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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s Nov 25. 2019

[OB's드라마] 체르노빌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것?

거짓의 진짜 대가란, 거짓을 끝없이 듣다가 진실을 인지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거짓을 선택하고 그 거짓을 전파하는데 모두가 수동적으로 협조한다면 진실을 아주 오랫동안 외면할 수 있습니다. 진실은 그런 걸 신경쓰지 않죠. 진실은 결국 다가옵니다."


내게 방사능 문제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늘 찝찝하고 무섭지만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없어 답답하고, 그래서 더 외면하고 싶었던 문제였다. 덕질하러 일본에 가끔 가면서도 후쿠시마랑 머니까 괜찮겠지, 해산물 덜 먹으면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결국엔 닥치는대로 다 먹고 왔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나니 내가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건가 싶다.


#체르노빌 은 1986년 4월에 발생한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이 발생하기 몇 시간 전부터 직후, 그리고 몇 년 후 쯤까지의 시간을 다루며 그동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방사능 문제를 적나라하게 가시화한다.

방사능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지, 그들의 피부가 어떻게 문드러지며, 겉으로는 멀쩡해보이는 사람들도 속은 얼마나 빠르게 망가져가고 있는지, 원자력 발전소 하나가 폭발함으로써 생겨나는 방사능이 얼마나 빠르고 잔인하게 인간과 자연을, 심지어 기계마저 불구로 만들어버리는지. <체르노빌>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아서 몰랐던 방사능의 공포를 낱낱이 드러내며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사실적이고 불안한 공포로 시청자를 옥죈다. 사실 그렇게 옥죄어지는 것도 내가 이미 방사능에 노출되었다는 사실 때문일 테지만.


그래서 1화를 본 후에 즉시 2화를 보지 못했다. 며칠 동안이나 숨을 고른 후에야 2화를 볼 수 있었다. 심지어 1화를 보고 잠든 밤에는 일본 방사능과 관련된 악몽을 꾸며 몇 번이고 잠에서 깨기도 했다.


2화부터 5화까지는 왜 체르노빌의 RBMK 반응로가 폭발했는지, 폭발 직후 소련의 대처와 피해 복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다룬다. 1화와 같은 감각적인 충격은 덜하지만, 소련 체제의 총체적인 구조적 문제와 권력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어버린 개인의 문제가 점점 맞물리며 지구 역사상 최대의 인재를 만들어내는 광경이 주는 충격은, 스웨덴까지 날아간 체르노빌의 방사능 낙진처럼 끈질기게 마음 한편을 짓누른다.

역시나 사고의 수습은 무고한 국민의 몫이 되어버리고, 허울만 좋은 명예 아래 '사용'되고 '버려'져 사고로 인한 피해가 모두 개인의 몫이 되어버리는 모습도, 죽어 마땅한 사람은 멀쩡히 살아나 담배를 태우고 있는 모습도. 34년이 지난 지금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 드라마가 시청자의 마음에 쌓아올리는 추의 무게는 더욱 커져만 간다. 


소련도 붕괴되고 체르노빌 발전소에도 차폐막이 씌워진 후 이 드라마를 보고서야 체르노빌 사건에 대해 찾아보았다. 원자력 사고 등급에는 총 7단계가 있는데, 7단계가 가장 높은 단계이고, 체르노빌은 7단계에 속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후쿠시마 역시 7단계에 속한다고 한다.


체르노빌 발전소에는 향후 100년을 보장하는 차폐막이 씌워졌지만 후쿠시마에는 아무 것도 없다. 방사능오염토를 모아놓은 검은 봉지가 떼로 모여있는 곳 옆에서 쌀을 재배하고, 이젠 오염수를 태평양에 흘려보내겠다고 하고 있다. 국가의 명예와 체면에 눈이 멀고 스스로가 만든 아집에 갇혀 거짓으로 진실을 가두려 했던 소련과 일본은 너무도 닮아있다. 그때는 1986년이었고, 지금은 2019년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애초에 왜 인간은 핵을 개발해야만 했는지, 공기마저도 오염시켜 그 어떤 방법으로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야기하는 무서운 물질을 어째서 인간이 만들어 사용해야만 했는지 근원적인 질문에 부딪히며 고통스러워지기도 한다. 인간이 제일 나쁘다. 인류의 멸망은 인류가 자초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달콤한 거짓에 중독되어 그 진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거짓의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잘 만든 드라마다. 장면 하나, 대사 하나, 단어 하나 고민하지 않고 만들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진실의 무게를 견디며, 무고하게 희생 당한 모든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서는. 예술의 목적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만드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부디 이 메시지가 전해져야 하는 곳에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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