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지? 너무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이렇게 편지를 쓰다 보니, 잘 지내느냐고 묻기도 좀 쑥스럽다. 잘 모르겠어, 왜 그렇게 오랫동안 연락을 못했는지. 실은 몇 년 전에 홍대 앞에서 네가 걸어가는 모습을 봤어. 정확히는 네가 걸어오는 걸 봤지. 맞은편에서 말이야. 고개를 푹 숙인 채, 무얼 그리 골똘히 생각하는지, 주춤주춤, 마치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듯한 발걸음으로 걸어오더라. 널 발견하고는 한참을 돌덩이처럼 서서 쳐다보는데도, 넌 알아채지 못하더구나. 그런 너에게, 차마 다가가 말 건네지 못했어. 그냥 한참을, 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지.
기억나? 그해 여름, 신촌에서 홍대까지 걸어가, 우리가 늘 들르던 그 허름한 선술집에서 한껏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는 홍대 안으로 무작정 뛰어들어갔던 일. 거기서 안치환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잖아. <귀뚜라미>를 부르고 있었어. 그건 우리가 좋아하던, 나희덕의 시이기도 했지. 난 그 대목이 가장 좋았어.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그래, 너와 난, 꼭 그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곤 했지. 우린, 말 그대로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고 울음을 토해내곤 했으니 말이야. 그러고는 비가 왔잖아. 순식간에 무대는 텅 비고, 사람들이 흩어졌어. 비를 흠뻑 맞은 우리가 어느 건물 한 귀퉁이에서 젖은 담배를 꺼내 들고는, 그걸 말려서 피워보겠다고 온갖 궁상을 다 떨다가,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서로 깔깔거리며 어깨를 치고 웃어댔잖아.
난 지금, 바다가 가까운 곳에 있는 어느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어. 벌써 몇 해가 지났네. 바다 가까운 데 살면서도, 통 가까이 다가가 바다를 들여다보지 못했어. 우스운 얘기지만,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자꾸만 오래전 네가 생각나서 말이야. 넌, 바다를 보고 싶다 하더니, 언젠가는 바다에서 죽고 싶다 하더니, 막상 바다를 앞에 두고는, 그칠 줄 모르고, 내내, 서럽게 울기만 했잖아. 그게 마지막이었어. 넌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 네가 살던 집에 찾아갔을 때, 넌 이미 어디론가 떠난 뒤였어.
그 바닷가에서, 난 너에게 아무 말도 묻지 않았어. 네가 신물이 넘어올 때까지 울고 나서야, 울음을 그치고 나서야, 그저 네 눈물을 닦아 주었어. 그런데, 그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구나. 왜 난 너에게, 묻지 않았을까. 무엇이 너를 그토록 무참하게 만드는지, 무엇이 너를 그토록 서럽게 만드는지. 아니, 실은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다만 두려웠던 거야. 네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게 말이야. 그걸 들여다보면, 널 안다고 말하면, 난 죽고 싶어질 것 같았거든. 미안해. 그렇게 널 잃었어. 그렇게 널 잃는 바람에, 널 외면한 바람에, 난 죽지 않았지만, 이렇게 죽은 채로 살아왔어. 홍대 앞에서, 너에게 말 건네지 못한 것도, 너를 아는 채 못한 것도, 실은 이제 더 이상, 나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야. 예전처럼 너의 어깨를 건드리면, 너를 만지면, 너도, 나도, 바스러질 것만 같았어.
오랜만이지?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너를 만나고 싶어. 하지만 너에게 이 편지를 건네줄 방법이 없어. 내가 보내는, 이 초라한 타전 소리가, 네게 가 닿을 수 있을까? 네 마음을 울릴 수 있을까?
_ 2022년 10월 25일, 내가 너에게, 내가 나에게, 네가 나에게
존재를 잊은 존재에게, 마음을 상실한 마음에게, 시간을 잃은 시간에게, 보내는 편지.
오해의 소지가 있어 덧붙여야겠네요. 이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실제 대상을 두고 쓴 편지가 아니랍니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 쓰는 편지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내 삶에서 인연이 닿았던 모든 이들에게 쓰는 편지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내 마음과 만났던 그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일 수도 있겠지요. 사람들 속에 살면서도, 결국 그이들과 맞닿지 못한, 내 삶에게 보내는 편지일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