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만두 한 주먹 Jul 24. 2022

[21세기 원시인]  ep 10. 달라진 것들에 관하여

우리는 오늘도 변화한다

0) 변화의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


지난 주말엔 영덕 남북부를 가로지르는 7번 국도를 운전하다 조금 낯선 풍경을 발견했다. 어디에나 걸려 있을 법한 현수막 하나가 새삼스레 시선을 끈 까닭이다.     


2022 영덕 해수욕장 개장  

다른 어떤 곳보다도 푸르고 깨끗한 바다를 자랑하는 영덕인데, 해수욕장 개장을 알리는 현수막이 무슨 대수냐고? 물론 그렇다. 영덕 지역 내에 위치하는 바다도 곳곳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자랑할 정도로, 해수욕장은 영덕의 관광 자산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코로나 19의 확산세가 극에 달했던 작년 여름에는 그 흔한 해수욕장 개장 현수막 하나를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영덕으로의 귀촌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해수욕장 개장’ 현수막이기에 이리도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이다.


영덕이란 로컬에, 그리고 로컬의 온도에 (ep 9 참고) 너무나도 잘 적응한 탓에 조금은 무뎌져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겨 보기도 하는 요즘, 변화는 현재 로컬에서 영위하고 있는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좋은 기폭제가 되어 주곤 한다. 특히 그 변화가 ‘새로운’ 무언가를 마주하게 하는 종류의 것이라면 더더욱.

로컬을 누릴 대로 누려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필자에게도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게 넘쳐난다는 사실이 참 기쁘게 느껴진다.     


변화. 변화했다. 이토록 묘한 감정을 천천히 음미하고 있자면 슬며시 가슴 한편이 벅차오르는 것은, 아마 이보다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 따위에서 비롯한 작용일 테다. 언제까지나 여기에 이대로 머무를 수만은 없다는 스스로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함으로써 기대에 부응하는 것. 필자가 서울을 떠나 귀촌을 택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서울을 벗어나 시골로 향했을 때의 변화와 시골에서 맞이하는 변화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은 ‘좋은’ 선택지가 있는가 하면 ‘더 좋은 선택지’ 또한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그렇게 매번 최선을 경신하는 것이 곧 삶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에 따른 변화와 그렇지 않은 변화, 두 가지 종류로 변화라는 대상을 구분할 수 있다고 전제해 보자. 우리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졌’다고 믿는 변화 중의 대부분이, 사실은 어떠한 의지가 이미 선행했기 때문에 마주할 수 있게 된 경우들이라 짐작한다. 필자가 서울을 떠나 영덕으로 향했으므로 ‘2022 영덕 해수욕장 개장’ 현수막을 볼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비록 코로나라는 변수가 낳은 ‘예외’로 인해 생겨난 변화지만, 부재의 시간을 기다렸기에 반가움이 배가 된 것 아닐까. 따지자면 코로나 19와 같은 것들이야말로 의지와 무관하게 찾아오는 변화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더 낫게 변화시키려는 모두의 노력 덕에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코로나 19의 시듦 속에서도 기어이 더욱 견고하고 정교한 근육들을 만들어오지 않았는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한 아기 새의 버둥거림이 날개의 근육을 만들어 주는 것처럼, 현재의 상황을 더 낫게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스스로를 성장시키곤 한다. 비록 그 성장이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는다거나, 상당한 성장통을 동반할지라도 말이다.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필자 역시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리고 아주 더딜지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노력으로 다양한 부위에 근육을 붙여 나가는 중이다. 물론 로컬 특성상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당하며, 의도치 않게 근육이 단련되고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별것 아닌 다짐으로 비칠지도 모르겠으나 부정적인 상황을 벗어나려는, ‘변화’를 위한 노력은 필자에게 있어 도시에서 살던 시절에 비해 가장 달라진 점에 해당한다. 도시에서 필자는 경쟁을 포기하길 일삼았다면, 이젠 가만히 있기보단 무엇이라도 해 보려 변화를 추구하고 있으니. 이곳 로컬은, 단순한 부품이 아닌 복합적인 주체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필자는 뚜벅이마을에서, 그리고 3.5만의 인구를 보유한 영덕군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으며 살아가는 중이다.  물론 그 변화가 긍정적으로 완결되었을 때 비로소 고착화되지 않음의 가치, 즉 달라짐의 가치가 빛을 볼 수 있겠지만, 시속 4km의 삶을 살기로 한 이상 적어도 고착화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일단’ 만족하려 한다.     


귀촌 후 1년, 그 변화들의 한가운데로 잠시 들어가 보자.


1) 피부색의 변화


국어사전에는 ‘변화하다’를 제외하고도 ‘변화되다’라는 단어가 별도로 등재되어 있다. 모든 동사에 피동의 뜻을 더한 접미사 ‘-되다’가 결합된 동사가 따로 사전에 올라가 있지 않음을 고려하면, 이는 실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애초에 ‘되다’라는 동사 자체에도 ‘다른 것으로 바뀌거나 변하다.’라는 의미가 주어졌는데, 그 앞에 ‘변화’까지 붙었으니 두 번은 강조된 셈이다. 이처럼 변화에 변화를 더해 얼떨결에 품에 떠안았을 땐, 앞서 언급했던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변화를 맞이하는 경우’를 자연히 떠올리게 된다.      


까맣게 그을려 버린 피부야말로 변화 ‘된’ 결과일 테다. 사실 로컬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맞이한 변화라기엔 조금 조심스러운 감이 있다. 다만 로컬에 정착한 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도시의 그것에 비해 자외선에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음에 애써 위안해 볼 뿐이다.     

물론 로컬에도 일부 책임의 소지가 있다. 높은 건물이 없어 그늘이 적다는 점, 대중교통이 많지 않아 웬만한 거리는 도보를 주로 이용했던 점, 그리고 바다가 너무 예뻐 시시때때로 달려가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로컬이 나의 피부를 타게 만든 혐의 정도는 물 수 있지 않겠는가.     


미디어에서 로컬의 인물을 묘사할 , 의도적으로라도 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연출하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있다. 햇빛을 멀리하려야 멀리할  없는 1 산업 종사자가 도시에 비해 많다는 이유로 그리한 것이겠지. 모자를 착용한다고, 선크림을 듬뿍 바른다고 해서 강렬한 햇빛에 의한 그을림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 하지만  로컬 사람들의 ‘노력에 의한 그을림 인류 전체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결코 무시할  없으면, 무시해서도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그을림 또한 노력의 산물이라 생각하는 쪽이 마음 편할 듯하다. 이미 한 차례의 변화가 찾아온 이상, 그저 받아들이는 일밖에는 할 수 없으니. 무를 수 없다면 즐겨야지 뭐 어쩌겠는가.



2) 우울의 회복 탄력성


너, 귀촌하고부터는 SNS에 우울한 개소리 안 올리네?   

맞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기척도 없이 삶의 테두리에 성큼 다가와 있는 변화를 모르는 채 살다가도, 위와 같은 주변인의 지적 한 번에 지난날을 톺아보았다.     


도시에서의 우울은 고질병이었다. 우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게 문제였으며, 그보다도 더 우울해하려던 게 문제였다. 우울함을 빠르게 극복해 낼 힘을 기를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줄곧 필자를 우울하게 만들던 주된 요인은 다름 아닌 경쟁. 귀촌한 지금도 필자는 여전히 경쟁을 즐기지 못한다. 사람에게 태생적인 기질 같은 것이 있다면, 필자에겐 그 소화 불가능에 가까운 대상이 바로 경쟁이라 여겨 왔다. 경쟁의 결과는 위대하며, 경쟁의 과정이 곧 본인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만드는 좋은 동력이라는 것은 필자 또한 알고 있다. 다만 승자가 있다면 동시에 반드시 패자가 생길 수밖에 없음이 곧 경쟁의 원칙이라면, 굳이 맹목적으로 따를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승자든 패자든 경쟁을 통해 조금은 더 확실해 보이는 성과를 얻었을지라도, 개인이 받은 내적 타격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적어도 과거의 필자는 그렇게 믿으며 경쟁의 가치를 폄하하곤 했었다.

 

정확히 따지자면 패배주의와 같은 자신감 부족으로 인해 경쟁을 즐기지 못한 것은 아니다. ‘경쟁으로부터 파생된 우울감’이 주된 이유였다. 졌을 때의 우울함이 있는가 하면, 이겼을 때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필자가 승자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유로 패자로 전락해 버린 상대방의 우울감이 전이되어 올 때, 그를 뒤로 하고 우월감이나 성취감에 취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자는 되지 못한 까닭이다. 뒤이어 경쟁 끝에 마주한 감정은 필자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결과였다. 승패 여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 필자에게 도시라는 공간은 경쟁의 중심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달리고, 보다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회식 장소를 찾기 위해 달리고, 동기와의 경쟁에서 뒤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달리고. 그야말로 경쟁의 연속이었다.     


사실, 인간이 어찌 경쟁을 일절 하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속세의 모든 굴레를 끊고 산으로 들어간 자연인들도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야생동물과 경쟁하는 걸 보면, 경쟁은 인간 삶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귀촌한 지금도 필자는 여전히 수많은 경쟁 아래 놓여 있다. 사람들로 붐비는 장날에 주차할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사소한 경쟁부터, 그 언젠가 나타날지도 모를 뚜벅이마을의 잠재적 경쟁자를 견제하는 고민까지. 온통 즐기지 못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즐기지 못할 것 같은 경쟁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경쟁으로 인해 떠안게 된 우울의 회복 탄력성은 도시에서보다 현저히 좋아졌음을 느낀다. 어쩌면 그 경쟁의 장이 기본적인 의식주로부터 조금 멀어졌다는 점, 애초에 직장 동료들을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여기고 있다는 점, 그리고 햇볕을 쬐며 우울증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비타민D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 등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뚜벅이의 운명을 타고 나서인지 마음대로 밖에 나가 걸을 수 없는 비 오는 날의 우울은 아직 제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우울의 회복 탄력성이 좋아졌다는 건 유난히 달갑고 감사한 변화다.


3) How to live, 어떻게 살 것인가


부모님 세대 덕에 저희 청년 세대는 비교적 의식주에 관한 고민을 덜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를 찾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할 수 있게 된 것도…….    


며칠 전 게스트로 출연한 라디오에서, ‘부모 세대와 다른 점’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필자는 이렇게 답했다. 말하면서도 의식주 문제를 고민하며 살았던 과거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꼭 거짓말을 한 것처럼 부끄러워졌다. 틀린 말을 했다고 생각진 않지만 그 기준을 수도권으로 옮기는 순간, 당장의 일상도 감당하기 벅차면서 미래를 위한 저축까지 해야 하는 우리 세대 저소득 근로자들의 현실이 아른거리더라. 삶의 터전을 옮기지 않고 계속해서 도시에 살았더라면 필자의 상황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과연 여기서 어떻게 집을 사고 결혼을 하고 후세대를 양육해야 하는지 고민했을 터.     


도시에서의 필자에게 ‘How to live(아…. 여기서 어떻게 살지)’의 ‘how’는 늘 한탄스러움의 ‘How’ 였다.

영덕으로 귀촌한 지금, 도시에서 수령하던 임금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하지만 생활상을 고려했을 때 그 소비의 범위는 대폭 축소되었기에 도시에서보다 생활 수준이 확연히 올라갔음을 체감할 수 있다. 월마다 나가는 집값, 식당에서 결제하는 음식 비용, 그리고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지하철&시내 버스비 등.


어느새 ‘How to live’에서의 ‘how’를 ‘방법’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사소하게는 집을 어떻게(how) 꾸미는 게 좋을지, 취미를 어떻게(how) 구성해야 할지, 여가 시간을 어떻게(how) 활용하고 싶은지와 같은 질문도 던져 볼 수 있을 터. 물질적 여유에서 오는 심적 여유 덕분에 이제는 ‘나의 미래를 어떻게(how) 설계할까’ 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남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조바심이나 압박으로 인한 고민이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고민을 하고 있는 지금, ‘How to live?’라는 질문이 더는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게 되었으니, 꽤 의미 있는 변화 아닌가.

     


오늘도 필자는 ‘how’라는 의문사를 이용해 ‘live’라는 답을 찾기 위해 로컬에서 살아가고 있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 필자는 매 순간 또 다른 변화를 겪게 되겠지. ‘live’라는 동사가 없이는 ‘live’라는 형용사를 취할 수 없을 테니. 우리 삶을 찾아오는 수많은 변화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과 동시에, ‘변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기로 하자.

이전 09화 [21세기 원시인] ep9. 원시인은 주파수를 타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