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세무민의 시대 part 2

진실보다 자극

by Appendix

디지털 사이렌과 디지털 린치 현상은 광활한 디지털 생태계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세계에서는 정보의 소비와 생산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끝없는 평론의 순환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 평론가 A의 리뷰를 본 평론가 B가 "A의 평론은 너무 편향됐다"라고 비판하면, 또 다른 평론가 C는 "B는 A에 대해 개인적 앙금이 있다"라고 분석한다.

그 결과, 우리는 때때로 영화 자체보다 평론가들의 갈등에 더 몰입하게 된다.


한 평론가가 어떤 인기 드라마에 대해 "사회 구조적 관점에서의 해석"을 내놓자, 곧바로 "그런 식의 해석은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무시한다"는 반론이 나왔고, 이내 "예술성과 사회성은 분리될 수 없다는 비판"이라는 메타 비판으로 이어졌다.

드라마는 8회로 끝났지만, 이에 대한 평론은 수십 개로 넘쳐난다.

"나는 이 평론을 평론한 평론에 대한 평론을 평론하려 한다"는 문장이 나올 법한 기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메타 평론의 순환은 단순히 문화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놀랍게도 개인의 사생활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최근 한 인기 배우의 연인과의 결별 소식이 있었는데 "배우 A의 결별 소식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이라는 메타 기사가 원래 기사보다 더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결별 소식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라는 메타-메타 콘텐츠까지 등장했다.


이제 우리는 뉴스 그 자체보다 그 뉴스에 대한 반응, 그리고 그 반응에 대한 반응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사생활이 공공재가 되는 현상의 이면에는 정보의 검증 과정이 생략된 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추측과 왜곡의 진실 공장

평론의 무한 순환과 사생활의 공공재화는 더 근본적인 문제, 바로 정보의 검증 부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양측 관계자에 따르면", "업계 소식통은 전했다", "가까운 지인에 의하면" 등등, 이러한 문구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검증이 거의 불가능한 정보의 출처라는 점이다.

모호한 출처를 바탕으로 한 추측성 기사들이 디지털 생태계를 급속도로 오염시키고 있다.

이른바 '아님 말고' 저널리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언젠가 한 인기 가수가 공연 중 목소리가 흔들리는(소위 '삑사리') 짧은 장면이 온라인에 편집되어 퍼진 일이 있었다.

순식간에 "OO 가수, 라이브 실력 논란 의혹" 기사가 쏟아졌고, 한 매체는 "음악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실력이 의심된다"는 진단까지 내렸다.

그러나 전체 영상을 보면 그 가수는 몇 시간 동안 격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도 대부분 안정적인 라이브를 했고, 단 몇 초의 '삑사리' 장면 편집본이 확산된 것이었다.

해당 가수는 "전체 공연을 봐달라"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논란 속에서 실력 검증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진실보다 자극적인 단편이 더 빠르게 퍼지는 현상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예시였다.

이런 추측과 왜곡은 단순한 오보 차원을 넘어, 의도적인 논란 창출이라는 수익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죄송하지만 수익은 챙기겠습니다: 논란의 상품화

추측성 기사들이 범람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바로 '논란'이 가진 수익성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추측성 기사들이 만들어내는 담론의 악순환이다.


A라는 매체가 "가능성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한 내용을 B라는 매체가 "보도됐다"라고 인용하고, C라는 매체는 "논란이 일고 있다"라고 덧붙인다.

그러면 D라는 매체는 "여러 매체가 보도했다"며 마치 확인된 사실인 것처럼 다룬다.

결국 아무도 실제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추측이 진실로 둔갑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원래의 진실은 전달 과정에서 완전히 변질되어 원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가벼운 '아님 말고' 자세의 이면에는 실질적인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한 사업가 A는 근거 없는 사생활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 그 루머를 처음 퍼뜨린 유튜버 B의 채널은 빠르게 구독자를 끌어모으며 성장했다.

결국 진실이 밝혀져 루머가 완전히 허위임이 입증되었지만, 유튜버 B는 단 몇십 초짜리 사과 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할 뿐이었다.

그 유튜버는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라고 얼버무렸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과 영상에서도 광고 수익을 창출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유사한 카피 제품을 출시한 사업가 C는 엄청난 실적을 올렸다.

그렇지만 이 또한 사업가 C와 유튜버 B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단지 정황만, 합리적 의심만 남아있을 뿐인 것이다.


지루한 진실 vs 화려한 거짓

논란의 상품화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지루한 진실'보다 '화려한 거짓'이 우위를 점하게 만든다. 이러한 왜곡 현상은 정치 영역에서 더욱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한 정치인의 발언이 문맥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인용됐을 때, 원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논란이 일었다.

5분짜리 연설에서 20초 분량만 잘라낸 영상은 그가 전혀 다른 주장을 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더 큰 문제는 그 편집된 영상이 소셜 미디어에서 수십만 번 공유되었다는 점이다.

원본 영상을 본 사람은 극히 일부였고, 대부분은 편집본만 보고 해당 정치인에 대한 견해를 굳혔다.

거짓이 진실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전파되는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건강, 투자, 육아와 같은 중요한 영역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진다.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단으로 건강하게 체중 감량'이라는 진실은 100만 뷰를 달성하지 못한다.

반면 '이 음식만 먹으면 한 달에 10kg 빠집니다'는 그럴듯한 썸네일과 함께 1,000만 뷰를 순식간에 돌파한다.


유튜브 세계에서 진실은 종종 클릭수와 반비례한다.

10kg 감량 영상을 본 후 실패한 사람은 자신의 의지력을 탓한다.

'마법의 다이어트 방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다음 영상을 클릭할 이유도 사라진다는 냉혹한 알고리즘의 현실이 존재할 뿐이다.


디지털 린치 문화의 가장 무서운 점은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의 과거 행적이 누군가의 콘텐츠 소재가 될 수 있으며,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 현상은 사실 우리의 클릭과 관심이라는 연료로 작동한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진실보다 거짓이, 사실보다는 논란이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고 이른바 '현명한' 정보 소비자가 될 수 있을까?


호시탐탐 우리를 유혹하는 디지털 사이렌의 노래를 차단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가려내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part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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