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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목제 Dec 15. 2023

성난 파도는 아가리를 벌리는데,

2023년 12월 15일, 비와 진눈깨비(백두대간에는 눈), 2도~3도

파타고니아 앞바다에서 오징어 주낙 선단이 불을 밝힌 채 오징어들을 낚아 올리는 광경을 봤다. 배 한 척이 어찌나 크던지, 고성 앞바다에서 오징어를 잡으러 출항하는 배들은 새끼배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곧이어, 낚싯바늘에 꿰어져 줄줄이 올라오는, 셀 수 없이 많은 오징어들의 모습. 난 그게 너무 참혹해서 얼른 채널을 끄고 말았다. 문득, 영문도 모른 채 입이 바늘에 걸려, 들어 올려지는 인간들을 떠올렸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오징어들과 달리, 인간이라면, 아마도, 끔찍한 비명을 질러대겠지.


그런 생각을 해본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난, 지난주에도 공장식 축산의 결과물인 프라이드치킨을 먹었고, 오늘 아침에는 우리에 갇힌 채 잠 못 이루는 산란계들의 알을 먹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가지를 뻗어 나온 이래, 인간은 유례없이 많이 먹고 있는데, 이는 생존을 위한 섭식을 넘어, 순전히 시각, 후각, 미각(심지어는 청각과 촉각까지)의 쾌락을 위한 행위로 확장되고 있다. 미디어는 끊임없이 '먹는' 이야기들로 도배되고 있고, 먹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더 감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골몰하고 있다.


욕망의 이야기 반대편에는 굶어 죽는 이들이 즐비하고,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지만, 우리는 배불리 먹고 먹어도 남는 욕망의 잉여물들을, 폐기하면 폐기했지, 나누고 싶어 하진 않는다. 하긴, 욕망은 본래,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었지. 욕망이 우리를 집어삼키는 날이 결국 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나누고 스스로 가난해지기보다, 욕망에 살해당하는 쪽을 택하겠지.


12월인데, 여름 장마 같은 비가 계속되고, 성난 파도는 모래사장을 삼켜버릴 듯 아가리를 벌린다. 내려앉지도, 어디론가 날아가지도 못한 채 낮은 곳을 배회하는 새들은 위태로워 보인다. 바다가 성난 것이, 하늘이 노해 눈물 흘리는 것이, 혹여, 파타고니아 앞바다에서 학살당한 오징어들 때문일까. 혹여, 고문당한 닭들 때문일까. 혹여, 혹여, 혹여....


12월의 잿빛 바다 앞에서, 성난 바다가, 혀를 날름거리며, 티끌 같은 나를, 삼켜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아,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살아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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