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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s Nov 25. 2019

[OB's시네마]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으면서는 가슴이 미어지고 속이 답답하고 두려웠다. 영화를 보면서는 가슴에서부터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오다가 울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라는 포스터 속 문구처럼 나도 잘 아는 이야기라서, 지영이의 언니도, 엄마도, 팀장님도, 직장 동료도 모두 차라리 몰랐으면 좋겠을 정도로 뼈저리게 잘 아는 이야기라서 그랬던 것 같다.


1982년 4월, 벚꽃이 함박눈처럼 흩날리던 날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김지영 씨는, 함박눈이 내리던 날에 예쁜 딸을 낳았다. 그 말을 엄마에게 전하며 전화를 급히 끊어버리던 지영 씨의 목을 메이게 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엄마의 딸인 나처럼, 나의 딸인 아영이도 나를 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결코 기쁘지 않아서였을 거라고 짐작했다. 김애란의 <서른>이 떠올랐다. "너는 자라서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우리 엄마는 늘 나에게 엄마처럼 살지 말라 하셨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딸들은 왜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발버둥쳐야 할까. 엄마는 딸에게 자신의 삶을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딸은 그 삶을 벗어나기 위해 배우고 일하지만, 결국 엄마와 같은 여자라서 주저 앉는 순간이 생긴다. 그 모습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또 무너져야 했을까. 그 마음을 알아서, 모든 장면마다 그렇게 눈물이 났다. 

그래서 여성들은 서로 연대한다. 쉽사리 도움도 요청하지 못한 채 불안에 떠는 여학생이 걱정되었던 한 여자는 자신이 내릴 정류장도 아닌 곳에 내려 학생을 도와주고, 전 직장의 동료와 상사는 경력이 단절된 지영에게 손을 내밀고 기회를 제공한다. 모두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가 겪어야 할 두려움과 그에게 지워졌을 삶의 무게를 지독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견고한 연대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지만 꾸준히 가려져왔다. 영화가 그를 조명할 때 나는 그 연대가 반갑고도 서글퍼 또 울었다.

이처럼 영화는 그동안 대중에게 익숙했던 미디어들이 말하지 않았던 많은 것을 드러내며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한 가지 예로, 어떤 기자는 김지영에 가려진 정대현의 삶을 조명하는 기사를 썼다. 여성 작가가 쓴 여성의 삶을 다룬 소설을 원작으로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 영화 하나조차 견디지 못하고, 타이틀롤인 김지영에게 그의 남편인 정대현이 가려졌다고 생각하며 그런 기사를 쓰고야 마는 그 남기자의 의도가 바로 이런 영화가 한국에 필요한 이유를 방증한다. 


아픈 아내가 혼자 빨래를 개키고 있는데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캔맥주만 들이키고 있는 정대현을 보며 그의 안타까운 눈빛만을 읽을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이들에게는, 이런 영화가 아니면 김지영의 삶은 보이지조차 않는다. 그들에게 편하게 낮에 밖에 유모차 끌고 나와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커피나 마시는 맘충은 그저 벌레일 뿐 삶의 무게를 짊어매고 살아가는 보통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


김지영의 대사처럼, 우리 시대의 김지영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네가 모르는 사이에 지영이는 이렇게 살았다고 외치기 위해 이 작품은 존재한다. 

또 이 작품은 지영이가 나라서 울고 가슴 아파하는 지영이들을 보듬어 안아주며 너 힘든 거 안다고, 너도 하고픈 거 하라고 말하기 위해 존재한다. 


세상의 모든 김지영의 아빠와 동생과 시어머니와 직장 상사와 동료가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나약해빠져서 멍청하고 안일한 정대현은 두 번 봤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안 봤으면 좋겠다. 엄마가 받을 위로보다 슬픔이 더 클까봐 무서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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