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물질과 어울리며,

어둔 마음의 허리춤을 붙잡고 춤을 추던,

by 식목제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년 만에 건강검진이라는 것을 받았다. 세세한 검사 결과야 나중에 나오겠지만,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특이 사항은 청력이 더 안 좋아졌다는 것 정도였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검진 담당자가 오히려 놀라 이비인후과 추가 검진을 받아보겠느냐고 해서 괜찮다고 했다. 이미 오래된 일이니 신경 쓸 것 없다고 말하자, 이내 수긍하며 놀란 표정을 거두었다. 나이에 비해 너무 청력이 안 좋아서 의아하게 여긴 모양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놀란 건, 문진표를 작성하며 흡연과 음주 연차를 쓸 때였다. 물론, 현재 금연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지난 2개월간 금주를 하긴 했지만, 전체 인생을 놓고 보면 무려 30년 동안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고 살았다. 혼자 실소를 머금었다. 참 오랫동안 피우고 마셔댔다는 생각에서였다. 중독성 물질을 가까이하는 건 집안 내력이기도 한데,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처음 담배를 입에 댄 건 열아홉,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담배가 너무너무 피워보고 싶었던 나는 '솔' 담배를 하나 구입해 조그만 다방이 있는 동네 건물 공동 화장실에 숨어 담배를 피웠다. 다방 이름도 잊지 못하는데 촌스러운 '애플 다방'이었고, 이 다방으로 말하자면 형이 어떤 중대한 문제에 얽혀(아무리 죽은 사람이지만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말자) 그와 관련된 대책 회의를 하느라 어머니와 나, 형 셋이서 마주 앉아 이런저런 논의와 궁리를 했던 다방이기도 하다. 지질하게 다방 옆 화장실에 숨어 담배를 피우던 나는 두 개비 정도를 피운 후 나머지 담배를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궁리하다가, 차마 어디 숨겨 가지고 다닐 생각은 못하고, 그냥 버리긴 아까우니 조금 더 피워보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그 좁은 화장실에서 무려 10개비의 담배를 연달아 피우고 나왔다.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구역질이 나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멍청하고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다.


술을 처음 마신 건 그보다 빠른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춘천을 떠나온 지 2년, 여전히 그곳에 있는 친구 '식'이와 연락을 주고받던 나는, 방학이 되면 녀석의 집으로 찾아가 이삼일 놀다 오곤 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녀석의 누나는 결혼하여 독립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신 어머님은 나이 어린 '식'이를 살뜰하게 챙기지 않았다. 그러니 녀석 마음대로 골방에 처박혀 무슨 짓을 한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해 겨울방학, '식'이는 큰맘 먹고 이런저런 다른 친구들도 불렀고,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와 '성인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왔으며, 화룡점정으로 '술'도 구입해 왔다. 뜨끈하게 군불을 땐 골방에서 여드름 투성이 못생긴 사내아이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야한 영화를 보며 침을 꼴깍꼴깍 삼키던 그날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날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술을 입에 댄 건 아니다. 그날로 끝이었다. 다시 음주가 시작된 건, 대학에 입학한 후였다.


담배를 그만 피우기로 한 건 무병장수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거나, 곧 폐암에 걸려 죽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지금 당장 몸에 불편함이 생겨서다. 알레르기성 천식 때문이다. 나이 들다 보니, 젊어서는 없던 증상이 새로 생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게 담배 때문에 생긴 증상은 아니다. 고양이 때문이다. 몰랐는데, 검사를 해보니, 고양이 알레르기 지수가 매우 높게 나왔다. 처음 오월이를 데려다 키울 때만 해도 두드러진 증상이 없었다. 그래서 알레르기가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40대 중후반쯤 처음 천식 발작이 왔다. 잠을 자는데 갑자기 호흡 곤란이 오고 도저히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때 처음, 숨 막혀 죽는다는 것, 질식해 죽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 일로 이런저런 검사를 하다가 고양이 알레르기 지수가 매우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천식 발작이 순전히 알레르기 때문에 일어난 건 아니었다. 당시 나는 출판사에서 꽤 큰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천식 발작을 겪고도 내가 담배를 끊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알레르기성 비염/천식약을 먹으면서도 담배를 계속 피운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해, 문득, 약을 처방받아 오다가, 참으로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담배를 그만 피우기로 한 것이다.


내 젊은 날에는 담배가 젊음과 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했다. 20대의 우리 주변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보다 피우는 사람이 더 많았고, 길거리에서도, 술집에서도, 영화관에서도, 기차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길을 가다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담배 한 개비를 빌리는 것이 전혀 무례한 일이 아니었고, 가판대에서는 주머니 사정이 궁한 청춘들을 위해 한 개비씩 파는 이른바 '까치 담배'도 판매되고 있었다. 위생관념이라고는 전무해서 남이 피우던 담배도 기꺼이 공유해 입에 물곤 했고, 재떨이에 비벼 꺼진 꽁초도 '상태가 괜찮으면' 필터 근처에 묻은 재만 툭툭 털어 불을 붙였다. 바야흐로 '합법적인 중독 물질'의 전성시대였다. 믿지 않겠지만, 당시 우리는 빈 강의실에 모여 스터디를 빙자한 회합을 가질 때마다 담배를 입에 물고 강의실을 뽀얀 연기로 가득 채우곤 했다.


내가 다니던, 신수동의 그 대학은 여학우들의 흡연 성지이기도 했다. 다른 그 어떤 대학보다 여학우들의 흡연이 자유롭다는 소문을 들은 주변 대학 학우들이 심심찮게 찾아오곤 했던 것이다. 여학우의 흡연 하니 생각나는 에피소드도 있구나. 어느 날, 캠퍼스의 한 벤치에 앉아 가만히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내게 일면식 없는 긴 머리 여학우가 다가왔더랬다. 어? 나한테 여학우가 다가올 일은 전혀 없는데? 같은 과 여학우들도 내겐 관심이 없는데? 이상한 김칫국을 마시며 잔뜩 긴장하던 그때, 그이가 웃으며 말했다. "저기, 불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난 괜히 화들짝 놀라며 수선을 피우고는 "아, 그럼요, 여기 있어요, 여기" 하며 라이터를 꺼냈다. 순간, 긴 머리 여학우는 앉아 있던 내 높이에 맞추어 고개를 숙였고, 나는 불을 댕겼으며, 아래로 늘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태우고 말았다. 하필, 그날 라이터 불은 평상시보다 크게 활활 타올랐고, 순식간에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당황한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거듭 미안하다고 사죄했고, 그녀는 어쨌거나 자기 담배에 불이 잘 붙은 것을 확인하고는 머리카락을 툭툭 털며 괜찮다는 한마디를 남기고는 웃으며 뒤돌아섰다. 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정말 미안해요, 그때 그냥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문득, 중독 물질과 어울리며, 어둔 마음의 허리춤을 붙잡고 춤을 추던 젊은 날이 생각난다. 아름답지 않은 나날이었고, 괴로운 마음으로 살아간 나날이 더 많은 시절이었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그런 젊은 날이 애틋하게 기억될 때도 있다. 마음껏 술 마시고, 담배 피우던 자유가 그리워서가 아니다. 그저, 그때는 내 생의 여름날, 그것도 초여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될 거라 하더라도, 그때는 초여름의 파릇한 가지와 잎사귀가 생의 한가운데에 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1년이 지났으니, 그럴 만한 시기가 온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녀석은 이제 내 중독 물질 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싶구나. 그러면 알코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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