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마을 차차차. 구원의 차차차.
내가 사랑하는 것들 중엔 완벽한 게 없다. 사람도, 드라마도, 영화도. 언젠가 완벽한 것을 사랑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것이 완벽하기 때문은 영영 아닐 것이다. 그저, 그것이 나를 구원했기 때문에 나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사랑한다.
<갯마을 차차차>는 그래서 내게 가장 소중한 드라마가 되었다. 이 드라마를 만난 늦여름부터 초가을이 오기까지 내내 벅참과 설렘을 안고 살았다. 아직도 강원도에 가면 공진이라는 동네가 정말 있을 것 같고, 빨간 등대가 보이는 예쁜 집에서 혜진이과 두식이가 어린 아이처럼 유치한 장난을 하며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다 두 사람이 모두 늙어버린 어느 날에도 서로 게살을 발라 입에 넣어주다 얼굴에 튄 게살을 보며 웃어버릴 것만 같다.
드라마가 끝난지 2주가 지났는데도, 태어나 처음으로 사본 대본집을 읽으며 또 속수무책으로 눈물 지으며 드라마를 추억하고 있다. 왜 내게는 사랑으로 서로를 구원하는 두 사람이, 그리고 그 이야기면 충분하다 믿고 평범하고 부드러운 이야기를 뚝심 있게 써낸 작가의 따뜻함이 이리도 뜨겁게 와닿는 걸까.
분명 부족하고 아쉬운 점도 있을 테다. 그렇다. 분명 더 잘 만들 수 있는 구석이 남아 있다. 그래도 나는 2021년 늦여름에 나에게 찾아와 잊을 수 없는 계절을 만들어준 이 드라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 버렸다. 어쩌겠는가. 내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사랑으로 산다'고 답하며 사랑이 사람을 구원한다고 굳게 믿는 촌스러운 사람인 것을. <갯마을 차차차>가 이 기나긴 여정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도 그런 것이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사람을 구원한다. 이 드라마는 1화부터 16화까지, 내내 사람과 사랑만을 외쳐왔다.
한 가지 실수에도 온 인생이 휘청거릴 수 있는 세상에서, 실수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고 아무렇지 않게 마음을 토닥였다. 입과 엉덩이가 모두 가볍고 무례해 모두를 피곤하게 하는 시끄러운 사람을 모두가 손가락질할 때는 그의 삶이 상실로 인해 위태로워졌던 순간을 조명한다. 삶의 빛이 사라졌던 때가 있었기에, 그가 그저 계속 즐겁고 시끄럽게 살아가길 바라며 그를 봐주고 받아주었던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또 한 사람을 살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얄궂은 인생이 나를 낭떠러지로 내몰아도 내 손 잡아줄 사람 한 사람만 있다면 다시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믿게 했다.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저마다 지닌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어가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 좋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서로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비슷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향한 진심만 있다면 사랑할 수 있다고 외치는 드라마가 새삼스럽지 않았다.
파도처럼 밀려와 삶을 적시는 사랑을 품고 있는 작품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 멋진 배를 타고 이 작은 모래밭을 벗어날 수 있을지 발을 동동거리고 있던 내게, 내가 발 붙이고 있는 모래밭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이 작품이 파도처럼 영원하길 바랐다.
두식이는 감리 씨의 문자가 없었더라면 아무리 죽을 힘이 없어도 죽었을지도 모른다. 살 힘은 더더욱 없었기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 빈 집에 갇혀 있던 두식이를 들여다봐준 공진 사람들이 없었다면 두식이는 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살 힘과 방법을 잃어버렸으니까. 마치 남극에 있는 펭귄을 만나러 오기 위해 맛있는 먹이도 아늑한 삶의 터전도 모두 포기하고 달려온 북극곰처럼 두식이를 사랑한 혜진이가 없었더라면, 두식이는 영영 악몽과 함께 오늘만을 살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으니까.
최근에, 10대였던 내게 어른이 될 용기를 줬던 책을 다시 꺼내보았다. 공지영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책인데, 딸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쓰인 그 책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고. 우리를 다치게 하는 것들은 사랑 외의 것들이고, 사랑은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만을 준다고. 사랑 덕에 용기를 내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공진 사람들을 보며 그 책이 줬던 희망과 용기가 다시 떠올랐다. 모든 사람을 엄마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할 순 없지만, 엄마가 딸에게 주고 싶은 사랑으로 남긴 말들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으로 닿는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전해주고 싶었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말을 내가 하면 무책임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을 전하는 건 그보다 덜 무거운 마음으로 전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공진 사람들과 혜진이가 두식이를 사랑하고 기다려주는 마음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 늘 애틋하고 고마웠다. 그들에겐 홍반장의 과거나 실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사랑하는 홍반장이 다시 사람들과 함께, 어둠이 아닌 빛 속에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들의 다정한 마음이 만들어낸 공동체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홍반장의 삶 자체가 기적과도 같아 보였다.
혐오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증오는 기적을 만들지 못한다. 사람은, 내가 아무리 못나도 나를 보듬어주는 사랑에 의지해 살아간다. 누구나 못나질 때가 있는 거라며 그 못난 모습까지 안아주는 사람의 따스한 품에서 못난 자신에서 벗어날 힘을 얻는다.
그래서 나는, 모두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틋하지 않은 면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쓰인 이 작품을 사랑한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너의 가족이 되어주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잔뜩 등장하는 이 드라마를 친애한다. 서로의 어둠을 밝혀주며 함께 발 맞추어 빛을 향해 걷는 사랑을 노래하는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모두를 질투가 날 만큼 존경한다.
착한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모아 함께 추는 춤을 나도 따라 추고 싶다. 그렇게 삶을 뜨겁게 만드는 진동을 만들며, 함께 내일로 나아가고 싶다.
갯마을 차차차를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덕분에 찬란한 계절을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