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슬픔이 다른 얼굴을 하고 있듯, 가을날도 다른 풍경을 입고 다가온다. 축제라고 해두자. 달이 차고 있는데, 어둔 이야길랑 꺼내지 말자. 일찍 아비를 잃은 아이의 눈물도, 아이를 가슴에 묻은 어미의 통곡도, 너무 빨리 어른이 된 섬집 아이의 서글픔도, 이제는 전설이 된 뿌리와 부러진 나뭇가지와 채 피지 못한 꽃도 이야기하지 말자. 차라리, 지난여름, 앵무새 깃털을 덮고서 죽어버린 아마존의 마지막 원주민을 생각하자. 26년 외로이 숲을 지킨 그이의 오두막을 기억하자. 홀로 50채 오두막을 지으며 그이가 상상했을 페어리 테일을, 온 식구가 축제를 벌이는 꿈을, 초연히 앉아 앵무새를 쓰다듬는 노인과, 차오르는 달빛 아래 춤을 추는 젊은이들과, 나뭇가지를 손에 쥔 채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흥에 겨운 개들이 짖고, 소슬한 바람이 달빛을 에워쌀 때, 홀연히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로, 새로이 시작될 전설에 설레었던 밤을. 아아,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꿈. 아아, 어쩌면 그이가 꿈. 축제의 밤은 온 적 없었으니, 이미 달은 기울어 그믐으로 가고, 삭일의 허공이 환한 밤을 꿈꾸어도, 그것은 꿈속의 꿈. 서둘러 겨울을 기다리는, 새하얀 꿈.
다시 추석이 왔다. 일찍이, 2022년의 추석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다. 아니, 이제는 가을 따위 여름과 겨울이 나누어 가지라고 했다. 거짓이다. 실은, 가을날을 사랑했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하지만 점점 더 차가워져 가는, 가을날의 햇살과 공기는, 내 영혼의 온도와 너무나 닮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제의 주간이 되면, 나는 바칠 제물이 없는 제사장처럼 전전긍긍하곤 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축제가 열린 적 없으니, 그 무엇도 준비할 필요 없었는데 말이다. 당신들의 가을이, 부디 축제였으면 좋겠다. 그것이 비록 페어리 테일일지라도, 달빛 아래 환한 밤이었으면 좋겠다. 거기 있는, 그대들에게, 달의 정기를 담아, 축복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