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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만두 한 주먹 Aug 07. 2022

[21세기 원시인]  ep 11. 원시인을 소개합니다

귀촌을 권(券)하여 귀촌을 권(勸)한다.

1) 무엇이 로컬을 그리 불편하게 만드는가


누군가 필자에게 로컬에서의 불편한 점을 묻는다. 구태여 불편한 점을 찾는다면 하고많은 근거를 ‘만들’ 수는 있겠다마는, 긁어 부스럼이거니와 실제로 딱히 떠오르는 바가 없는 걸 보아하니 설령 있다 해도 그리 치명적인 수준은 아닌 듯하다. 어인 까닭인지 ‘제대로 된 서점이 없다는 것’ 정도가 필자에게 와닿는 불편함이라 손에 꼽고 싶어진다. 그나마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서점의 부재라니, 좀 터무니없다고 느껴지는가? 물론이다. 서점은 누군가에겐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사고로 넘겨짚을 수 있는 공간일지 모르니.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서점이 있는 지역에 몸담고 있는 이에게만 한정되는 ‘감사한 여유’이지 않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이를 테면 길 건너에 또 다른 브랜드의 대형 서점이, 골목을 돌면 중고 서점과 독립 서점 등이 위치해 있는, 그야말로 서점이 도처에 깔려 있는 곳 말이다.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책을 제외하고는 다른 책을(신간의 경우는 더더욱) 펼쳐 볼 수 없는 환경을 상상해 보시라. 아무리 자신만은 책과 거리가 멀다 생각하여도, 아마 실제로 가늠하기는 어려우리라 예상한다.


있어도 안 찾는 것과 없어서 못 찾는 것은 정말이지 천지 차이인 까닭이다.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마저도 필자에겐 도시 여행을 떠나기 위한 좋은 핑곗거리로 활용되므로, 웬만하면 불편한 점에 대한 물음엔 ‘딱히 없다’ 정도의 답으로 무마하고 말 뿐이다.     

로컬은 그야말로 ‘문화 사각지대’ 임을 이따금씩 실감한다.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여러 논리가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양질 도서 공급처’의 부재는 주류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영역을 기어이 확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특히 오프라인 서점의 부재는 책과의 만남을 ‘피부로 감각할 수 있는’ 종류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아닌, ‘돌고 돌아 전달되는’ 종류의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치환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도서관을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뒤따르곤 한다. 물론 동네 근처를 샅샅이 뒤져 보면 작은 도서관 한두 군데는 발견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 활발히 운영되는 곳은 거의 없어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사실 애초에 필자는 도서관과 서점이 지니는 무게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믿는다. 손때 묻지 않은 책 그 자체를 느끼고 또 소비자로서 제값을 지불하여 구매하는 행위는 ‘내가 고른 책’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까닭이다. 그런가 하면 그 어디에서보다 쉽고 빠르게 신간과 베스트셀러 등을 접해 볼 수 있는 온라인 서점을 두 번째 대안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남다른 배달 서비스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영덕군 영해면이라는 먼 지역까지 책이 배달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감을 활용해 텍스트를 감각하는 과정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기 마련인지라, 이 점이 온라인 서점과는 구별되는 오프라인 서점만의 경쟁력을 증명한다 설명할 수 있겠다.    

 

이제 갓 태어나 세상 밖으로 나온 책을 소중히 품에 안고 돌아와 독자로서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가는 신비한 일. 그래야만 책과 사람 사이의 기특하고 애틋한 연이 생겨난다 믿는다. 손에 쥐어진 ‘그 책’의 소중함을 아는 독자만이 책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거라면, 오프라인 서점은 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공간임을 결코 부정할 수 없을 테다.




2) What you've got


필자는 톰 행크스, 메그 라이언 주연의 영화 『You’ve got mail(유브 갓 메일)』이란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불 꺼진 방의 창틈으로 흘러들어오는 귀뚜라미와 개구리 울음소리를 곁들인 채, 몇 번이고 감상하곤 했다.

이 영화는 1998년에 제작되었지만 서사 속의 세계관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것은, 대형 서점과 동네 서점의 갈등이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는 까닭일 테다. 가뜩이나 좋아하는 주제를 특유의 세기말 감성으로 풀어냈으니, 어찌 맥주가 들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수많은 영화들 가운데 유독 이 영화를 아끼는 이유의 전부는 아닐 거라 믿는다. 곰곰 생각해 보면 필자에게는 동네 책방이라는 공간이, 그리고 그곳에 깃든 어떤 종류의 이야기가 여전히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삶의 고단함에 지칠 때면 어린 시절의 저편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동네 책방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어떤 날의 기억을 꺼내 펼치든지, 그 작은 책방에 서서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리는 어린 필자의 눈동자는 반짝이고 있었다. 색 바랜 감성을 자꾸만 곱씹게 될 때면 동네 서점에는 대형 혹은 온라인 서점과는 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논리에 조금은 더 힘을 실을 수 있을 것만 같아진다. 그래서일까. 문화 사각지대에 놓여 다신 오지 않을 유년기를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꼭 이 감성을 느껴 봤으면 하는 마음에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필자의 감성을 공유하는 이들이 늘어가며 여기저기 하나둘씩 독립 서점이 생겨나고 있다. 사업 특성상 ‘실리’나 ‘효율’보단 ‘감성’이나 ‘추억’ 따위의 것들에 더욱 가치를 두는 소비자들이 대부분인지라, 비단 도시에 한정하지 않고 한적한 로컬에 자리 잡는 독립서점도 있더라. 영덕에도 독립 서점 하나쯤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조심스레 표출해 보며, 조금은 멋쩍지만 모든 독립 서점들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응원할 뿐이다.




3) 처음부터 원시인이 되려던 건 아니었는데,


얼마 전에는 지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너도 귀촌에 관한 책 한 권 써 보는 건 어때?   

선물 받은 책은 사실 필자와 초면은 아니었다. 며칠 전 대구의 한 서점에 들렀을 때 필자 또한 그 책을 눈여겨봤던 까닭이다. 요즘은 서점에 방문하면 ‘귀촌’ 관련 서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가슴 한편으로는 탈도시를 갈망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성향을 고려한, 말하자면 지극히 상업적인 목적의 영업 전략일 테다. 귀촌을 주제로 한 여러 가지 책들 가운데, ‘젊은 사람’이 쓴 것은 특히 눈이 가는 듯하다. ‘귀촌’이라는 두 글자의 단어에서 얼마나 참신한 이야기를 끌어냈을지 주의 깊게 읽어 보곤 한다. 나름의 경쟁심이랄까. 서점 모퉁이에 가만히 서서 귀촌 도서를 읽고 있노라면, 우리 동료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른다. 뚜벅이마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귀촌 청년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인다면 참 재미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모두가 한데 모여 남 부러울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개개인의 삶이 지닌 특별성을 잊을 때가 많지만, 한 명 한 명 들여다보면 저마다 다채로운 개성을 자랑한다. 각자의 궤적을 따라 돌고 돌다 이 넓은 세상 속 영덕이란 시골에서 만난 순간 우리가 비로소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게 되었음을 생각하면, 참으로 묘한 인연임이 틀림없다.     


마침 이야기가 나온 김에, ep11에서는 뚜벅이마을 청년들의 이야기를 조금 적어보려 한다. 이름도 얼굴도 없는 ‘귀촌 청년’이라면 마냥 막연하게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주 뚜렷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기에. 지금부터 소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내 옆의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음을 유념하며 본 글을 읽어 주시길, 오늘만은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쓴다. 언젠가는 이 글도 어엿한 한 권의 책으로 엮일 수 있으리라는 부푼 기대와 함께.



접근성의 한계로 문화생활을 영위하지 못할까 두려운 당신에게.    


a. 로컬에서 문화기획사를 운영하는 부산 출신 S     


S를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특이하다’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편안한 쉼, 혹은 조용한 삶 따위를 지향해 귀촌을 선택한 케이스가 아닌 까닭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컬 특유의 ‘느림의 미학’을 동경해 시골로 향하곤 한다. 다만, S에게 있어 로컬은 마냥 한가롭고 잔잔한 곳이 아니었다. 그는 로컬을 새로운 기회의 땅, 즉 블루오션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토록 특이한 계기를 시작으로, S는 지금 영덕군에서 문화기획 청년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 필자와는 워낙 가까운 사이인지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여러 취미를 공유하고 있는데, 그럴 때면 이곳이 도시인지 로컬인지조차 잘 구별이 가지 않는다.

S는 어디에 있어도 의지만 충분하면 얼마든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실현할 수 있음을, 자신의 삶을 통해 직접 증명하고 있다. 포항에 가서 영화를 관람하고 온다거나, 대구에서 작곡 수업을 듣고 온다거나, 주말이면 서울로 향해 뮤지컬 혹은 e스포츠 경기를 직관하고 오는 등, 여느 도시의 직장인과는 다름없이 퇴근 후의 여가를 즐긴다. 환경적 제약에 개의치 않은 채 ‘지속 가능한 로컬’의 생활상을 제시하고 있는 S는 귀촌을 고민 중인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본보기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소개가 늦었지만, 구수한 부산 사투리와 어우러지는 눈웃음이 꽤 매력적인 S는 뚜벅이마을의 대표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생각해라, 간단하게.   
  

이 말을 늘 입에 달고 사는 S는, 정작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는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그와의 대화가 끝나면 놓치고 있던 부분을 깨닫게 되고,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이른다. 당장은 조금 괴롭긴 해도, 지나고 보면 그것이 꼭 필요하며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절차였음을 깨닫곤 한다. 툭툭 내뱉는 질문 몇 마디로 사람을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것. 이 또한 S만의 강점일 테다.

자랑스러운 대표인 그가 있어 여러 청년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로컬에서의 삶을 지속하고 있는 것 아닐까.           



운전 면허가 없어도 로컬 살이가 가능할까 고민하는 당신에게

   

b. 로컬 생활을 너무 즐긴 나머지, 피부가 그을릴 만큼 그을린 안양 출신 P

    

약 8년이라는 기간 동안 대학을 다녔을 정도로 느긋한 매력을 지닌 P는 필자 주위의 여러 귀촌 청년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로컬을 잘 즐기고 있는 듯하다. 사실 어떠한 이유로 귀촌을 결심했는지는 깊게 물어보지 못했다. 가늠하건대 P의 성격상 ‘경험’을 목적으로 귀촌을 결정했을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기엔 로컬이란 곳에 와서야 제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 그 배경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무얼 하고 있냐고 물을 때면 대개 바닷가 러닝을 하고 있거나 (본인은 극구 부인하는데, 필자가 보기엔 이 취미가 P의 피부를 그토록 그을리게 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모래사장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있거나, 혹은 DSLR을 들고 출사를 나가 있거나... 자신만의 속도를 잃지 않으려 스스로를 위한 여가 시간을 선물하곤 한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신중하게 발걸음을 내딛는 p는 지금껏 어떻게 도시에서 살아왔는지 모를 일이다. 자연과 더불어 사색을 즐기는 건강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철저한 로컬형 인간이다.        

         


P를 ‘로컬형 인간’이라 칭할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아직 운전면허가 없다는 사실이다. ‘시골에서 운전 면허 없이 생활이 가능한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 청년을 예로 들 수 있을 듯하다. 불편하지는 않냐는 주변의 걱정에 ‘먼 거리는 시외버스!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나 도보!’를 외치며 웃어 보이는 P의 소박함에, 늘 더 많은 것을 바라 왔던 필자는 깊이 반성하곤 한다.

    

P는 귀촌 후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 및 운영 중에 있다. 하는 일이 비슷하여 필자와도 자주 소통을 하는 편인데, P와 이야기를 나누면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 설령 그 이야기가 일과 관련한 주제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상대방을 편하고 느슨하게 만들어 준다는 건, 로컬과 P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공통점 아닐까.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모르겠는, 그래서 뭐라도 해 보고 싶은 당신에게


c. 고기를 좋아하지만, 비건 지향의 삶을 사는 대구 출신 K     


소개 문구 그대로 모순적인 삶을 사는 K.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음주라는, 양립하기 쉽지 않은 두 대상을 즐기며 삶을 영위하다가 최근 들어 그 모순을 극복하고자 ‘제로 맥주’라는 합의점에 도달했다. K는 필자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귀촌한 지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든 어엿한 ‘로컬 선배’다. 들어 보니, 대학 졸업 후 각박한 취업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로컬로 귀촌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더라. 로컬 정착 후 젊음의 패기로 개인 사업부터 카페 아르바이트까지 안 해 본 것이 없는 K는 지금 P와 함께 로컬의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시골살이 경력이기에, 지역 주민들과의 접촉이 필요할 땐 K를 통하곤 한다.   

  

지역 내 많은 귀촌 청년들이 있지만, 그중 K를 지면에 할애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바로 또 다른 귀촌 청년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비단 필자에게뿐만 아니라, 많은 귀촌 청년들에게도 상당히 고무적인 이야기다. ‘연애’는 시골에서의 삶에 대한 지속 가능 여부를 가릴 때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에 해당한다. 로컬 살이를 당장의 일로 한정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는, 미래의 안정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실제로 소멸 지역의 경우 인구를 늘리기 위해 지역 내 결혼 혹은 결혼 후 이주 가구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이 커플이 당장 결혼을 앞두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독자들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지역 정책을 가볍게 언급한 것뿐이다.     

 

오늘도 K는 치맥 하러 가자는 필자의 달콤한 속삭임을 뿌리치고 헬스장으로 향하고 있다.    

       



‘귀촌이라면 단 한 번도 꿈꿔본 적 없었고, 그래서 어쩌면 지금도 스스로가 로컬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 오해하고 있을 당신에게.’      


D. 귀촌의 새로운 형태, 21살 대학생 R

    

소멸 지역인 로컬에서는 귀촌을 장려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필자가 위치한 영덕군도 뚜벅이마을과 함께 로컬살이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여러 기회를 마련하고 있는데, 대학생 R은 그 프로그램을 통해 영덕군에 정착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라디오에 출연했을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참가자가 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필자는 R을 언급한 바 있다.      


보통 프로그램이 끝나면 우선은 더 깊이 귀촌을 고민해 보겠다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형태를 보입니다. 설령 다시 돌아와 시골에 정착하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당시) 스무 살 R은 여기서 더 살아도 되겠냐며 떠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영덕군에 전입 신고를 하고, 지금까지 1년 동안 쭉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실 R은 이전에 시골에서 지내본 경험은 물론, 서울을 떠나본 적이 없는 전형적인 도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R 또한 자신이 시골에서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며 애초에 로컬살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서울만 벗어나면 온통 시골인 줄로만 알았던 좁은 시야를 버리고, 이제야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R은 ‘오직 로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는 데서 재미를 찾은 듯하다.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다면서, 그럼 R은 현재 무얼 하며 지내느냐고? R은 지금 필자와 함께 뚜벅이마을을, 더 나아가 영덕군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그 때문에 늘 필자도 모르게 ‘R은 여기 있을 애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지만, 이것마저 금세 들통나 버려 ‘왜 함부로 로컬의 가능성을 정의하냐’라는 식의 핀잔을 듣곤 한다.      

회사 구성원들 중에서도 가장 어리지만, 필자에겐 어느덧 로컬 생활의 멘토가 되어 버린 R. 필자는 R이 도시에서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변화를 겪었으며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궁금해할 생각이 없다. 하나 확실한 것은 R과는 생활 공간이라는 공통점에서 출발한 주제들로만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사람과 지금은 ‘시골’이라는 같은 곳에서 함께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테고.


대화를 나누고 있자면 이 친구에게서는 인생 2회차의 느낌이 물씬 난다. 가끔씩 다른 청년들과 동년배만이 느낄 수 있는 공감대를 공유하며 추억 여행을 떠날 때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R을 보면 새삼스레 나이 차이를 실감한다. 많게는 열 살, 적게는 네 살 많은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2002년 월드컵 때도 사람이 태어났다니!"라는 과장 섞인 놀림의 대상이 되곤 한다.


모쪼록 이곳 시골에서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감사하고 반가운 장점이라 생각한다.      


로컬의 도시화가 아닌, ‘로컬의 로컬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R을 보며, 로컬이란 공간에서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꾸리고자 노력하는 R을 보며,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곰곰이 고민해 보다가, ‘존경’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다.     

근데 너 대학 졸업은 대체 언제…?      




4) '불편한' 로컬에서 '편하게' 살아갑니다


솔직히 말하면 ‘불편한’ 로컬이다. 그러나 불편함이 익숙해지면 그 어느 곳보다도 자유로운 공간이 되는 게 로컬이기도 하다. 결국은 다 사람 사는 곳이기도 하고.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귀촌 청년들을 포함한 지역 주민들은 이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다.

    

글을 쓰다 보니 이곳에서 살아가는 청년들 모두가 각각 어떤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자 근사한 사례가 되어 줄 수 있음을 느낀다. 각자의 이유로 귀촌을 망설이고 있는 모든 청년들에게, 우리 뚜벅이 마을에만 해도 여러 가지 케이스가 존재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하나같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귀촌이란 답을 찾은 것은 아니나, 귀촌이란 답을 내려 보니 어느새 문제가 해결되었다더라. 되려 기존의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가도, 문제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들 한다.      


아무리 의문을 제기해 봤자, 답은 스스로의 삶을 직접 개척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당신 또한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이,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      

당신이라고 자유롭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필자는 오늘도 어떻게 하면 로컬을 잘 알릴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로컬에서의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만큼 솔직하고 매력적인 방법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우리의 귀촌 이야기를 권(券)하여, 독자 여러분에게 귀촌을 권(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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