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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목제 Nov 21. 2023

봉우리란 애초에 없었음을,

그저 삶을 살아내다, 낮은 데로 흐르는 것임을,

김민기의 <봉우리>를 처음 들은 건, 열여덟 살 때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년기의 막바지에 이르렀던 그때 내가 들은 건 양희은의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이었다. 이 노래가 담긴 양희은의 앨범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거기 수록된 곡들을 듣고 또 들었던 기억이 난다. 본래 김민기가 만든 이 노래를 양희은이 먼저 불렀고, 후일 작자가 <봉우리>라는 제목으로 다시 불렀다. 양희은의 곡도 좋았지만, 이 노래만큼은, 김민기의 울림을 따라갈 수 없다. 오랜만에 김민기의 <봉우리>를 다시 듣다가, 문득, 아버지를, 삶을,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이는 김민기를 알지도 못했다.


“허망하다.” 뇌경색이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아버지는, 마른침을 삼키며, 가까스로 입을 떼 말했다. 침묵을 지키며, 한참 내 눈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머릿속에 문득 떠올렸을, 삶의 영상들을 생각했다. 그 희미한 기억들을 어루만지며, 아버지는, 아마도, 삶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결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자신을 삼켜버리고 있음을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그이를 기다리는, 내일의, 내년의, 다음 생은 없기에, 살아 있으나, 그이의 삶은 죽어가고 있기에, 나는 그 허망함을 위로해 줄 어떤 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결코 위로가 되지 않을 위로의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잘 살아내셨어요. 빛나는 시절도 있었지요. 그러니, 허망해하지 마세요.


빛바랜 사진첩을 들여다본다. 거기, 허망한 삶의 장면들이 눅눅하게 묻어 있다. 아버지에게 물은 적 있다. 젊어, 원하는 것에 도전해 볼 기회가 있었다면, 무얼 하고 싶었느냐고. 고시. 아버지는 ‘고시’라 답했다. 그건 죽어버린 장자에게 대물림된, 그러나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꿈이기도 했다. 사진첩 속 젊은 아버지의 얼굴엔 가난과 좌절된 욕망으로 인한 우울함이 조금 드리워져 있지만, 스무 살 언저리의 남성 청년이 으레 그렇듯, 약간의 반항기 어린 눈빛과, 무리들 속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허세가 묻어 있다. 아버지는, 살아내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보통의 청년이었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추상명사는 참 막연한 거라서, 이른바 ‘고시 패스’가 가져다줄 구체적인 지위나 권력보다 이루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었다. 대체, ‘성공한’ 삶이란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런 까닭에, 보통의 사람들은, 보통의 욕망들은, ‘고시 패스’가 가져다주는 사회적 결과물과 같은 무엇을 획득함으로써 ‘성공’이라는 추상명사를 자기 삶의 고유명사로 치환해내곤 한다. 대개는 사회적 결과물과 ‘금전적 성취’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20대 때부터 70대 때까지, 아버지의, 어머니의, 그리고 그이들의 생에서 가지를 뻗은 세 남매와, 거기로부터 다시 싹을 틔운 어린 생명들의 삶이 뒤죽박죽 섞인 사진첩을 가만히 뒤적인다. 아버지는 사진을 남겨두는 것을 좋아했다. 사진은, 그이가, 자기 삶을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어쩌면 삶의 후반기에 접어들어, 성공한 삶을 자축하며, 생에서 생으로 이어진 가지들과, 흐뭇하게, 삶의 기록들을 함께 나누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진첩을 들추어보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끊임없이 기억을 캐내는, 기어코 이 지리멸렬한 삶의 연대기를 기억해 내려는, 나만이 사진 기록의 애독자였을 뿐이다. 어머니가 생의 활력을 완전히 잃기 전에는, 사진 속 이야기들의 시기와 배경에 대해 묻곤 했는데, 그 때문이었는지, 오랜만에 펼쳐본 사진첩에는 언제 어디서 촬영된 것인지 기록해 둔 어머니의 필체가 남아 있다. 어쩌면, 나의 물음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 자신의 기억이 희미해져 가고 있어서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


사진첩 속 연대기에는 아버지가 이루고 싶었던 성공한 삶의 서사가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직업에서 경력을 쌓아 나가고, 좀 더 높은 지위로 올라서고, 그에 따라 좀 더 넉넉한 보상을 받는 것. 그리하여 셋방살이를 벗어나고, 아내에게 좀 더 두둑한 월급을 가져다주고,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 이야기들이, 분절적으로, 그럼에도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삶의 장면들 사이에 숨어 있던, 다른 이야기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진첩의 이야기는, 아버지가 그럭저럭 성공적인 삶을 살아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면 되었는가. 젊은 그이가 꿈꾸었던 페어리 테일이 이루어졌다고, 화자와 그를 둘러싼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 되는 것인가. 그리하여 그이가 느낀 ‘허망함’이란, 그저, 무대가 막을 내릴 무렵 배우가 느끼는, 허탈함 같은 것 정도로 치부하면 되는 것일까. 물론, 그건 아니었다.


아버지도, 삶의 욕망을 품은 다른 누구들처럼, 자기만의 봉우리를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봉우리란, 사실, ‘성공’이라는 추상명사와 같은 것이었고,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잡으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멀어지며, 계속해서, 고갯마루 너무 다른 봉우리로 오라 손짓하는, 허상이었다. 허상을 잡으려 했던 욕망이 좌절될수록, 생애를 바쳐 분투하며 오르려 했던 봉우리가 멀어질수록, 아버지는 실망했고, 삶이 실패로 끝나버린 건 아닌지, 자괴하고 있었다. 그런 그이에게, 자신의 전 생애가, 허망하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체 난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대체 난 무엇을 얻기 위해 오르고 있었던가. 대체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허나, 욕망이 완결되는 봉우리란 애초에 없다는 걸, 성공이라는 추상명사를 움켜쥐게 만들어주는 최정상의 봉우리란 애초에 없다는 걸, 아버지가 알았다면, 어땠을까. 삶을 살아내는 존재에게, 봉우리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사실, 그저, 땀 흘리며 삶을 살아내는 일 그 자체일 뿐이라는 걸, 그것이 우리가 올라야 할 봉우리라는 걸, 아버지가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걸 알았다고 해서, 무너져 내리는 생을 기껍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내 생애 전체가 실패해 버렸다는, 깊은 좌절감과, 허망함을 느끼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그 어떤 말로도 아버지의 허망함을 위로할 수 없다는 걸. 그럼에도, 나는, 또 말하는 것이다. 살아내느라 애쓰셨다고, 당신에게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하라고, 비록 지금 이 순간은 서글프지만, 지난 생이 당신에게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슬프게도, 아버지는, 바다는 낮은 데로만 흐르는 물이 고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그리하여 기실 삶이란, 실체 없는 봉우리를 향해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을 살아내며 바다로, 우주로 돌아가는 것임을, 삶이란 아주 낮은 데로 흐르는 것임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삶에 대한 기억이 빛을 잃기 전, 아버지가 그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낮은 데로 흐르며, 삶과, 세상과, 가족과, 화해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내게, 묻는다. 너는 어떤 삶의 봉우리를 오르고 있었느냐고, 너는 낮은 데로 흘러갈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https://youtu.be/_Mmh-U-BF14?si=gQvoIdDflKZo3J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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