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온도, 나의 온도
시속 4km/h, 걷는 속도로 살아간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님을 이따금씩 실감한다. 제자리에 멈춰 있지 말 것을, 느긋하게 걷기보단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치열하게 뛸 것을 요구하는 환경을 벗어나 로컬이라는 대안을 택했으나, 정작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것은 내면에 잔재하는 혼란일 테다. 이를 테면 더 잘해 보려는 욕심과, 이왕 사는 거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 보려는 용기와 같은 것들. 최선을 향하려는 마음 끝에 이어지는 ‘내적인 동기’의 존재는, 적어도 외적인 요구에 비해 훨 건강한 동력이라고 믿는다.
새삼스레 고백하건대 필자의 귀촌은 어떠한 종류의 확신에서 비롯했다기보다는, 되려 새로운 곳에서 믿음을 찾을 수 있으리란 기대에 의한 행위였다고 할 수 있겠다. 걷는 속도로 살아간다는 것. 이토록 추상적인 삶의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고 필자의 방식으로 체득하기까지 분명한 노력이 필요했다. 간혹 가다 필자에게 물어오는 이들이 있다.
왜 하필 시속 4km인 건데?
물론 걸음의 속도를 시속 4km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벅이마을에서 4km/h로 걸어 보길 권하는 까닭은, 이것이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기에 최적화된 속도라는 데 있다. 보이지 않는 저 앞의 것들을 좇느라 정작 주위의 귀한 것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충분한 여유를 동반한 속도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필자의 경우에 한해 생각해 보자면, ‘나의 속도’로 살아간다는 게 무척이나 불투명한 일처럼 느껴졌다. 갑작스레 주어지는 자유가 마냥 반갑기보다는 되려 막막하고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4km/h라는 속도에 위와 같은 마땅한 명분이 있는 거라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무얼 놓치고 살고 있는지는 그 놓치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이 명분의 마땅함을 알아차렸다는 건, 아마도 필자가 모르는 사이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리라.
한반도 어느 곳보다 일찍이 해가 뜨는 곳에서 보내는 2022년의 여름, 하루의 시작이 조금 이르다는 사실이 위안을 주기에 ‘24시간’은 여전히 짧기만 하다. 몸은 바쁘다 할지라도 마음만은 여유로운 나날의 연속이다. 아무리 혼잡한 일상 속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다 해도, 삶에 주변을 둘러볼 여백이 조금만 존재한다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충분한 낙이 있음을 이제야 분명히 안다.
그 덕분인지 도시에선 보이지 않던 것들, 혹은 보려 하지 않았던 것들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면 눈앞에 아른거리는 일들을 차마 무시할 수 없어 생각하지 않던 것들과 차마 생각하려 하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하는 데 이르는 것이다. 시야의 확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또 실천으로 옮기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요즘이다.
생물은 그 생물이 생존하는 데 최적화된 환경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생물은 그 생물에게 맞지 않는 온도 속에서는 살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마다 알맞은 온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하늘 아래 곳곳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일은 실로 신비하다. 맞지 않는 곳에서는 죽어버렸기 때문인지, 혹은 살기 위해 ‘살 수 있는 곳’을 향해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결국 살 수 있는 곳에서 비로소 ‘제대로’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맥락에서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로컬로 향한 필자의 선택이나, 뒤이어 생겨난 ‘잘 살아 보려는 욕심’ 또한 당연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물론 스스로 안겨 준 부담감과 압박은 어찌할 도리 없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부차적 문제지만 말이다.
사실 이 여름의 온도로 말할 것 같으면, 필자라는 생물이 살아가기에 아주 적합한 것은 아니라고 조심스레 고백해 본다. 매일 아침이면 새로운 다짐을 안고 호기롭게 집 밖을 나서지만, 찜통 같은 더위에 노출된 직후 몸 안의 생명력이 달아나 버리기 일쑤인 까닭이다. 도보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사무실에 도착하고 나면, 최소 10분 이상을 에어컨 앞에 서서 새 생명을 얻곤 한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도 필자의 주위를 둘러싼 로컬의 풍경은 변함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로컬에는 ‘도시와는 다르게’ 몇십 년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오롯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언제 세워졌는지 모를 주택들부터, 식당, 철물점, 그리고 점빵이라는 이름의 작은 슈퍼까지. 저마다의 역사를 지닌 채 견고한 모습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로컬의 모든 것들은 처음부터 로컬의 온도에 최적화되어 있었던 양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리를 지킨다.
‘나 또한 죽지 않고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로컬의 온도에 최적화된 사람이라는 의미겠지…?’
변하지 않고 여전하게 로컬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들. 오늘은 그 살아 있는 것들에 관하여 몇 자 적어 보려 한다.
1. 로컬의 터미널에 관하여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코로나 19도 점차 끝으로 향해가는 듯하다. 코로나19의 도래 이후 그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외부 활동 인구의 급감은 많은 자영업자들을 괴롭게 하며, 보상금 따위로는 감히 치유할 수 없는 쓰라린 상처를 안겨 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필자는 코로나 19로 인해 그리 큰 피해를 받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필자로 하여금 로컬이란 세계 속에 완전히 숨어들 수 있게 해 준 좋은 기회에 가까웠던 까닭이다. 이런 필자에게도 코로나 19가 가져온 불편함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시외버스 감축일 것이다. 로컬에 거주하는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서울 직행 차편’의 귀함을 알리라 생각한다. 필자가 위치한 영덕군 영해면의 경우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자연스럽게 오후 6시 10분에 배치되어 있던 버스가 폐지되면서, 서울 직행 버스의 막차는 오후 3시 30분으로 앞당겨졌다. 그는 곧 퇴근 후 서울로 갈 유일한 방법을 잃었다는 뜻과 같았다. 물론 읍이나 대구로 가서 기차를 타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기에, 결국 서울로 가려면 오후 반차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버스 차편의 감축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고 묻는다면, 독자 여러분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버스 터미널은 어떤 모습인지 역으로 질문하고 싶다. 오후 6시 10분의 막차가 폐지되며 오후 3시 30분 차편이 막차가 되었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영해 시외버스터미널에는 애초에 차편이 그리 많지 않다. 도시의 그것과 같이 3-40분, 혹은 1시간가량의 간격이 아니기에 작은 변동마저도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전 화에서 언급했듯 차편이 적다는 것은 수요가 적다는 뜻이기도, 이 정도면 생활을 유지하기에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맞다. 연차가 너무나도 소중한 어느 직장인의 신세 한탄일 뿐이다.
넉넉지 않은 버스 차편을 납득시켜 줄 만한 것이 바로 이 터미널의 외관이다. 정류소보다는 조금 크지만, 터미널이라고 하기엔 조금 아쉬운 크기의 영해 버스터미널. 겉모습을 보면 로컬의 온도에 완벽히 적응했음이 틀림없다. 군데군데 벗겨진 페인트는 자신이 이 구역을 제패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문신과도 같은 포스를 지녔으며, 1년째 떨어지지 않고 용케 붙어 있는 아웃렛 포스터는 자신의 영역을 자랑하듯 오가는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며 허름한 터미널의 외관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대대적인 시술의 필요성을 인식할 때도 있지만 그 생각도 잠시, 이 풍경 또한 나쁘지 않다며 금세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오래 보고 있으면 나름 클래식한 매력을 찾을 수 있달까. 구관이 명관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오늘도 터미널은 분주하기만 하다. 조금 낡은 듯 보여도 제 쓸모를 다하고 있는 터미널을 생각하면 로컬의 온도에 익숙해진, 아니, 어쩌면 로컬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는 장본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시샘이 나기도 한다. 읍, 포항, 울진, 대구 등등. 터미널을 찾는 이들 모두가 저마다 다른 곳으로 향할 테지만, 그들 중 대부분의 발걸음은 다시 이곳 영해 터미널로 향할 것임을 안다. ‘여행지’라기엔 조금 어색한 영해 버스터미널은 대체로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머지않아 외출을 끝내고 돌아오게 될 곳인 까닭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영해 터미널이 오래된 모습으로도 건재하며 위엄을 자랑하는 것 또한 그럴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올 것을 알고 떠나보낸 이들을 기다리는 쪽에는 언제나 여유가 넘치는 법이니.
2. 로컬의 미용실에 관하여
“나 귀촌했어!”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귀촌한 직후 필자의 근황을 주변에 자랑하듯 떠벌리고 다녔던 게 생각난다. 완벽하게 정착한 척 살고 있었지만, 사실 필자에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이 하나 있었다.
‘머리카락은 반드시 대도시로 나가서 잘랐다는 것….’
도시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로컬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다녔던 필자이기에, 아직 이발만큼은 로컬에 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제 발 저려 부끄러움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대체재가 없었다기보단, 굳이 대체재를 찾으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듯하다.
반년 전 어느 날, 문득 지금의 긴 머리를 잘라내고 짧은 머리로 갈아타고 싶은 충동적인 욕구가 강렬하게 솟구쳤다. 그리고 필자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뚜벅뚜벅 동네 이발소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것이 첫 경험이었다.
어딘지 노련하면서도 묘한 느낌을 내뿜는 이발소 앞, 문고리를 돌리는 순간에서야 조금 멈칫했으나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다. 끼익- 하는 소리를 내며 열린 문틈으로 정겨운 모습의 의자를 본 이상, 홀린 듯 들어가 앉아 버린 것이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냐고?
요즈음도 필자는 3~4주에 한 번 어김없이 동네 이발소로 향한다. 머리카락이 길어지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해 유독 자주 이발을 하러 가는 편이긴 하나, 로컬 이발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함을 잊지 못하는 까닭도 있다. 가위질을 할 때의 손목 스냅에서 풍겨오는 섬세함과 두툼히 발린 면도크림에서 오는 안정감, 그리고 자연스러운 대답을 이끌어내는 노련함까지.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필자가 감각해 온 로컬의 온도와 꼭 맞아떨어졌다.
한 번은 현금을 넉넉히 챙기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괜찮으니 가지고 있는 돈만 내고 가라며…. 당신의 따뜻한 정(情)으로 필자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하셨다. 이름을 밝혀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나중에 영덕군 영해면에 오면 ‘로터리 이발소’에 꼭 방문해 보시라. 후회 없는 선택일 거라 장담한다.
앞서 언급했듯, 생물은 그 생물이 생존하기에 최적화된 온도 속에 살아가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생물은 그 생물이 생존하기에 적절한 곳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걸어 본 사람만이 자신의 속도를 찾을 수 있고, 그래야만 그간 보려 하지 않았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나아가 보지 못했던 것들에 눈을 돌리는 순간 저 너머의 세계를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으로 당당히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토록 갈망했던 무언가가,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곳, 나의 온도에 최적화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곳.
그러니, 아직 나만의 속도를 찾지 못했다면 걱정하지 말고 일단 4km/h로 살아 보자. 천천히 걷다 보면 저도 모르게 생겨난 크고 작은 변화들이 삶의 속도를 찾게 할지 누가 알겠는가.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모든 존재는 자신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영위할 자격이 있다. 살아 있는 한, 더 적절한 곳을 찾으려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로컬의 필자의 온도에 맞는 곳이고 필자가 로컬의 온도에 맞는 사람이라면 그걸로 된 것 아니겠는가. 지독한 더위에 시달리는 여름이지만 아랑곳 않고 꿋꿋이 버텨 보려 한다. 계절의 변화 역시 살아 있기에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니까. 살다 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가을이 오고, 기어이 겨울이 올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