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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s May 06. 2020

[OB's드라마] "Ordinary Miracle"

플리즈 라이크 미 PLEASE LIKE ME

PLEASE LIKE ME

넷플릭스에서 또 하나의 명작을 발견했다. 추천을 받아 보기 시작했는데, 오프닝부터 등장하는 주인공의 외모와 목소리에 약간 당황해서 시청을 고민했지만 이내 휘몰아치는 B급 개그(나 같은 사람들을 붙잡기 위함인가)와 예상을 빗나가는 상황들에 빠져서 보다보니 어느덧 시즌1이 끝나 있었다. 모든 회차를 시청한 지금은, 처음에는 안 잘생겨서, 못돼서, 찌질해서, 성격이 괴팍해서 등의 다양한 이유로 마음을 주기 힘들었던 모든 캐릭터들이 이젠 드라마 속 캐릭터가 아니라 그저 현실에서 인생을 헤쳐나가는 인물들로 보여 그들의 삶을 향한 노력 하나하나가 애틋해 보일 만큼 정이 들었다. 그걸 해낸 작품이기에 더욱 명작으로 느껴지는 것일 테다.     


플리즈라이크미는 주인공인 조쉬가 감독과 주연을 모두 맡아 만든 호주 드라마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조쉬는 잘생기지도, 목소리가 좋지도, 몸매가 완벽하지도 않은 평범한 20대 남자다. 그렇다고 인격적으로 매우 훌륭하다고 말할 수조차 없다. 그의 룸메이트이자 오랜 친구인 톰 역시 마찬 가지. 그동안 봐온 드라마에서는 조연 중의 조연으로도 잘 등장하지 않았던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주연으로서 이 드라마를 채우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결함을 가진 보통 사람들의 삶이 드라마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드라마를 꽤 빠르게 정주행할 수 있게 만든 힘은 아마 그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을 따뜻하게 조명해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는 감독의 시선이었을 것이다. 비일상적인 특별한 소재를 다루는 장르물의 홍수 속에서, 비일상을 동경하고 궁금해 하는 우리의 일상이 지닌 빛을 포착해낸 드라마이다.      


조쉬는 바보 같은 고민으로 하루를 꽉 채우고, 짧은 생각으로 내뱉어버린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누가 봐도 이기적이지만 자신이 착하다 믿고, 도대체 왜 사랑에 빠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결국 불장난을 저지르고, 저 상황에는 저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해버리고 마는 이상한 사람들이 그럼에도 사랑하고 웃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산뜻하고 사랑스럽게 담아냈다. 결국은 그들이 사랑스러워보이게 만든다.      


조쉬와 그의 가족, 친구들에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모두의 삶이 그렇듯. 그들의 다양한 삶은 동성애, 이성애, 이혼, 비혼, 동거, 반려동물, 주거 문제, 생리 현상 등의 소재로 점철되어 있다. 우울증, 자살, 낙태와 관련된 무겁고 민감한 사건들도 등장한다. 드라마 속 인물들 특히 주인공인 조쉬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사건들을 시청자들에겐 다소 낯선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가끔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내가 가족과 친구를 대하는 방식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지만 결국 툴툴거리게 되고, 드라마에서 배운 것처럼 좋고 멋진 말을 늘어놓으며 친구를 위로하고 싶지만 손 하나 잡아주는 것도 어려운 나의 삶 역시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이해 안 되고 당황스러운 순간으로 가득할 것 같았다.      


조쉬 역시 표현에도 서툴고 모든 일을 현명하게 해결하지도 못하지만, 그는 늘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결국엔 자신만의 방식으로 함께 있는 사람을 웃게 만든다. 그게 가끔 눈치가 없어 보일 수도 있고,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조쉬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조쉬는 자신에게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 애쓰거나 누군가를 흉내 내는 대신 누구보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을 택한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 가지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체와도 같은 날 것의 진심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사랑한다. 모두가 못나고 이상하지만, 그래도 사랑한다. 그래서 웃는다.      


또한 이 드라마는 다른 드라마와는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인물 간의 갈등을 풀어낸다. 사실 다 풀어냈는지도 모르겠다. 저러고 끝이야?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을 정도로 찝찝하게, 그저 물이 시원하지 않게 졸졸졸 흘러가듯이 갈등을 유야무야 해결해 버린다. 분명 누군가는 상처 받고 누군가는 할 말이 더 남았을 텐데. 하지만 그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웃음이다. 그래서 상처가 남았어도 괜찮았던 것 같다. 사실 우리도 우리의 갈등을 언제나 완벽히 해결하진 못하니까. 그저 한 번이라도 더 웃고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 비슷하게라도 할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저기서 왜 저런 말을 해? 머저리 아냐? 쟤네 대체 왜 저래?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결국 그 어이없는 상황들을 보며 따라 웃게 만드는 건 조쉬의 이야기가 가진 힘이다.       


드라마가 끝난 뒤, 작은 아씨들의 대사가 떠올랐다.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쓸수록 중요해진다고 에이미가 말했었다. 지금껏 중요하지 않게 여겨져서 미디어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우리의 일상이 가진 힘을 이 드라마를 통해 느꼈다. 아무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지 않아서 가치 있는지 몰랐던 사람들의 삶과, 다소 민감한 ‘음지’의 소재라 여겨 자주 다루지 않았던 우울증이나 낙태와 같은 소재일수록 더 많이 다뤄져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닳고 닳도록 다뤄와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도 여전히 이성애에 관련된 콘텐츠는 다양한 형태로 쏟아지고 있다. 우리가 수많은 이성애 콘텐츠를 보고 자랐기에 이성애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그와 관련된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우울증과 낙태처럼 매우 ‘사적인’ 영역으로 숨어들어 다뤄지지 않는 소재에 대해서도 더 많고 다양한 방식의 콘텐츠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중요해지고, 그래야 금기시되지 않는다. 민감한 소재일수록 그것이 공개적으로 자주 다뤄지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질린다’고 착각해 불평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 역시 그 소재들이 늘 금기시되어 왔기에 그들이 윤리적 감수성을 키울 키우지 못해 만들어진 불평일 뿐이니까.      


그래서 마지막 에피소드를 본 후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 감정이 복잡해진 후, 조쉬는 언제나처럼 웃음으로 에피소드를 끝맺었다. 드라마를 끝낸 후에도 한참을 조쉬와 다른 인물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그들이 이 이후에도 함께 삶을 영위해나갈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인물들이 생생히 살아있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도 잘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랐다. 마치 내 친구들 같아진 모두가 앞으로도 저렇게 바보 같이, 멍청하게, 하지만 서로를 사랑하며 인생을 이어나가길 소망했다. Please Like Me. 평범하디 평범해서 주목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쩌면 평생을 바쳐 외치는 말은 바로 그 말일지도 모른다. 나를 좀 좋아해줘. 조쉬는 시청자들이 그들에게 응답하게 만들었고, 나는 비로소 그들을 좋아하게 됐다.      



+) 이 드라마는 내가 매회차 오프닝을 건너뛰지 않고 봤던 유일한 드라마이다. 오프닝 장면마다 주인공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요리를 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매번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귀여운 오프닝이니 다들 넘기지 말고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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