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거윅 <작은 아씨들>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최근 몇 년 간 영화와 연기를 통해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던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을 보고 왔다. 그레타 거윅이라서, 시얼샤 로넌과 엠마 왓슨과 티모시 샬라메라서 영화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흥분하며 기다렸다.
“야망, 여성, 예술, 돈, 장사…. 이 이야기는 오래된 19세기 시대극 상황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이야기다. 세상에서 허락하는 것보다 더 멀리 가고자 꿈꾸는 여성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 그레타 거윅.
감독은 <작은 아씨들>을 다시 읽고 이 이야기가 현대에도 너무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 놀라움을 느끼고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나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떻게 저 옛날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2020년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절실할 수 있는지 감탄하고 또 슬퍼했다..
영화는 그동안 여성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아니 그저 살아남기만을 위해서라도 해야만 했던 선택들이 얼마나 쉽게 비난과 조롱을 당해 왔는지를 자연스레 보여준다. 가정의 가난에 지긋지긋하게 시달리며 희생해야 했던 삶을 끝내고 싶었던 여성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돈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펼쳐 성공하는 것, 사창가로 가는 것.(아이들의 대고모는 여자가 돈을 벌려면 배우가 되거나 사창가로 가면 된다고 하면서, 그게 그거지만, 이라고 덧붙인다.) 이 몇 안 되는 선택지 중에서 어떤 선택이 가장 일반적이고 ‘정상적’이라고 비춰졌을지는 지나가던 개를 붙잡고 물어봐도 알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좋은 가문의 남자와 만나 결혼해 풍족하게 살기 위해 들였던 노력은 늘 낭만과 꿈도 없이 세속적인 가치만을 좇는 일이라며 비난 당해왔다는 것도.
사랑하지 않지만 돈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려는 여자에게 사랑과 운명을 운운하는 남자는 같은 곳에 서 있지 않았다. 로리에게 왜 결혼이 경제적 교환이 아닐 수 없는지를 역설하던 에이미를 보며 깨달았다. 여자들의 삶에 놓인 선택지 중 최선이라 여겨졌던 선택지조차 얼마나 많은 희생을 내포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은 최선이 아니라 차악일 수도 있었다는 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앞치마를 입고 붓을 든 채 로리에게 맞서던 에이미는, 미래의 약혼남이 될 남자가 왔다는 걸 알고 로리에게 앞치마의 뒷단추를 풀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앞치마를 벗고, 그 자리에 대신 예쁜 망토를 두른 채 남자를 만나러 간다. 에이미가 두고 간 것들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를 생각하며 많이 슬펐다.
Women.
They have minds, and they have souls, as well as just hearts. And they've got ambition.
And they've got talent as well as just beauty.
And I'm so sick of people saying that love is just all a woman is fit for.
I'm so sick of it.
But I'm so lonely.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뉴욕으로 떠나 글을 쓰던 조가 울부짖던 장면도 맘속에 계속 크게 남아 있다. 사랑만이 여자에게 필요한 전부라고 외치는 세상에 질려 결혼 없이 살기로 결심하고 그 삶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왔는데, 사랑이 그리워 외로워하는 자기 자신을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토해내는 울음이 너무나 아팠다. 그래도 된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여자에게 사랑이 전부가 아니더라도, 사랑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도 된다는 것. 사랑이 사람에게 주는 것을 누려도 된다는 것. 그래서 자신을 가장 자유롭게 만드는 사람을 거절하고 떠났던(조는 자신이 도망쳤다고 표현했다.) 걸 후회하는 것조차 망설이는 것 같았던 조가 안타까우면서도 마냥 안타까워만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아팠다. 조는 여전히 내 안에도, 내 친구들 안에도 남아 있으니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거금을 써 버리고 후회하는 메그를 보면서도 눈물이 많이 났다. 4자매가 모두 나와 닮은 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크게 웃고 많이 울었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산뜻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결국엔 웃으며 살아가는 여자들의 삶을 기대하고 응원하게 된다. 하루하루가 고비인 삶을 살면서도 절대 울지 않고 씩씩하게 하루씩을 살아냈던 프란시스 하처럼, 작은 아씨들의 여자들도 삶에 대한 의지를 빛내며 살아간다. 그 빛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아낸 감독의 시선이 멋지고 따뜻했다. 에이미의 말처럼,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쓸수록 중요해진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더 중요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