 간 사진도 보여줬다. 내 아들은 산타가 있다고 말하면서 내가 일곱살 때 받은 카드도 있고 여덟살 때 받은 카드도 아직도 있고! 라고 당당히 이야기 한다. 이번에도 쓸꺼야 인마.


 그런데 사실 이미 또래 친구들이 산타가 허구라는 것을 많이 알고 있다. 나에게도 위기가 많았다. 

 "엄마! 지훈이가 산타할아버지가 있는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선물 주는거라던데?"

 "아이구, 쯔쯔... 지훈이가 산타할아버지를 의심하는 바람에 산타할아버지가 이제 안오시나보다. 엄마가 그랬지? 산타할아버지는 자기를 의심하는 순간 사라져버리셔. 너도 혹시 지금 의심하는거야?"


 내 아들은 정말 그걸 다 믿는다. 그래서 의심도 안한다. 귀신도 엄청 무서워하고 유령이 나오는 이야기를 옛날이야기라고 하고 시작하면 "그만!" 이라고 외친다. 나는 사실 이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매번 놀려먹는 못된 엄마다. 


 '인사이드아웃'이라는 애니매이션에는 유머를 통해 만들어지는 머릿속의 호기심 섬이 있다고 했다. 우리 아빠는 내 머릿속에 그걸 잔뜩 만들어뒀고 나 역시 내 아들 머릿속에 그 섬을 잔뜩 만드는 중이다. 온갖 속임수와 놀림과 유머로.  친정집이 모이는 날이면 아무도 짜지 않아도 매번 우리 아들은 속임수의 대상이다. 아빠, 나, 그리고 내 남동생까지 우리는 입만 열면 계속 애를 놀려먹는다. 

 "할아버지가 지금 마술을 부리면 너를 바로 아프리카로 보낼 수 있어."

 삼촌이 바로 받는다. "아 나 그때 아빠가 아프리카 보내가지구 너무 무서웠어. 거기 오랑우탄이랑 막 동물들이 너무 많아서."

 밥 먹듯이 애를 놀린다. 정말 뻔하고 재미없는 얘기지만 그걸 다 받아내는 내 아들의 표정을 보면 낄낄. 너무 귀여워서 웃기단말이다.  


 근데 이제 초등학교 중학년인데 산타할아버지 알려줘야 할 것 같다. 이제는 정말 귀여운 놀림이나 세상을 예쁘게 포장해준다는 마음보다는 속여먹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아이에게 산타가 있는 세상을 보여주려고 애쓴 만큼 나도 조금은 그런생각이 든다. 산타할아버지 진짜 어디 계시면 어떡하지. 전세계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산타는 아니더라도 정말 그 존재가 어딘가에 천연기념물처럼 남아있을지도 모르자나. 

 

 행복한 것들은 행복한 그대로 남겨두면 돼. 산타가 없지만 수없이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들었던 산타가 있던 시간들과 추억들을 가득 안고 있다면 그러면 산타할아버지가 있는거나 다름없지 않을까. 올해까지는 버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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