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태어난 오월은 이제 노령묘가 되었고, 관절 상태가 좋지 않아 더 이상 신나게 뛰어다닐 수가 없다. 잰걸음으로 약간 절뚝이며 걷는 오월은 머지않은 미래에 밀어닥치게 될 녀석의 부재를 생각하게 만들곤 했고, 그때마다 난 아직 오지도 않은 슬픔에 잠겨 괜한 눈물이 나곤 했다. 2014년에 태어난 날두는 달랐다. 여전히 쾌활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반려인을 졸졸 따라다니는 이 녀석은 늘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설 때면 강아지처럼 뛰어나와 꼬리를 곧추세우고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날두는 더없이 건강했고, 그런 까닭에 나는 오월이 떠난 후에도 날두가 조금 더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하리라 여겼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생각해 보니, 쉰이 채 되지 않은 장자가 여든을 바라보는 어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목도한 내가 그렇게 단정적인 결론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날두가 세상을 떠났다. 급성신부전으로 인해 앓아누운 지 불과 5일 만의 일이었다. 날두가 중병에 걸렸으리라 짐작하지 못했다. 귀리 풀을 먹은 뒤 곧잘 토하기도 하고, 감기에 걸린 탓에 며칠 동안 밥을 잘 안 먹기도 했던 녀석인지라, 그럼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던 녀석인지라, 우린 그런 것인 줄만 알았다. 인근 도시 속초의 동물병원에서는 다룰 수 없는 질환이라 했고, 내처 서울로 달려갔지만,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였다. 날두는 선천적으로 신장이 하나밖에 없는 녀석이라는 걸 처음 알았고, 하나밖에 없는 신장이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날두가, 갔다.
병원에서 날두의 사망 소식을 알렸을 때, 그렇게 죽은 날두를 만났을 때, 녀석은 한쪽 눈을 다 감지 못하고 있었다. 괜한 소리지만, 죽기 전,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보고 싶었던 것처럼, 그렇게 실눈을 뜬 채, 영원한 잠 속에 빠져 있었다. 굳어가는 날두의 몸. 아이는 날두가 잠자는 것 같다며, 일어나라고, 자꾸만, 부질없이, 녀석을 흔들어 깨웠다. 살면서, 내 아이가 그토록 서럽게 우는 걸, 그토록 오래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건 나도,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날두가 간 후 3일 동안, 녀석의 화장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내내 터져 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날두가 늘 껌처럼 붙어 다니던 아내는, 날두를 유난히 사랑해 가끔은 녀석을 우리 아이 이름으로 부르는 실수를 저지르곤 하던 아내는 날두를 부르며 통곡했다.
부재와 상실이 넘쳐흐른다. 비교적 한 장소에 가만히, 오래 머무는 오월과 달리, 날두는 집 안의 모든 영역을 탐색하고 관리하기 좋아했다. 이 집은 날두의 왕국이었다. 날두가 발자취를 남기지 않은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방바닥은 말할 것도 없고, 옷장 안, 냉장고 위, 싱크대, 창틀, 침대, 소파, TV 거치대를 비롯한 각종 선반, 인간 화장실, 다용도실, 창고, 마당, 나무 데크, 뒤뜰, 심지어는 마른빨래가 아직 담겨 있는, 문 열린 건조기 안까지.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날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날두의 환영이 여기저기서 우리의 시선 끝에, 손 끝에, 발 끝에 어른거렸다. 집으로 들어서며, 나는, 늘 그랬듯, 습관처럼 큰소리로 부른다. “날두야~” 날두의 사진과 짧은 동영상을 뒤적인다. 이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탄식하듯 중얼거린다. “날두야, 날두야. 날두 만지고 싶다.”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새 장난감. 지난주, 아내는 날두가 좋아하던, 해진 장난감 대신, 새 장난감을 구입했더랬다.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장난감. 장난감 뒤, 날두가 뛰어올라가 낮잠을 즐기곤 했던 장식장 위로 녀석이 깔고 앉았던 작은 담요가 놓여 있다. 아내에게 공연한 소리를 한다. “저 담요, 당분간 치우지 마요. 빨지도 말고. 알겠지?” 오월이가 야옹거린다. 자신에게 관심을 달라고, 이리 와 궁둥이를 두드려 달라고 말한다. 오월이 누울 때, 궁둥이를 두드려 달라며 누울 때, 날두는 늘 오월에게 다가와 냄새를 맡곤 했다. 그러면 오월은 어김없이 귀찮다며 신경질을 부렸다. 이제, 오월이를 귀찮게 할, 날두는 없다. 마루 한쪽, 날두의 빈 밥그릇은 곧 치워질 것이고, 난 오월이 혼자 밥을 먹을 때마다, 그 옆자리 빈 공간에서 날두의 환영을 찾을지도 모른다.
난 언제나 너희들과 함께 자는 걸 좋아했다. 오월이 내 옆구리와 허벅지 사이 어디쯤 자리를 잡은 채 기대고, 날두가 기댄 오월을 넘어, 내 몸을 밟고, 두 다리 사이 빈 공간에 자리를 잡으면, 난 너희들의 무게를 느끼며, 너희들의 존재를 느끼며, 그렇게 함께 있는 것이 기뻤다. 그런 나를 보며, 아내는 가끔 놀리듯 말했다. “그렇게 좋아?” 날두와 함께 잔다는 건, 긴 시간 연속적인 숙면을 취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새벽에 배가 고프면, 날두는 늘 아내나 나를 깨웠다. 잠자는 내 얼굴 쪽으로 다가와 그 까만 얼굴을 들이댄 채 “와앙” 하고 소리를 질렀고, 그래도 일어나지 않으면 내 몸을 밟으며 이래도 일어나지 않을 거냐고, 얼른 일어나 새 밥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비록 조금 짜증을 내긴 했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녀석의 밥그릇을 채워 주곤 했다. 이제 우리는, 새벽밥을 챙길 일이 없을 것이다.
오월은 간식을 그다지 자주 요구하지 않는다. 싱크대 한쪽을 가득 채운 간식들은 사실 날두를 위한 것이었다. 이제 저 맛난 간식들은 꽤 오랫동안 바닥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날두 간식비가 꽤 든다며, 하여간 입맛이 까다롭다며, 요구 사항이 많다며, 우리끼리 농반진반, 알아듣지도 못하는 날두에게 핀잔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우리는, 그렇게 날두를 놀리며, 녀석을 사랑했다. 우리가 한마디 말을 던지면 늘 밝고 경쾌하게 화답하고, 우리만 아는 갖가지 표정과 목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던, 그렇게 우리에게 마음을 주던 녀석을 사랑했다. 사실 녀석은, 원하는 게 많지 않았다. 그저 우리와 함께 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많은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부재와 상실이 넘쳐흐른다. 더불어 흘러넘치는 눈물을 막을 길도 없다. 오늘은, 건조기의 빨래를 꺼내다가, 건조기 안이 궁금하다며, 온기가 남아 있는 빨래더미에 올라앉아 있던 날두가 보여 눈물이 나고 말았다. 오늘은, 창문을 열어달라고 창틀 위에 앉은 오월을 보며, 언제나 오월 뒤를 따라 나가던 날두가 보여 눈물이 나고 말았다. 오늘은, 청소기를 돌리다가, 내가 청소기에 손만 대도 화들짝 놀라, 걸음아 나 살려라 꽁무니를 빼던 날두가 보여 눈물이 나고 말았다. 오늘은, 마루에 앉아 오월의 궁둥이를 두드리다가, 그럴 때면 슬쩍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앉던, 올라앉아 빤히 내 얼굴을 올려다보던, 오월만 만지지 말고 나도 쓰다듬어 달라던, 날두가 보여 눈물이 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