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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갈까 Apr 24. 2023

세상에 완벽한 준비는 없어.

그래도 겁은 나는게 현실이니까.

병원을 다녀온 날은 늘 뭔가 희망차 있다.

몸이 편하기 때문이다.

수술 후 항상 좌우 밸런스가 안맞는다는 느낌이 나를 지긋지긋하게 따라 다녔는데, 병원을 갔다온 날은 항상 그 문제가 해소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얼마 안가서 문제이긴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또 희망적인 생각으로 '촬영팀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하고싶다고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할수도 있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막상 촬영팀을 하지 못하는 몸이 되니까 일부러 더 집착해서 하고싶은건지.

막상 내 인생을 촬영팀에 걸자니 그건 또 겁이난다.

촬영팀을 한다고 생각하면 처음엔 좋은 것들이 생각나고, 두번째에는 겁이 나는 현실적인 것들이 생각난다.


체력이나 건강적인 문제,촬영팀은 몸뚱이가 재산인데 내가 앞으로 버틸 수 있을만한 몸뚱이가 되는지.

지식적인 문제, 촬영팀을 하면서 공부해야 할 것들이 수두룩 한데 내가 과연 앞으로 해나갈 사람인지.

휴식기, 일이 없는 시기에도 내가 내 마음과 정신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만들 수 있을지.

생활고, 휴식기에 항상 생활고에 시달렸는데 이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비책이 있을지.

 

내가 평소에도 촬영팀을 해오면서 걱정해온 것들이 아직도 답이 나지 않은채 시간만이 흘러 그대로 남아있다.

20대에 시작한 일이 30대가 된 지금 부상을 당하며 체력과 건강은 더 나빠졌고, 그 뒤로 부상의 위험이 나를 겁먹게 했고 촬영팀을 하며 카메라를 공부해야겠다는 지식적인 문제는... 촬영팀을 시작할때보다 당연히 아는 건 많아지긴 했는데 이런건 일을 하면서 누구나 알아가는 지식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혼자 공부해야 하는 지식에 관해서는 5년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거나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역시 내가 게으른 탓이겠지.


앞으로 내 인생을 촬영팀에 걸어본다고 가정한다면, 저 문제점들에 대해 겁먹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지.

내가 가장 겁먹었던 일들은 그거였다.

더 높은 직급이 되더라도, 마침내 감독이 되더라도 일이 없어서 쉬는 사람들.

내가 일하고 싶을때 일하지 못하고 쉬고 싶을때 쉬지 못한다.

프리랜서라는 가장 큰 단점. 

내가 가장 크게 두려워 하는 문제점.


감독이라고 한들, 하고있던 작품이 끝나고 어느정도 시청률이 잘 나오고 인기가 좋았더라도 내 개인적으로도 맡은바 업무를 잘했는지. 내 인맥이라고 불릴만한 라인이 있는지.

드라마 촬영은 고단하고 법적으로 보호가 잘 안되는 환경이라 '갑'인 제작사들에게 거슬리거나 밉보이는 일이 있다면 블랙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

예전에는 어느 방송사 직원들의 소품팀이었나, 분장팀들이 너무 많이 일하고 적게 받는다 라며(실제로 그러했다) '이대로는 못살겠다' 라고 해서 탄원서를 제출했었다고 한다.

방송사는 이를 괘씸하게 여겨, 하고 있던 작품을 All stop 시켜버렸다.

그냥 밥줄을 뺏어버린거다. 거야 말로 정말 괘씸하기 짝이없다.

당연한것에 대해 얘기 좀 했다고 월급을 못받게 하다니.

나는 아직 영향력을 행사할만한 위치는 아니지만, 촬영팀을 계속한다면 한단계 한단계 올라가고 언젠가는 감독이 될 수도 있으니.

가장 높은 자리에서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건, 나에게 블랙리스트라는 점으로 돌아올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 그때 가서 난 뭘 먹고 사나.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내가 느꼈던 가장 기본적인 부당함은 고용보험, 계약서 관련, 그리고 부상을 당했을때 이다.

일을 하면서 예술인 고용보험을 들어주지 않는 곳도 많았고, 조금만 규모가 적은 현장이라면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기에.

처음엔 촬영팀을 하면서 왜 이런점들을 지켜야 하는지 이유도 몰랐고 법적으론 해주는게 맞다고 하지만 지키지 않는 것이 통상적인 분위기였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하나, 둘 내 권리를 찾으려 할때마다 법적인 문제가 걸리기 시작했다.

실업급여를 받고 싶어 할때도 그러했다.

예술인 고용보험을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었고, 고용보험 가입 이력을 조회했을때도 정말 현타가 왔었고.

부상을 당했을때는 산재보험을 들어본적이 없었기에 이런점들에 대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법적 울타리가 있더라도 난 지금 당장 필요한 것들이니 이미 신청해서 헤택을 받기엔 늦은 것들 투성이었다.

그렇게 내 돈과 살을 깍아먹으며 내 멘탈도 함께 갈리고 있었다.


나는 내 몸을 바치면서 그냥 갈리고 있는 건 깨닫고 있었는데, 내 돈과 멘탈이 같이 갈리고 있다는건 서서히 깨달았다.

내가 연간 얼마나 벌었는지 소득조회를 했을때도 그렇게 현타가 아니올수 없었다.

내가 일한 것에 대해 제작사나 프로덕션 들이 소득신고를 얼마나 양심적으로 했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돈을 벌면서도 살았구나' 싶더라.

그동안 어떻게 살았나 싶었다. 정말. 내 스스로가 대견하고 기특하고 정말 대단해보였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일 하나만 보고 다시 촬영팀으로 돌아가자니, 내가 힘들어했던 촬영팀의 어두운 면들까지 감당할 수 있겠냐? 라고 한다면..... 난 모르겠다. 자신이 없다.

근데 그 일은 하고 싶다.


회사는 역시 적응하자니 마음이 따라주지 않고 (아직 배가 덜 불렀는지 어쨌는지 길거리에 나앉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싶다)


불안과 걱정은 인간의 본능인 영역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내가 걱정하는게 어디까지가 인간의 본능으로써이고 어디까지가 내 경험에 의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선택은 역시나 너무 어렵다.

많은 걸 감당하지 않는 안전한 선택이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문제들은 잠깐 뒤로하고

눈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하기 위한 내일을 위해 잠을 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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