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일하기로 했다. 2020년 이곳으로 이주한 뒤 네 번째 일터다. 지난 3년간 매해 일터가 바뀌었다. 목재소 배송 기사, 농어촌공사 농지 현장 조사원, 공공기관 보조 인력, 그리고 이제는 편의점 점원. 강제 이주의 네 번째 해를 그렇게 시작하려 한다. 20년간의 출판 편집자 일을 뒤로하고, 수십 년간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이곳으로 올 때, 무얼 하며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기대나 각오 같은 건, 사실 없었다. 농사일을 하고 싶었지만, 그것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거라 믿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밭일은 내게 번뇌를 떨쳐내기 위한 수행 같은 거였는지도 모른다.
올해도 호미질을 하게 될까. 아마도 그러겠지만, 일의 규모는 줄이는 게 좋겠다. 지난해 농사를 망친 다음 힘이 많이 빠지기도 했지만, 다른 일을 하며 500평 농사는 조금 무리이기도 했다. 실은 무리가 아니라, 그걸 제대로 해낼 만큼 부지런하지 못한 탓일 테지만, 게으름을 인정하기보다, 그저, 내가 좀 지쳤다고 핑계를 대고 싶어 하는 거다. 지쳤다는 핑계로, 지난 농사 뒷마무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피복 비닐이 절반 정도 남아 있고, 곧 언 땅이 녹으면 그 일부터 처리해야 할 게다. 우스운 건, 비닐을 걷고 나면, 맨 땅을 갈고 나면, 난 또 무언가 심고 싶어지리라는 것. 분명 그렇겠지. 끊임없이, 예고된 절멸을 환기하면서도, 입춘이 오고, 정월대보름이 되니, 오는 봄을, 다시 솟아날 새싹을 기다리는 나를 보면, 난 또, 호미질을 하고 싶어지겠지. 그러면, 올해는, 꼭, 영주대장간 호미를 사야겠다.
오랜 세월, 나를 심을 수 있을까, 물었다. 나를, 어디에 심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짧지 않은 시간 출판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서울살이를 이어가면서도, 내가 거기에 뿌리내린 식물이 될 거라 믿지 않았다. 그저, 이 화분, 저 화분으로 화분갈이를 하는 식물처럼, 나의 실뿌리는 같은 자리를 맴맴 돌며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이 오면, 가만히 시들어, 낡은 화분과 함께 폐기될 운명이었다. 실뿌리가 화분을 깰 수 있을까. 화분에 금을 내고, 동그랗게 말린 제 발을 꼿꼿이 세우고, 오래된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나를 심을 땅을, 스스로 뿌리내릴 대지를 찾을 수 있을까. 그건, 꿈이라기보다 몽상이었지만, 삶이 꿈속의 꿈이라면, 몽상이라 한들 꿈꾸지 못할 이유가 무엇 있겠는가. 나의 몽상은, 내가 나를 심는 것이었으니, 뿌리내려 살다가, 고목이 되어 죽어 가는 것이었으니, 마침내 해체되어, 대지의 일부가 되는 것이었으니….
허나, 나는 알고 있었다. 나를 심지 못하리라는 걸. 어느 밭에, 어느 산기슭에 잠시 발 담갔다가, 다시 떠나는, 방랑하는 식물이 되리라는 걸. 뿌리내리지 못한 식물이라, 이름도 없으리라는 걸. 그리하여 내 마음은, 내 영혼은, 언제나 부유하리라는 걸. 올해는 나무 몇 그루를 더 심어야겠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떠돌지 않는 진짜 나무를, 깊이 뿌리내려 나보다 더 오래 살 나무를, 흙이 된 나를, 원자가 된 나를 품어 안을 나무를. 그래, 나를 심으려 하기보다, 차라리 나무를 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