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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만두 한 주먹 Jun 26. 2022

[21세기 원시인]  ep.7 원시인이 궁금한 그대에게

원시인 특강 QnA - 下

1) 시골의 당연함에 대하여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시골’이라 하면 어떤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가? 어쩌면 그림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논이나 밭일 수도, 혹은 최근 들어 간간이 드라마의 배경지로 비춰지곤 하는 바닷가 근처의 어촌 마을이거나, 나름의 로망으로 간직할 법한 ‘나만의 리틀포레스트’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시골의 경우 도시에 비해 자연환경을 중심으로 한 상상이 주를 이루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듯 보인다.    

 

언젠가부터 로컬에 정착해 ‘로컬 살이’를 삶의 기본값으로 삼은 채 살아가고 있지만, 필자에게도 시골이 ‘낯선’ 대상이었던 시절이 있다. 로컬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서울에서의 삶은 그리 길게 지속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청년들 모두가 도시로 향한다는 이야기가 마치 당연한 논리라도 되는 양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가운데, 반대로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했다. 언제라고 해서 인생을 순방향으로만 주행해 온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어쩌면 필자에게 막막하게 느껴졌던 것은 ‘시골’이 아니라 ‘시골의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시골 그 자체는 내심 만만하게 여겨왔는지, 환승이라는 꽤 복잡한 절차를 거쳐 처음 영덕역에 내렸던 그날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역에서 나와 고불봉을 등진 채 선 그때, 눈앞에 펼쳐진 현대적인 도로가 위축되어 있던 심신의 긴장을 순식간에 녹여 주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니 그 순간 느낀 허무함과 허탈함은 되려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감정이었던 듯하다. 영덕에서의 첫인상으로 ‘시골=흙’이란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나서야, 비로소 이곳에서 잘 살아볼 수 있을 거란 묘한 자신이 생겼다. 그렇게 시작된 시골살이였다더라.



2) 여름날의 시골, 결코 쉽지 않지만 

    

유난히 더웠던 그날로부터 1년이 지난 오늘,

    

여름의 더위는 어김없이 찾아와 대뇌의 전두엽을 공격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바다를 품고 있는 영덕은 내륙에 비해 그 더위의 정도가 조금 덜하다…. 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솔직히 거기서 거기다. 찜통 같은 더위 앞에 온도는 어떤 위안도 되지 못하는 법. 31도나 30도나, 인간이 피부로 감각하는 데 정량적 수치가 대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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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여름은 바야흐로 벌레의 계절이다. 한여름의 시골에는 중생대 트라이아스기보다도 다양한 종의 생명체가 공존하는 게 분명하다. 웬 과장이냐고 하겠지만, 시골의 여름밤 가로등 밑에 아주 잠깐만 서 있어 보면 절로 수긍하게 될 테다. 일과가 끝난 후 더위가 조금 시든 듯해 산책에 나서면, 어디에 숨어 있다 나타났는지 모를 벌레들이 떼로 몰려와 대뇌의 전두엽을 한 번 더 공격한다.

     

여러모로 대뇌의 전두엽이 무사할 수 없는 계절, 여름이다.   

  

이렇게 아찔한 상황 속에서도, 시골에서 살아간다.      

'이마저도 좋아서!'     


지난 주말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한국 영화인 '브로커'를 보고 왔다. 뜻밖의(?) 낮은 평점에 당황했던 것이 민망할 정도로 가히 명작이라 칭할 만했다. 서울 출장길에 이 작품을 관람하고 왔다는 뚜벅이마을의 대표는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원체 감성이 넘치는 친구이긴 하다.)     

갑자기 웬 영화 이야기냐고?


<브로커>를 관람했다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영덕이란 지역이 이 영화의 배경으로 그려진다. 그 덕에 작품 곳곳에서 영덕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아직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독자에겐 스포일러일 수도 있으니 구태여 어떤 장면인지는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촬영지로 선정된 만큼 영덕 구석구석이 많이 노출되기에, 영덕군에서는 반드시 지자체 홍보에 이를 활용해야 할 테다.     


또 서론이 길었다. 이제 그만 본론으로 넘어가 보자.    

 

QnA 1편이었던 ep 6을 발행하고 난 후, 주위로부터 ’쓸데없는 질문의 답만 하지 말고 정말 궁금한 질문의 답을 하라‘는 직설적인 피드백이 들려왔다. 간섭 같은 조언이었다면 가볍게 넘겼을 테지만, 독자의 의견은 언제나 글을 발전시키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되어 주므로 ep 7에서는 피드백 반영에 충실해 보려고 한다.


*피드백은 늘 환영이니 언제든지 댓글을 통해 남겨 주시라.




3) 낱낱이 파헤치는 로컬 이야기   

  

Q1. 영덕의 정체성은 곧 대게인가요?      

A. 영덕에서 산 지 이제 막 일 년 남짓 지난 필자도 이렇게 많이 듣는 질문인데, 영덕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얼마나 숱하게 들어왔으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솔직히 대게를 빼고 영덕을 논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덕이 한 차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게라는 아이템을 이제 그만 적당히 놓아줘야 한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언제까지나 대게에 갇힌 홍보 방식만을 고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영덕에는 대게를 제외하고도 어필할 만한 무기가 많음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게의 고향인 강구면과 축산면에 거주하는 주민의 대부분은 대게 그 자체, 혹은 그로부터 파생된 여러 가지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영덕이 인구 5만이 채 되지 않는 소도시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덕 내 전체 지역을 통틀어 대게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외부 관광객의 유입으로 상당한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것 또한 대게라는 특산품이 영덕을 대표하게 된 이래 형성된 수익 구조다.


그래서 영덕과 대게는 결코 분리할 수 없고, 분리해서도 안 되지만, 단지 그로 인해 영덕의 풍부한 자원들이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영덕군의 블루로드, 지품면의 송이버섯과 복숭아, 달산면의 옥계계곡, 그리고 영해면의 뚜벅이마을까지. 그뿐인가. 영덕은 최근 토트넘에서 직접 코치진을 파견해 인재 발굴 및 육성 캠프를 주최할 정도로 축구로 유명한 동네이기도 하다. 또 영덕에는 고래불 해수욕장과 같은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위치해 있으며, 특히 적당한 파도가 들이치는 만큼 서핑지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제 아무리 효자 상품이라 해도, 대게를 벗어나지 못하면 이 아름다운 스팟들이 그만 묻혀 버릴 수도 있다.      



결론하건대 대게는 곧 영덕이나, 영덕은 대게만으로 논할 수 없다.  

   

고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께, 이번 여름에는 대게의 명소 영덕이 아닌 대한민국 NO.1 관광도시 영덕으로의 여행을 계획해 보길 조심스레 권하는 바이다.          




Q2. 시골에서는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떻게 수입을 창출하나요?   
  

A.

"야 너 농사는 잘 짓고 있냐?"     


이번 주만 해도 다섯 번은 들은 질문이다. 기상이변으로 농작물 재해가 심각하다거나, 어떤 특산품의 재배가 잘 되었다더라 하는 등의 뉴스가 하나둘 올라올 시기엔 빠짐없이 연락이 온다. 아마도 그들의 주변엔 귀촌한 사례가 많지 않을 테니, 농업 관련 이슈를 보고 필자를 떠올려 주는 관심과 애정은 감사할 따름이다. 다만, 필자는 농사를 짓지 않는다. 그게 문제일 뿐.     


필자는 농사를 지을 능력도, 여력도 없다. 농사로 생계를 유지할 자신이라면 더더욱 없다. 집 앞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 텃밭을 가꾸는 정도라면 미래에는 고려해 볼 수 있을 듯도 하나,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의 인생에도 농사란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외지인이 귀촌해 ’농사‘를 결심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데는 엄청난 각오가 필요하다.)     


아마도 이 질문은 도입부에서 언급했듯 도시인에게 흔히들 존재하는 시골에 대한 선입견 혹은 고정관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영덕이라면 어업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마땅할 텐데, 지역에 대한 이해의 결여 또한 한몫했을 테다.     


그럼 돈은 어디서 버냐고?    

 

사실 필자는 이 브런치 계정의 이름인 '뚜벅이마을'을 운영하는 한 문화 기획사에 소속된 직원이다. 물론 뚜벅이마을만을 하위 브랜드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고, 지역 기반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업들을 함께 거느리고 있다. '귀촌한 청년들이 모여 차린 문화기획사'라니 왠지 좀 별난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도시의 주된 일자리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월급을 받으며 지낸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비슷한 종류의 업무라도 로컬에서 로컬을 위한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 또한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차별점이자  경쟁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는 '잘 하는 일'을 좋아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잘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일치시킨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테지만, '잘' 하면서도 즐기는 것이란 불가능에 가깝고, 즐기지 않으면 더 이상 애정을 가지기 어려워지는 까닭이다. 보통은 '애증' 등의 모호한 감정으로 남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당연하게도 '잘 하는' 일을 직무로 삼아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만연한 실정이다.   

   

이 브런치 계정 또한 필자가 글 쓰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좋아하는 일을 잘 하게 만들든, 잘 하는 일을 계속해서 좋아할 수 있게 만들든, 우리 회사가 그 두 가지의 가치를 공존할 수 있게 돕는다는 점은 분명히 자랑할 만한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특기와 흥미의 양립을 돕기는커녕 두 가지 요소 모두를 방해하는 장치로서 기능하는 일터도 태반임을 고려하면 더욱이 그렇다.     


뜬금없이 문화 기획이라니, 그것도 도시가 아닌 시골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문화를 기획한다기엔 다소 어색하게 들리는가?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로컬에서 로컬을 위한 문화 콘텐츠를 기획한다는 게 결코 흔치 않은 일이다. 흔하려야 흔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보태 보려 한다.      


브런치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시절, 한 편의 글에서 시골을 '블루오션'으로 표현한 적이 있었다. 영덕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소멸 위기 지역 지자체에서는 의외로 '젊은 감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지역 내 인구 고령화 현상으로 인한 소멸 위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유행을 좇을 줄 알아야 하겠지만, 문화 면에서는 특히 그렇다. 트렌드를 읽는 능력은 감히 젊은 세대를 따라올 수 없음을 기성세대 또한 인지하고 있기에, 젊은 인력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것이다.     

특유의 젊은 감성을 자랑하며 영덕군 영해면의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하고 있는 앵커스토어 '덕스'.

수요도 확실한데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애초에 시골에는 젊은 인력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다시 논의의 시작점으로 회귀한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든다면,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젊은 인구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젊은 인구를 필요로 하는데, 필요로 하는 젊은 인구가 부족한 게 또 문제가 된다. 똑같은 굴레 안에서 문제가 악순환되고 있으니 해결될 리 없다.     


물론 문화 행사를 기획할 때 대도시의 인력을 고용하는 방법도 있으나, 로컬 특성상 그 지역 사람만큼 지역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문화 기획에는 대외적인 것만큼이나 대내적인 것에 대한 상황 파악도 필수적이고, 그걸 떠나 지역에는 너무나도 많은 돌발 상황이, 그리고 변수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이 모든 면을 고려했을 때 지역에 정착해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며 로컬의 문화를 기획하고 있는 우리 회사의 가치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고 생각한다. 대체 어떤 일을 하며 지내는 건지, 로컬에서 아등바등 버텨 보겠다고 팔자에도 맞지 않는 일에 몸을 욱여넣으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과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은 듯하여, 이참에 잠시 회사 자랑을 좀 해 봤다.     



결론은, 평균 나이 27세의 청년 로컬 문화기획사에 다니며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로컬을 브랜딩해 보자는 일념 하에 뭉친 우리, 지켜봐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로컬에 관한, 로컬을 둘러싼 더 흥미로운 소스를 가지고 돌아오겠다.     


독자 여러분의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길 진심으로 바라며,

QnA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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