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세무민의 시대 part 1

디지털 사이렌의 노래

by Appendix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고대 선원들이 사이렌의 치명적 노랫소리에 넋을 잃고 암초로 직진했다면,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휴대폰 속 알고리즘의 달콤한 속삭임에 취해 SNS라는 토끼굴로 뛰어들고 있다.

오디세우스는 최소한 자신을 돛대에 묶어두고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았지만, 우리는 기꺼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음 콘텐츠 자동 재생' 버튼을 활성화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기꺼이 유혹에 몸을 맡기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표류'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나의 하루는 어느새 유튜브 타임 라인에 '헌정'되고 있었다.

헌정이라니, 마치 무언가 숭고한 일을 하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실상은 어땠을까?

그저 스크롤을 내리며 끝없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일상이었을 뿐이다.


'DIY 홈 인테리어: 전문가 수준으로 변신!'이라는 유혹적인 제목의 콘텐츠에 현혹되어, 그 채널의 조언을 따라 도전한 우리 집 거실은 마치 지진이 지나간 듯한 모습이 되었다.

일주일간 열심히 시청하고 연습한 '홈스타일링 혁명'이 가져다준 성과는 이케아 가구 조립 설명서가 훨씬 더 친절했다는 뒤늦은 깨달음과 벽에 남은 미스터리한 구멍들 뿐이었다.


이렇게 실제 결과와 콘텐츠의 괴리는 디지털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지만, 그 유혹은 날이 갈수록 더 교묘해지고 있다.


신탁을 읊는 디지털 예언자들

디지털 유혹의 중심에는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예언자들이 있다. 유튜버들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은 종종 현대판 신탁과도 같다.


'이 주식 매수해 두면 1년 후 10배'라는 예언은 고대 델포이 신전의 여사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델포이의 신탁은 적어도 표현이 모호했기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해석의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유튜버들의 예언은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이고 확신에 찬 어조로 전달된다.


그리고 '1억 원으로 시작해서 10억 만든 비법 대공개'라는 화려한 제목의 콘텐츠들은 끝없이 넘쳐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대단한 비법 공개의 첫 단계는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이다.

이러한 신탁 같은 확언들은 단지 투자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 일상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정의라는 이름의 디지털 린치

디지털 신탁의 또 다른 형태로, 비판과 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 제작자들이 있다.

요즘은 소위 '사이버 레커'라 불리는 전문 비판가들이 넘쳐난다.

정보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는 가치가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이러한 비판 문화가 연예인이나 특정인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데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OO 연예인의 충격적인 비밀', 'OO 아이돌의 과거 폭로'...

매우 자극적인 제목들로 시작하는 콘텐츠들은 수 백만 조회수를 기록한다.

이들은 '국민의 알 권리'와 '소비자 보호'라는, 마치 정의의 탈을 쓰고 타인의 삶을 해부하지만 실상은 현대판 '디지털 린치'에 가깝다.


한 아이돌 멤버의 학창 시절 사진 한 장이 유출되기라도 하면, 그것은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순식간에 '과거 인성 논란'으로 까지 변모하고, 때로 '도덕적 결함'이라는 낙인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디지털 린치를 비판하는 콘텐츠조차도 'OO의 인성 논란, 과연 진실은?'과 같은 자극적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결국 모두가 동일한 관심 경제의 공범이 되는 셈이다.


이런 비판과 폭로의 문화는 특정 인물을 향한 공격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불안과 공포를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는 더 교묘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불안 마케팅과 대리 만족의 세계

디지털 환경에서는 불안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특히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내가 고객들에게 투자 자문을 하다 보면, "꾸준히 분산 투자하세요"라는 지루하고 평범한 조언보다 "다음의 테슬라나 엔비디아가 될 유망 주식은 없을까요?"라는 달콤한 환상에 현혹된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화려한 수익률의 환상 앞에서 건전한 판단력조차 쉽게 흐려지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로또 당첨을 꿈꾸다 복권을 사러 가는 길에 지갑을 잃어버린 것 같은 표정의 고객들을 상담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실망감을 이해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된다.

화려한 꿈보다는 현실적인 계획이, 극적인 승리보다는 꾸준한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오래된 진리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육아 콘텐츠도 이러한 불안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다.

"이 시기에 이것을 안 하면 아이 발달에 너무나 치명적입니다",

"이 영양제를 먹이지 않으면 키가 자라지 않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부모의 뇌리에 즉각적인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신용카드가 지갑에서 스스로 툭 튀어나온다.

마치 노벨상 수상 여부가 영양제 한 통에 달려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부모의 불안을 자극하는 콘텐츠들은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퍼져나가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이런 불안감 조성과 함께, 또 다른 흥미로운 현상도 나타난다.

우리는 왜 '한 달 만에 완벽한 복근 만들기' 영상을 보면서 소파에 누워 감자칩을 먹는 걸까?

그저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대리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중에 나도 따라 해 봐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뇌는 마치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도파민을 분비한다.

진정한 미래형 운동인 것이다.

손가락으로 스크롤하는 것만으로도 칼로리가 타는 기분이니,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의 완벽한 유산소 운동 아닐까?


사이버 레커와 디지털 린치, 불안 마케팅과 대리 만족의 현상들은 단순히 SNS 공간의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는다.

이것들은 더 복잡한 디지털 생태계의 일부로, 우리 정보 소비 방식과 판단력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 뒤에 숨겨진 더 깊은 메커니즘은 또 무엇일까?


(part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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