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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목제 Dec 16. 2023

삶에게, 혹은 밥에게,

2023년 12월 16일, 갠 하늘에 눈이 흩날리고, 2도~영하 6도

창고 안에 서서, 혹 손님이 오려나 밖을 살피며, 도시락으로 가져온 멸치주먹밥을 우걱우걱 삼키다가, 문득, 사무실에 앉아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오늘은 뭘 먹나 궁리하던, 옛 출판사 동료들을 떠올렸다. 하긴, 나도 마찬가지였겠지. 끼니를 때우며, 끼니를 거르며, 밥을 버는 숱한 타인들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겠지. 그러니, 젊디젊은 후배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 그이들에게 불편을 주는 건 아닌지 걱정하던 것은, 한가한 상념에 불과했구나. 악천후에도, 가게에서 팔 물건을 가져다주는 이들에게, 밥 대신, 쌍화탕 하나를 건네며 묻는다. 밥은 드셨어요?


창고 안에 서서, 손님이 들어서는 소리에, 채 씹지도 못한 멸치주먹밥을 꿀꺽 삼키다가, 문득,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밥 한 끼 실컷 먹지도 못하는, 빌어먹을 놈의 세상과 작별한, 승이를 생각했다. 승이가 죽을병에 걸린 것은 밥 때문이었을까, 부재하는 어미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가난과 상실과 결핍으로 인한 슬픔 때문이었을까. 어느 봄 소풍날, 어머니는 혹여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할, 승이와 나누어 먹으라며, 김밥을, 참 많이도 싸 주었더랬다. 승이와 김밥을 먹으며, 저만치서, 부잣집 도련님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삼삼오오 둘러앉아 잔칫상을 벌이던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를 떠올린다. 그래도 내겐, 김밥 싸 줄 어미가 있어서, 잔칫상은 아니더라도, 밥은 먹을 수 있어서, 그저 부족하게 살 뿐인 나와, 정말 가난하게 사는 승이 사이에는, 누구에겐 별것도 아닌 김밥 한 줄과, 누구에겐 별일도 아닌 어미의 손길이, 처연하게 놓여 있었다.


승이가 가고 나서, 하루 삼시세끼, 일 년 천 번의 밥을, 다시 마흔 번 넘게 먹었는데, 그리 배불리 먹고도, 나는 또 배가 고픈 건지, 창고에 서서,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멸치주먹밥을 입 안 가득 물고 있구나. 그럼에도, 오늘 점심에는 무얼 먹을까 궁리하는 게 사치인, 오늘 점심은 먹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게 일상인, 누구에게, 주먹밥 한 주먹은 잔치인 거라서, 잔칫상 받은 내가, 살아보겠다 먹은 밥을 근심할 일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서글픈 생에게 묻는다. 밥은 먹었느냐고. 서글픈 밥에게 묻는다. 삶은 살 만하느냐고.


내일은 영하 십 도로 곤두박질칠 예정.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이 간절해질 예정. 따뜻한 삶 한순간이 그리워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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