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식목제 Dec 12. 2023

기어이, 겨울비가, 내리고,

2023년 12월 12일, 어제부터 오늘까지 온종일 비, 2도~4도

12월 10일 오후부터 시작된 비가 12월 12일 저녁나절까지 계속됐다. 백두대간 위를 하얗게 덮은 눈구름은 낮은 곳에 있는 바다 마을에 당도하지 못한 채 눈물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어제는, 하루 종일, 잿빛 하늘이 흘리는 눈물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어제는, 하루 종일, 잿빛 하늘이 흘리는 눈물에 젖는 나목과, 눈물 젖은 나목을 뒤흔드는 바람의 장난을 속절없이 바라봤다.


가끔은, 이것이, 생의 본질인 듯 느껴질 때도 있다. 가까스로 생의 단서를 피워낼 봄을 기다리며, 기나긴 겨울을 견디는 것, 결국 돌아갈 그곳에서 흘리는 눈물 한 줌 받아 마시며, 뿌리로부터 단절되지 않기 위해 버티는 것. 그러니, 바람이 흔들어도, 바람이 헛된 장난을 걸어도, 말없이 견디는 나목처럼, 나는, 숨죽인 채, 잿빛 하늘이 흘리는 눈물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바람이 헐벗은 나뭇가지를 할퀴며 묻는다. 너는, 아직, 부러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느냐고. 바람이 헐벗은 영혼을 할퀴며 묻는다. 너는, 아직, 산산이 찢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느냐고.


기어이, 겨울비가, 내리고, 우주의 조각들이, 눈물로 흘러내리는데도, 나는 왜, 저 들판에, 슬픔으로 서서, 그들과 한 몸이 되지 않았는가. 나는 왜, 죽은 자와 산 자가, 부재와 존재가, 무의미와 의미가, 통정하고 살을 섞는, 잿빛 눈물의 시간에, 슬픔으로 서 있지 않았는가. 이 겨울비가 그치면, 꽝꽝 얼어붙는, 동토의 시간이 엄습해 올 텐데, 너는 또 어떻게, 생의 단서를 기다리며, 죽음을 견디려고 하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빈 상자를 개다가, 빈 마음을 접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