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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s May 12. 2020

[OB's북] 그때 알았더라면, 그때 달랐더라면……

한강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이라는 세 개의 소설로 이루어진 한강의 연작 소설집이다. <채식주의자>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영혜의 남편의 시점에서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의 시점, <나무불꽃>은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시점에서 영혜가 식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첫 번째 소설에서, 영혜는 어떤 꿈을 꾸고 모든 고기에 대한 혐오를 가지게 되며 돌연 채식을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설이 진행될수록, 영혜의 채식은 30대가 넘어서야 시작된 한 꿈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 아버지 때문에 갖게 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는 것을 독자로서 확신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영혜도, 영혜의 가족들도 영혜의 트라우마를 인지하지 못했고 그렇게 돌보지 못한 상처는 어른이 된 영혜의 삶에 점점 존재를 드러내다가 몇 가지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 사건을 촉매제로 하여 영혜를 정복하기에 이른다.      


영혜는 아버지에게 18살이 되는 나이까지 종아리를 맞으며 자랐고, 삼남매 중에 가장 자주, 세게 구타당하며 자랐다. 키우던 강아지가 영혜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이유로 강아지를 죽이려 한 아버지는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전거 뒤에 개를 매달고 동네를 돌고 돌아 결국 개를 죽게 만든다. 영혜는 그 순간을 모두 목격했고, 그렇게 죽은 개로 만든 보신탕을 먹었다.     


영혜는 그렇게 인간(동물)이 저지르는 폭력이나 살육 행위에 큰 적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자라는 과정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아버지의 구타 행위 때문에 그 적대심을 자신도 모르게 키워왔을 것이다. 그렇게 커져간 상처는 결국 영혜를 식물로 만들었다. 물구나무를 서서, 땅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나무 같은 인간으로.     


영혜가 가진 트라우마가 정신병으로 발현되어 영혜가 점점 완전히 미쳐가는 과정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이 소설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느끼게 된다. 미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정도로. 반면 영혜의 상처를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가족들이 영혜에게 고기를 강요하는 태도는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사랑해서, 걱정해서, 라는 이유로 영혜의 뺨을 때리고, 영혜의 두 팔을 붙들고 탕수육을 억지로 쑤셔 넣었지만 영혜는 소리를 지르며 탕수육을 뱉어내고 달려가 손목을 그었을 뿐이다.      


영혜는 이혼을 당하고 정신 병원에 갇히는 등 꾸준한 폭력을 경험하며 점점 나무가 되어간다. 영혜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억지로 음식을 들이밀며 설득하는 것 외에는 계기를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소설에서는 영혜의 마지막이 그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영혜는 결국 영영 나무가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영혜에겐 그것이 필연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미쳐가는 영혜를 바라보며 결국 영혜가 미친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뒤늦게 영혜의 삶을 되짚어보며 이제껏 영혜가 보냈던 신호를 인지하는 인혜의 모습은 우리를 너무 닮아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 그때 알았더라면, 그때 달랐더라면…….      


부질없는 가정만을 수없이 반복하며 그 시기보다 더 오랜 과거로, 더, 더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도 근원이 깊은 이 상처를 받기 전으로 돌이킬 수 있을 그때는 너무도 아득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인혜가 되어 누군가의 삶을 추적했다. 잘 알지 못하는 삶이라 답답하고 슬펐지만 단 하나 내릴 수 있는 확실한 답은 그의 상처 역시 너무도 오래되고 깊은 상처일 것이라는 것. 그래서 한없이 절망 속으로만 빠져든다.      


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것을 대답할 수 있는 자는 그에 대해 무지하고, 대답할 수 없는 자 중에서도 아주 소수만이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답이 없는 질문 속에서 점점 미쳐가는 사람의 정신은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그에 대한 답을 줄 수 없었다.      


세상에 속한 나와 다른 모든 이들 역시, 허망하게 과거만을 돌아볼 뿐이다.      


2016.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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