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장래희망은 욕먹지 않는 사람입니다

스무 살, 그 오만하고 미련했던 목표에 대하여

by 하루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스무 살, 갓 입학한 대학교 전공 수업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신입생들에게 대학 생활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동기들이 학점, 연애, 취업 같은 뻔한 대답을 내놓을 때, 나는 비장한 얼굴로 손을 들고 말했다.

"제 목표는 모든 사람에게 욕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강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누군가 피식 웃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을 뻥 차고 싶은 흑역사지만, 그때의 나는 진지했다. 교수님은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어리석은 나의 대답을 듣고 묘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 웃음의 의미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허허, 그래. 아주... 원대한 꿈이구나."


그날 이후, 나는 나의 그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나는 캠퍼스의 '좋은 사람'이어야 했다. 후배들에게는 밥 잘 사주는 쿨한 선배였고, 동기들에게는 과제 자료를 기꺼이 공유하는 성실한 친구였으며, 연인에게는 간과 쓸개를 다 빼주는 헌신적인 남자친구였다.


새벽 2시에 울먹이며 전화하는 친구의 하소연을 듣고, 과제 마감 하루 전에 "자료 좀 보내줄래?"라는 카톡에 "당연하지"라고 답하고, 만나고 싶다는 연인의 말에 중간고사 시험 전날에도 한 시간을 달려갔다. 피곤했지만 괜찮았다. 아니, 괜찮다고 믿고 싶었다. 내가 베푼 친절이 쌓여서 언젠가 나에게 돌아올 거라는, 그 막연한 기대 속에 살았다.


겉으로 보기에 내 대학 생활은 무난했다. 아니, 평화로웠다.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나의 친절이 관계를 지키는 방패라고 믿었다. 내가 10개를 주면 상대방도 적어도 1개는 주겠지, 아니 적어도 나를 미워하진 않겠지, 하는 얄팍한 계산이자 순진한 망상 속에 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간이 갈수록 관계는 쌓이는데,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해졌다. 친구들과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진짜 좋아서 웃는 건가, 아니면 분위기 때문에 웃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내 감정과 표정 사이의 간극이 점점 벌어졌다.


결정타는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찾아왔다. 같이 조별과제를 했던 동기가 무심하게 던진 한마디였다. "야, 너는 착해서 좋긴 한데 솔직히 좀 만만해 보여. 네 의견이 뭔지 모르겠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이었겠지만, 그 말은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리고 가장 아팠던 건, 3년을 사귄 연인이 이별을 통보하며 한 말이었다. "오빠는 너무 착해. 근데 그게 문제야. 너한테는 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오빠가 진짜 나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사람이 좋은 건지 모르겠어."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좋은 사람'의 결말이 무엇인지. 나의 배려는 상대방에게 '당연한 권리'가 되어 있었고, 나의 헌신은 '만만함'이라는 이름표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모두의 비위를 맞추느라 웃고 있는 동안, 정작 내 속은 썩어문드러져 있었다. 상처는 타인이 주는 게 아니었다. '거절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가 매일 나를 찌르고 있었다.


더 무서운 건, 나조차 진짜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나는 무엇에 화를 내는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 모든 질문 앞에서 나는 텅 비어 있었다.

"모두에게 욕먹지 않는 것."


스무 살의 그 목표가 얼마나 오만하고 미련한 것이었는지, 나는 내 영혼이 너덜너덜해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교수님이 지었던 그 묘한 미소의 의미를, 졸업장을 받는 날에야 이해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던 내가, 결국 나에게마저 좋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