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마을 차차차
인생은 얄궂다.
우린 늘 잘잘못이나 책임을 따지며 살지만, 인생의 방향은 다른 곳에서 결정된다.
실제로 내가 잘못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를 원망했을 때,
내가 누군가를 원망했을 때,
누군가 나를 원망했을 때,
그리고 그 누가 나를 원망해도 네 잘못이 아니라 말해주던 사람마저 영영 사라져 버렸을 때,
삶은 각자의 방향으로 몸을 튼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사람들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손을 건넨다.
어둠 뿐인 지옥으로 스스로 걸어가던 삶을 빛이 있는 곳으로 돌려놓는다.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한 내가
아무리 나를 다시 어둠속에 가둬도 자꾸만 나를 밖으로 끄집어낸다.
그러나 나를 원망하는 내가 내 발을 잡고 놔주지 않는 탓에
내 한 쪽 발은 언제나 어둠에 담가진 채였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았는데,
이게 내게 허락된 가장 큰 빛인지 알았는데
너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나는,
나를 사랑하는 너와
양발을 맞춰 걷고 싶어져 버렸다.
더 밝은 곳으로 나아가고 싶어져 버렸다.
그래서 애써 용기를 낸 순간,
나를 원망하던 이에게 내 발을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즈려 밟혔지.
그래서 또다시 온 몸이 어둠에 잠겼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또다시 나를 불렀다.
밥 먹으라고.
네가 여전히 보고 싶다고.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난 너를 본 순간 기억해냈다.
나는 사랑하는 너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었다는 걸.
그래서,
너만큼은 나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에게 만큼은 미움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살고 싶어져 버렸으니까.
너와 함께.
처음으로 입 밖으로 내뱉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심장에 매달려 있던 모래주머니 속 모래알이 하나씩 딸려 올라왔다.
그동안 너무 무거워 쉽게 차오르지 못했던 울음도 함께.
슬퍼해도 된다는 너의 말에
와르르 쏟아진 모래알들엔 알알이 글자가 적혀 있었다.
다 나 때 문 이 야
내가 나를 용서하기 전에는
내 삶을 자꾸 어둠으로 향하게 하는 이 주머니를,
거대한 추가 되어 발목을 잡아 끄는 과거를 결코 비워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워하는 것조차 죄스러워 삼켜내야 했던 곪고 곪은 그리움을 토해내고,
소용이 없는 말이라 삼켜내야 했던 미안하단 말을 뱉어낸다.
공허한 외침일 줄 알았는데
형은 여전히 내게 괜찮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형을 잃고 내가 형의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았던 삶은
형처럼 큰 사람이 되어 나를 용서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한 삶이었나봐.
속절없는 인생은,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의 시간을 주는 법이 없다.
언제나 예고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가버린다.
당신과 내가 만났으니
언젠가는 헤어질 것이었지만
하루만, 일주일만, 한 달만 더 지나고 헤어질 순 없었을까.
그 부질없는 바람이 불던 날들 속에서도
너는 나를 찾아와 또 밥을 먹었냐 묻는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이별 앞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느라 알지 못했던 사랑을 찾아내 준다.
덕분에 나는
당신이 나를 살린 것처럼
나도 당신의 기쁨이자 행복이 되어
당신을 살게 했다는 걸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을 수 있게 됐다.
이제 내 눈물에는 거친 모래알이 딸려오지 않았다.
악몽으로 꽉 차 있던 가슴엔
2박 3일만 못 만나도 내일이 막막하게 만드는 너와
단 하루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살 방을 만들어도 될까.
나를 살린 사람.
나를 살고 싶게 하는 사람.
평생 함께 같은 빛 속에서 살고 싶은 사람.
얄궂은 인생은 앞으로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우릴 데려갈 것이다.
잘못을 저지를 것이고,
길을 잃을 것이다.
그래도 다 괜찮다.
나는 이제 너와 양발을 맞춰 뛸 수 있으니까.
너와 내가 함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