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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만두 한 주먹 May 03. 2022

[21세기 원시인]
ep 5. 원시인을 꿈꾸는 그대에게

원시인 특강 기초편 

[들어가며]

계절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시시각각 기온이 변하고 있는 평범한 주말, 국내 브랜드의 노트북을 챙겨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주말을 맞아 전망 좋은 카페에 종일 박혀 있을 생각이다. 원시인이 무슨 카페냐고? 원시인도 커피를 좋아한다. 믹스커피보다는 설탕이 들어있지 않은 극단적인 블랙커피를 선호한다고!     


사실 오늘은 카페에서 ep5를 끄적여 보려 한다. 혈기 왕성한 나이에 혈기 왕성한 사람들과 낯선 곳에서 살아가다 보니 매일매일이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가득 차 있지만 이 글감은 다음 화를 위해 잠시 묻어두려고 한다. 브런치 연재를 시작한 후로 줄기차게 받았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더는 미룰 수 없겠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글감을 따로 고민하지 않아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날 만큼 꾸며내지 않은 ‘자연스러운’ 소재들이 충분하다는 건, 실로 로컬 살이가 내게 주는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읽기 전 한 가지 주의할 점. 나의 답변이 모든 귀촌 청년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 청년의 모습이 모두 다르듯 로컬로 귀촌한 청년의 모습 또한 사는 지역, 종사하는 업무, 추구하는 가치관에 따라 확연히 다르기에, 본 답변은 오로지 ‘나’ 혹은 ‘뚜벅이 원주민’에 한한 것임을 미리 말씀 드린다.




1) 집을 구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


Q1. 로컬에서 살 집은 있어야지.
직방, 다방, 피터팬에서 매물을 검색해 봐도 안 뜨는데, 방을 어떻게 구했어?   
  

A. ‘주거지’ 결정에 관한 궁금증은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고, 이 사항은 나(우리) 또한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이었다. 로컬에서도 꽤 규모 있는 지자체라면 위에서 언급한 부동산 정보 사이트에서도 매물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영덕만 하더라도 부동산 매물 앱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매물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첫 번째, 읍내 혹은 면내에 위치한 부동산을 이용한다. 영덕읍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시가지에 있는 부동산에 가면 꽤 많은 매물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비교적 규모가 작은 영해면만 하더라도, 인근 부동산에 방문해도 매물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럴 경우?    


두 번째, 건물 앞 혹은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정보들을 수집한다. 가끔 건물 앞을 지나가다 보면 해당 공간의 공실 여부를 A4용지에 표기하여 붙여놓는 경우가 있다. 전봇대 또한 마찬가지다. 아주 정직하고 더할 나위 없이 소박하게, 매물이 소개되어 있을 테다. 로컬만의, 로컬다운 부동산 플랫폼이랄까. 그러니 주위를 둘러보며 살자. 땅만 보고 걸어서는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 어쩌면 평소 지나치던 풍경 곳곳에 시선을 두라는 이곳의 가르침일지도 모른다.     


세 번째, 지자체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활용하여 집을 구하는 방법. 해당 방법은 로컬에 거주하시는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실 만한 내용이다. 대도시와 로컬의 큰 차이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로컬은 각 지자체의 자유게시판을 통한 부동산 거래가 꽤 활발한 편이다. 그뿐만 아니라 구인, 구직, 동네 이야기 등 다양한 생활 정보의 공유가 이 자유게시판에서 이루어진다. 로컬 정착을 원한다면 반드시 지자체 자유게시판을 즐겨찾기에 넣어놓자.     


마지막으로, 지인을 통해 집을 구할 수도 있다. 사실 이 방법은 ‘처음’ 로컬에 정착한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테다. 영덕에 정착하여 살아간 지 어느덧 반년이 넘은 우리 또한 최근에서야 이 방법을 선택하였다. 로컬 특성상 빈집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시장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동네 이장님 혹은 타 지역 주민들과의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수소문 끝에 좋은 매물을 얻는 경우가 더러 있다. 단, 이 방법을 주선해 주는 사람은 반드시 신뢰가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무턱대고 믿는다면 사기의 가능성이….


만약 주거지를 찾지 못한다면 노숙이라는 선택지도.. 물론 농담이다




2) 지역 특성상, 그렇습니다.


Q2. 로컬에 살면서 가장 불편한 점은 뭐야?     


A. 불(不)편함. 굳이 찾는다면 불편함이라는 게 왜 없겠나. 얼마 전, 가까운 지인에게 ‘주민 텃세’에 관한 질문을 들었다. 실제로 유튜브에서는 ‘무서운 시골 텃세’ 따위의 제목을 단 영상이 이슈가 된 적 있을 정도로 ‘현실과 다른 로컬의 삶’에 관해 상당한 관심이 쏠렸었다. 예를들어 주민세를 내지 않으면 수도를 임의로 끊어버린다는 둥….만약 내게도 그런 상황이 찾아온다면, 두말할 것 없이 당장 시골에서 도망 나왔을 테다. 


아마 위의 유튜브 영상에서 소개한 사례는 고립된 마을에 해당하는 경우인 것 같다. 다행히 내가 사는 영덕군 영해면은 주민 몇 명에 의해 동네 전체의 분위기가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작은 곳은 아니다. 저번 편에서도 말했듯 이곳은 편의점이 무려 5개나 있는 곳이니까! 


이렇게 로컬이라 하더라도 고립되어 있는 시골이 아닐 수 있고, 심지어는 최소한의 문명 생활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로컬이 많으니 막연히 주민 텃세를 두려워하지는 않아도 된다. 물론 시골의 정(精)이라는 명분으로 과한 관심을 보여 주시는 어르신들도 가끔 계시지만, 원하지 않으면 정중하게 거절해도 된다. 적어도 그런 상식은 통하는 곳이 바로 내가 사는 로컬이다.     


불편한 점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옆으로 샌 것 같은데, 로컬 정착 전 가장 불편할 거라 예상했던 점은 ‘교통’이었다. 정시성, 접근성 높은 도시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은, 나처럼 자차가 없는 사람들에겐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할 터였다. 쉽게 먼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내겐 ‘쉽게 먼 곳으로 이동할 이유’가 없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나의 니즈 대부분이 해결되는 까닭이다. 심지어 이전에는 없던 니즈가 다른 어디 아닌 시골에서 만들어진 까닭에, 여기를 떠나서는 충족될 수 없는 요소들마저 생겨나 버렸다. 이를 테면 저녁 시간이면 어김없이 풍겨오는 나무 타는 냄새라거나, 아침을 깨우는 닭의 울음 소리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럼에도 여기서는 구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경로를 통해 얻으면 된다.     


예측 불가능성이 주는 장점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편리한 교통만을 원했다면 애초에 로컬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골 특성상 존재하는 ±15분의 배차 간격은 어느덧 나에게 기다림의 여유를 주는 하나의 장치가 되어 주었고, 결국 지금의 나는 충분히 그 상황을 즐기고 있다. 버스 기다리면서 책을 읽는 찰나의 여유로움이란…. 


나로 하여금 내게 주어지는 여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시골의 수많은 변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농어촌 특성상 5~10분 늦을 수도 빠를 수도 있습니다.

 



3) 어디서 무엇이든 '하고 있다'는 것


Q3. 할 게 있나?


할 게 있다. 할 게 많다. 오히려 현재 시점의 로컬은 젊은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지역 공공기관, 준 공공기관에서 젊은 인력을 수시로 모집 중에 있으며, 로컬답게 1차 산업과 연관된 인원 수요도 다수 있다. 물론 그 일자리가 당신이 상상해온 사무직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도 모든 업무가 사무직은 아니지 않은가.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내가 바라본 로컬은 젊은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는 블루오션이다. 그러니 본인의 아이템이 있다면 꿈을 찾아 직접 창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근 들어 지역 소멸 방지 차원에서 창업이나 정착 관련 지원 자금을 퍼 주고 있는 지자체들이 많으니 참고하길.


주위의 정착 청년들을 둘러보면 각 개인의 스페셜리티를 가지고 정착해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원시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왕이면 이곳에서’ 하고 싶다고 말한다. 디자인 툴을 다룰 수 있어 온라인 플랫폼에서 디자인 외주를 받는 원시인,  뛰어난 작문 실력을 살려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원시인, 그리고 영상 편집 작업을 하며 살아가는 원시인 등. 물론 나처럼 지역 기업에 취업하여 살아가는 원시인도 있다.      


어디에서 살아도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집값이 현저히 비싼 도시보다는 로컬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어디든 무관하다는 이유가 처음 로컬 살이에 도전해 볼 좋은 용기가 되어 주었다면, 아마 정말로 로컬로 들어선 후엔 머지 않아 ‘하필’, 그리고 ‘굳이’ 이곳에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감히 자신해 본다.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변을 간단하게나마 작성해 봤는데, 로컬 살이를 염두에 두고 스스로의 선택을 의심하고 있는 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림자가 길어질 대로 길어진 저녁, 5회차로 연재할 글을 마무리 짓고 집으로 돌아간다. 뉘엿뉘엿 서쪽으로 떨어지고 있는 해를 가만히 바라보고 섰다. 여기저기 할 것 없이 뺵빽하게 들어선 건물들로 인해 볼 수 없었던 노을이 어느덧 나에게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다가올 때, 나는 비로소 이곳에 정착했음을 느낀다.


도시에 있든 로컬에 있든, 방구석에서 우울해하며 가만히 있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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