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무대를 준비하며

난 마이클 잭슨과 춤을 추었지

by 식목제

6학년 어느 날, ‘식’이와 나는 라디오 겸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앞에 두고 공책을 꺼내 들었다. 물론 연필도 잊지 않았다. 순전히 즉흥적인 생각에서 벌인 일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앨범에 실린 <Billie Jean>의 가사를 ‘들리는 대로’ 적어보기로 한 것이다. 당시 마이클 잭슨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던 나는 집에 아무도 없을 때면 AFKN 채널을 틀어 이전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신세계를 만끽하곤 했다. 거기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뮤직비디오와 <Billie Jean> 공연 실황을 볼 수 있었고, 그건 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다. 좀비들이 등장하는 <Thriller> 뮤직비디오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고, 그가 <Billie Jean>을 부르며 선보인 ‘문워크’는 그이의 발 밑에 분명 자동 이동 장치가 있을 거라는 착각을 일으켰다. 형이 구입해 온 <Thriller> 테이프를 들으며, 방바닥 위에서 문워크를 흉내 내 보았지만, 좀처럼 그이의 발놀림을 따라 할 수 없었다.


속상한 건 그뿐이 아니었다. 도저히 그 멋진 노래를 따라 부를 수가 없었다. 물론 내 아이라면 이렇게 말하겠지.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가사가 다 나오잖아.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당시에는 인터넷은커녕 집에 유선전화조차 없는 집도 많았고, 국내 대중가요의 노래 가사가 적힌 출력물을 구해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영어로 된 팝송 가사를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구한다 한들, 그걸 또 어떻게 읽을 것인가. 영어 조기교육? 그런 게 어디 있는가. 중학교에 들어가야 처음으로 알파벳을 배우던 시대다. 아무튼, 이런저런 까닭에 노래 가사를 익힐 방법이 없던 우리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해결책이 바로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고 귀에 들리는 대로 가사를 적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제대로 들릴 리가 있나. 이를테면 And don't go around breaking이란 가사는 ‘앤 도르랑 빼기’로 들렸고, But the kid is not my son은 ‘바 캐레스 난 마 썬’으로 들렸다. 뭐 어쨌거나 우린 테이프를 멈췄다 뒤로 돌렸다 하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며 가사를 완성했고, 그걸 보고는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의 마이클 잭슨 사랑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6학년 가을 무렵, 학교 강당에서 학예회가 예정되어 있었고, 우리 반에서는 창작극을 올리기로 했는데, 그 대본과 연출을 내가 맡게 되었다. 물론, 고백하자면, 대본 작성에 형의 도움을 좀 받았다. 내가 초안을 작성하면, 형이 세부적인 부분을 보완하거나 수정해주었다. 그때 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뮤직비디오를 떠올렸고, 좀비들을 둘러싸고 난장판이 벌어지는 소동극을 만들었다. 이 소동극에 영감을 준 <Thriller>도 빠질 수 없었다. 집에서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가지고 와,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도입부에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의 연습 과정을 지켜본 담임 선생님은 꽤 재미있는 아이디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대망의 리허설 무대가 열렸다. 강당에 실제로 아이들을 모아놓고, 학예회 전 과정의 리허설 무대가 마련된 것이다. 난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 뒤편에서 마이크 앞에 카세트테이프를 둔 채 사회자의 소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바로 스타트! <Thriller>의 음산하고도 웅장한 전주곡이 마이크를 타고 강당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고, 어설픈 좀비 분장을 한 아이들이 무대 위로 뛰어들었다. 리허설 무대는 대성공이었다. 관객으로 앉아 있던 아이들은 꽥꽥 소리를 지르며 난장판을 벌이는 좀비들의 무대에 박장대소를 했고, 선생님들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리허설 무대의 뒤끝은 좋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서 연습을 이어가던 우리를 찾아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무야, 굉장히 재미있는 무대이긴 했는데, 좀 비교육적이라서 학예회 무대에 올릴 수는 없겠다. 다른 걸 하나 다시 만들어야겠다.” 속상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담임 선생님이 너무 잘 만들었다고, 아이디어가 정말 좋다고, 거듭 칭찬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난, 두 번째로 아주 ‘도덕적인’ 내용의 창작극을 만들었더랬다. 대강 이야기하자면, 버스 안에서 어르신에게 자리 양보를 하는 착한 어린이가 등장하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우리끼리는 재미있게 연습했다. 여자아이에게 할머니 복장을 입힌 뒤 머리에 스카프를 씌우고는, 서로 좋다고 낄낄거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학예회는 그럭저럭 문제없이 끝났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학예회였다. 비록, 리허설이긴 해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Thriller> 음향효과까지 넣으며 좀비 무대를 선보인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그것은, 선생님의 지지 때문에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학교라는 곳을 다니면서 만난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내게 그들은 말도 안 되는 편애와 말도 안 되는 편견과 말도 안 되는 폭력(말로든 물리적으로든)의 총체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그이는 내게 아이들을 비교적 편견 없이 대하는,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때 우리 반에는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학교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형’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이를 동급생 친구로 대하라고, 형이라 부르며 거리를 두지 말라고 당부했다. 키가 크고 덩치도 컸던 그이는 순하고 착한 아이였고, 다른 반에서 주먹 좀 쓴다 하는 녀석들이 우리 반 아이를 괴롭힐라치면 앞에 나서서 든든한 지킴이가 되어주었다. 그이가 우리와 격의 없이 지내게 된 데는 선생님의 그 당부 한마디가 크게 작용했다.


그때를 생각하니, 선생님이 나의 일기를 아낌없이 칭찬해주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6학년이 끝나가던 어느 날, 마지막으로 일기 검사를 마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일기장을 돌려주다가, 문득 내 일기장을 손에 들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나무의 일기장인데, 나무가 6학년 내내 일기를 정말 잘 썼다. 선생님 생각으로는 웬만한 고등학생보다 잘 쓰는 것 같다. 일기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 사람은 나무 일기를 한번 참고해 보도록 해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이의 그 말은, 두고두고 내게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갈 때, 철학과에 가기로 하면서도, 취업을 할 때, 출판사에 가기로 하면서도, 난 글을 읽고 글을 다루는 일이라면 크게 문제없이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믿음이 더 깊이 있게, 더 넓게 확장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그건 우울을 핑계로 한 게으름과 불성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삶을 생각하다 보면, 갑작스럽게, 잊었던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기도 한다. 어제, 이웃의 글에 'AFKN'이라는 영어 약자를 적다가, 그 미군 전용 채널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어린 날의 기억들이 쏟아져 내렸다. 아, 그때 난, 40년 뒤의 삶은커녕 4개월 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지 못할, 마돈나의 야한 춤을 보며 부끄러워하고,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보며 황홀해하던, 어린애일 뿐이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이에 맞지 않는 사변적인 일기를 쓰고, 이미 인간관계의 부질없음에 고통스러워하던, 그럼에도 어린 '화'에게는 애틋한 마음을 품던, 조금은 이상한 아이였다. 그 아이가 꿈꾸던 것은, 사실, 없었다. 그러니 40년 뒤의 지금 이 삶이 실망스럽다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때를 생각하니, 40년 너머를 기억하니, 40년 이후를 바라보니, 무언가 마음이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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