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그저, 허깨비였을 뿐
아버지의, 나의, 속절없는 눈물에 부쳐
한 달여 전 뇌졸중을 겪은 아버지는 왼팔을 못 쓰게 됐고, 말하는 게 어눌해졌다. 하반신에 이어 팔과 입을 뜻대로 움직이기 어려워진 탓에 의욕도 많이 꺾인 듯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괜찮다며, 지낼 만하다며, 와줘서 고맙다며 제법 쾌활하게 이야기하곤 하던 아버지는 낙담한 듯했고, 침울해져 있었다. 점점 허물어져 가는 삶, 이를 되돌릴 길은 없다. 아버지의 삶은 허물어져 가고 있고, 우리의 원가족사는 점점 수면 아래로 침몰해 가는 중이다. 나는, 낙조를 바라보듯, 한때 빛났던 적 있으나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삶의 풍경을 목도하듯, 우리들의 이야기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를 만나자마자 묻는다. “아버지, 저 왔어요. 누가 왔게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이가 말한다. “작은아들.” “맞아요, 작은아들. 그런데, 막내아들이라고 불러주세요. 난 그게 더 좋더라.” 마비가 온 왼팔이 불편한 듯했다. 아버지의 왼팔을 주무르다 보니, 문득 생전 어머니의 발바닥을 지압해 주던 기억이 떠오른다. 기억에 사로잡혀서인지,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의 왼팔 때문이지, 생각에 잠긴 나는 오늘따라 입 밖으로 별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만히 손만 주무르는 내게 아버지가 묻는다. “장인은 잘 계시지?” “네, 그럭저럭 잘 지내고 계셔요.” “그이가 참 씩씩한 분인데.” “그래요, 아버지. 씩씩한 분이에요.” 그 순간, 아버지의 눈이 촉촉해졌다. 면회 때마다, 옛이야기, 특히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 눈시울을 붉히곤 하던 아버지이지만 내 장인어른 이야기에 눈물을 흘릴 줄은 몰랐다. “왜요, 아버지. 왜 사돈 이야기를 하시다가 우셔.” 그러자 아버지는 양 미간을 찌푸리며 더 많은 눈물을 흘린다. 그러고는 말하는 것이다. “친구잖아.” 물론 장인어른은 아버지의 친구가 아니다. 하지만 단박에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늙어 스러져가는 아버지는 당신보다 불과 한 살 아래인 사돈이, 저기서 늙어가는 그이가, 자신의 친구와 다름없는, 동시대를 산 동년배가 잘 있는지, 아직 살아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문득, 두 분이 첫 대면을 하던 상견례 날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지금의 내 아이보다 불과 네 살 많은 참 어린 녀석이었고, 그이들은 막 환갑을 맞을 참이었지만 여전히 젊고 활력 있는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당시 그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삶의 좋은 시절이 끝났고, 이제 늙어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삶이 허물어진다는 것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사실 그이들은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드리며 말한다. “아버지… 아버지, 너무 서글프게 생각하지 마세요. 너무 서럽다 생각하지 마세요.” 잠시 말을 멈춘다. 그이에게 좀 더 울 시간을 주고 싶다. 하지만 아버지가 당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길 바랐다. “아버지…, 아버지, 지금 이렇게 누워 계시지만, 생각해 보면 정말 잘 살아오셨잖아요. 빛나는 시절도 있었고요. 아버지, 잘 사셨어. 그렇지 않아요?” 아버지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만날 때마다, 그이에게, 그이의 삶이 괜찮았다, 잘 살아왔다, 당신 덕분에 우리도 잘 살았다, 감사하다, 말해주곤 한다. 아버지와 나의 실제 거리가, 관계가, 사랑이 어떠했든, 던져진 존재로서 이 세상에 와 어려운 시간을 살아낸 그이의 삶을 온당하게 보듬어 안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지나간 상처를 헤집을 필요는 없다.
짧은 면회 시간. 허락된 시간이 끝나기 전에 농처럼 묻는다. “아버지, 내 이름이 뭐유?” “민구지, 민구.” 그래, 내 유년기의 이름은 민구였다. 옥돌 민자에 돌림자인 아홉 구자. “오랜만에 들어보네. 내 이름 민구라고 불러주는 거…. 어머니도 그랬어요. 내가 나이 들었을 때도, 늘 민구라고 부르더라고. ○○라 부르지 않고.” 지금의 내 이름은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 외할머니가 작명소에서 지어온 이름이다. 참 흔한 이름이라, 난 그게 작명소에서 유행하던 이름이었으리라 생각하곤 했다. “네 엄마가 지은 이름이라서 그랬겠지.” “제 이름도 어머니가 지었어요?” “그럼. 네 엄마가 젊어서부터 재주가 많았어. 재주가….” 처음 안 사실이었다. 난, 어머니가 당신의 손주들 이름만 지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유년기가 담긴 이름에, 옥돌 민자를 새겨 넣은 것도 어머니였던 거다. “아버지,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이 민구였다는 걸 아는 사람도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아버지가, 다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웃는 듯 우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울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울어도 돼요, 아버지. 아들 만났을 때 울어야지, 언제 울겠어. 울어도 돼요.” 울어도 된다. 당장 세상을 떠나는 건 아니라 해도, 이제, 아버지의 삶의 이야기는,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울어도 된다.
돌아오는 길에, 내 유년기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내 말을 떠올리며, 공연히 눈물이 나고 말았다. 운전 중에 눈물이 앞을 가리면 안 되는데, 속절없이, 아무것도 아닌 그 말에, 눈물이 나는 거였다. 서글퍼져서가 아니었다. 그저 이 의미 없고 부질없는 삶이, 본래 운명대로, 한 톨 먼지로, 망각으로, 무의미로, 부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사무치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름은 사실, 허깨비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