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 특강 QnA편
ep 5를 업로드하고 ep 6을 작성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새삼스레 체감한다. 조금의 변명을 먼저 보태 보자면, 그렇다고 해서 마냥 잊고 지낸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글쓰기는 꾸준함이 생명입니다.’라는 날카로운 조언으로, 때로는 ‘작가님의 글을 독자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라는 달콤한 회유로 다음 글을 부추기는 브런치 측의 꾸준한 알림 덕분(?)일까. 호기롭게 브런치 연재를 시작하더니 그새 접은 거냐는 주변의 핀잔이 계속해서 따라다닌 것도 사실이다.
글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사실 글쓰기를 미루는 습관은 단순히 일시적인 문제가 아닌, 평생의 숙제와도 같다. 주위를 살펴보면 ‘계속해서 써야 할 텐데,’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면서도 정작 행위로 옮기지는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심리적 부담이나 강박, 시간 부족, 여유의 결핍, 반복되는 일상 등 그 이유 또한 가지각색이리라.
필자 또한 그런 유의 딜레마로 인해 쓰기를 게을리해 본 적 있는 사람으로서, 이번 공백기 동안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주제를 고민하던 스스로를 보며 느낀 한 가지가 있다면, ‘로컬에서의 글은 훨씬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쓰고 싶어도 무엇에 관해 써야 할지 몰라 어떻게든 쥐어짜내려 고민하던 도시의 나날을 생각하면 소재가 충분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지금은 훨 편안하다. 환경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글쓰기는 내게 더 이상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무엇까지만을 보여줄 것인가 고민하는 삶보다,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삶은 더 다채롭고 견고하다. 글의 소재를 억지로 지어내지 않아도 될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다는 사실이 곧 지금의 삶이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부추기는 이가 없었다 해도 다음 화를 구상하며 행복하고도 고통스러운 고뇌에 빠져 있지 않았을까 감히 가늠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에 겨워 쓰기를 게을리한다면 그것은 그저 나태함 때문이다. 모든 게 갖춰지고 나니 이젠 무엇도 핑계 댈 수 없는 상황을 탓하는 아이러니... 반성해야겠다.)
안타깝게도 ep 5를 업로드한 후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차원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이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우여곡절을 겪는다고 해서 무얼 얼마나 겪겠냐만은, 이번엔 분명히 도시와 다를 바 없이 ‘비밀스러운 사연’을 가져 버렸다.
바로 코로나19가 기어코 필자에게까지 다다른 것이다. 이름에 붙어 있는 ‘19’라는 숫자가 괜스레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2022년에 이르러 이 지겨운 바이러스와 함께한 지도 벌써 3년차에 접어들었음을 인식케 하는 까닭일 테다.
우리가 처음 ‘뚜벅이마을’을 기획하고 준비해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짊어지고 있는 장애물이 바로 코로나 이슈다. 모두가 힘을 합쳐 한참을 쌓아올려 왔건만, 하필 코로나 바이러스와 겹쳐 버린 것을 원망하던 때도 있었다.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아가는 것을 전제로 하는 청년마을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특성상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위협적 요소임은 분명했다.
다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로컬’에 살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 감염률이 서울 등의 대도시에 비해 현저히 적고, 또 청년 인구가 적다 보니 지역의 유입,유출도 흔치 않아 외부로부터의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그나마 덜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더 조심하면 될 일이었다. 어찌 보면 ‘나만 잘 하면 돼!’ 식의 사고 방식이 도시에서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각별히 주의한다고 해서 감염을 막을 수 있는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위험 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더욱 신중하게 운영하기로 했다.
오히려 코로나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사람들에게 흔치 않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전환점을 선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아웃도어 활동인 ‘걷기’를 아이템 삼아 일과 삶을 지속하고 있는 것 치고 꽤 잘 살아남지 않았나 싶다.
산술적으로 로컬은 도시에 비해 감염 경로가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으나, 한번 걸리면 그 외로움은 오히려 더 치명적인 수준일 수 있겠다며 조심스레 부질없는 추측을 해 보기도 했다. 물론 도시에서 걸려 본 적은 없으니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코로나 후유증을 가까스로 떨쳐 버리고 이렇게 무사히 다시 키보드를 잡았다. (직장동료 K군이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는 걸 보면 필자는 나름 꽤 건강한 인물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나.름.) 근 한 달은 비단 나에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새로운 대통령의 즉위라든지, 지방선거를 통한 여러 장(將)의 변화라든지. 장(將) 변화가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새로운 장(場)의 변화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혼란스러운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그간 쌓아두었던 로컬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 보려 한다.
오늘은 QnA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서울에서 멀쩡히 직장생활을 하다 뜬금없이 연고 없는 ‘로컬’에 내려와 생활하고 있는 필자가, 주변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질문을 받아 왔을는지 조금은 상상이 가지 않는가. 그 질문이 정말로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든. 혹은 아주 조금이라도 비아냥대려는 뜻을 내포하고 있든, 그건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질문의 의도나 목적 따위에 나의 답변이 달라질 일은 없을 테니.
차근차근 질문과 그에 맞는 답을 써 내려가 보면,
Q1. 귀촌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A. 수많은 궁금증 가운데 단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임과 동시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듣게 될 질문임이 확실하다. 어떤 답변을 기대했을지 모르겠으나, 나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도시에 살 이유를 찾지 못해서’.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속담이 있듯, 나 또한 지방에서 대학을 나왔음에도 취직은 무조건 서울에서 해야겠다는 무언의 다짐을 버릇처럼 되새기곤 했다. 하나, 다짐이 늘 현실을 따라가지는 못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서울은 인간의 자아를 부품화하는 데 최적의 공간이었다.
‘서울은 이런 곳이니 너는 철저히 이곳의 부품으로서 기능해야만 해’.
본 문장이 필자가 느낀 서울이란 공간이었다. 응암역에서 공덕역으로 향하는 6호선 출퇴근길은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고, 쥐꼬리 만한 원룸에서 말 그대로 ‘연명’하는 삶은 마치 러다이트 운동 직전 산업 혁명 당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보단 나았다. 그냥 비유다, 비유. just joke.)
다 떠나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서울에서 사는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 도저히 행복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꿈꿔 왔던 서울의 삶에 들떠 흥분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가 지나갈수록 더는 내면에 묻어둘 수 없는 의문을 서서히 마주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삶을 포기한 채로 먼 미래를 기다리기는 싫었다. 지금의 삶 또한 나의 삶이니, 우선 지금의 삶을 지키고 싶었다.
어느날 문득 찾아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욕심이나 사치는 아니지 않겠냐는 믿음 하나로,
필자는 조금 더 뻔뻔해질 용기를 얻었다.
더 넓은 집에 살기 위해,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위해, 그리고 더 좋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기꺼이 귀촌을 택했다.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었다. 서울 및 수도권만 아니면 어디든.
Q2. 아무래도 심심할 거 같은데, 주말엔 보통 뭐 해요?
A. 에어컨 틀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을 본다. 요즘처럼 푹푹 찌는 더위엔 위와 같이 한가로운 휴식이 보편적이지만, 말 그대로 여기까진 ‘기본’일 뿐 그 외엔 개개인의 기호에 따라 다른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필자는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아무 시내 버스나 잡아 타 종점을 가 보기도 하고 (그 종점이 경북 영양군일 땐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서울 직장의 퇴직금과 맞바꾼 카메라를 가지고 출사를 나가기도 한다. 풀충전한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기고 나의 애마(자전거)로 10분만 달리면 종일 바닷가에 누워 쉴 수 있고, 때론 맥주와 책 한 권을 들고 바다로 걸어가 마냥 멍만 때리다 오기도 한다.
가끔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 하는 데 대한 아쉬움은 없냐는 질문을 받는데, 서울에서도 대부분의 문화생활은 유튜브나 OTT 서비스로 즐기곤 했고, 반 년에 한 번쯤 보던 뮤지컬이나 연극의 경우 지금도 비슷한 주기로 대도시에 나가서 보고 온다. (필자가 살던 응암에서도 뮤지컬을 관람하려면 예술의전당까지 1시간 가량은 나가야 했으니 뭐….)
아! 많이들 착각하는 듯해 참고로 이야기하는데, 로컬은 군대와 같은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기에 원하면 언제든지 도시로 외출할 수 있다. 길은 어떻게든 다 이어져 있는 법, 명심했으면 한다.
Q3. 로컬에 살면 애인을 만나기도 어렵지 않나요?
A. 하... 이건 그냥 넘어가자.
Q4. 로컬에선 자차(自車)가 꼭 필요한 거 아닌가요?
A. 개인의 활동 반경에 따라 다른 것 같다. 필자는 운 좋게도 급한 경우 회사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면허가 없는 사람도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물론 도시만큼 대중교통의 배차 간격이 좁지 않지만, 차편이 수시로 운행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이동 범위가 넓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굳이 넓을 필요가 있을까?’ 되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
며칠 전 서울에 갈 일이 있었는데, 지하철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고 보니 누적 사용 금액이 1,250원임을 발견했다. 심지어 월말이었음에도 말이다. 이때 즈음이면 분명 10만 원 전후의 숫자가 화면에 뜨곤 했는데,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동일한 월급을 수령하고 있기에 교통비 10만 원의 절약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 적지 않다.
결론은 자차(自車)가 있으면 좋긴 하지만, 없어도 뭐…. 그런 대로 잘 살아지더라.
-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