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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왈로비 Aug 23. 2023

좋은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

MIT빌딩20과 애플파크의 비밀

뉴욕 지도 -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248894316877152854/


뉴욕 맨해튼(Manhattan) 남쪽 끝,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회사에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직장을 위해 회사 근처에서 집을 구하려고 하였으나, 맨해튼의 임대료는 그 당시에도 매우 비쌌기 때문에 흘러 흘러 퀸즈(Queens)에 위치한 집을 렌트하여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출퇴근 시간이 편도 1시간 30분, 왕복 3시간이나 되었습니다. 뉴욕의 지하철은 서울의 지하철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심심치 않게 쥐도 볼 수 있고, 이상한 냄새도 나고, 에어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여름에는 지하철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와 사람들의 체온이 뒤엉켜 숨이 턱 막힐 정도이고, 또 지하로 내려가면 핸드폰이 터지지 않아 정신과 시간의 방처럼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경험도 수 있었습니다.


뉴욕생활의 장거리 출퇴근으로 고생을 하고 나니 집을 구할 때 무엇보다 중요하게 보는 가치는 직장과 집과의 거리(이른바 "직주근접")가 되었습니다. 공간의 중요성보다는 이동의 효율성을 추구했던 것이지요. 




뉴욕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 도심에 위치한 회사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뉴욕에서의 출퇴근 경험을 통해 회사와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한 아담한 공간을 가진 집을 구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만족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게 있어 집은 잠을 위한 공간에 불과하였으므로, 출퇴근으로 인한 시간낭비 및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에서 직주근접한 이 집은 제게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담한 집이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아이가 뛰다가 벽이나 문에 부딪히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직주근접을 포기하고, 도심을 벗어나 회사와 1시간 20분가량 걸리는 곳에 위치한 조금 더 넓은 공간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하고 새로운 공간에 머무르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넓어진 공간만큼 생각과 태도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여유가 생기니, 글쓰기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소한 일에 집착하는 것이 적어졌고, 공간이 주는 감사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생각과 태도가 공간에 의해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군가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환경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인간은 공간(void)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나'와 '공간'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지내는 것 같습니다. 

공간은 나를 변화시키고, 나는 그 공간을 다시 변화시키는 것처럼요.




MIT Building 20 - 출처 : http://paularch.blogspot.com/2016/02/mit-building-20.html


공간이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가 있습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9명이 한 공간에서 나온, MIT Building 20 입니다. 이 공간에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요?


이와 관련한 기사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자 합니다.


1943년 2차 세계대전 중에 지어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허름한 3층짜리 건물 ‘빌딩20’은 전쟁이 끝나면 6개월 이내에 철거된다는 조건으로 지어졌기에 환경이 엉망이었다고 한다. 건물을 대충 짓고 또 제대로 관리도 되지 않아 연구실 번호가 제각각이어서, 자기 방을 찾으러 가다 다른 연구실을 찾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E226호는 빌딩20의 E동 2층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엉뚱하게도 3층에 있는 식이었다. 특히 엘리베이터가 없는 저층 건물이라는 게 이동거리를 더욱 길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끝도 없이 이어진 복도를 따라 자기 방을 찾아가다가 복도에서 다른 과학자들을 만나 잡담을 나누고 또 리쿠르팅을 서로 했던 것이다. 자기 연구가 어떤 상태인데, 괜찮은 사람 있는가, 묻고 떠들고 잡담하는 가운데 막혀 있던 문제가 풀리는 기적 같은 경험이 매일 벌어졌던 셈이다.


결국 '빌딩 20'이라는 공간은 저층의 기다란 복도라는 특이한 구조로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이벤트 빈도가 높아졌고, 이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연결이 강화되어 사람들의 생각을 확장시켰고, 확장된 생각으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노벨상을 받을 확률이 올라갔을 것입니다. 


빌딩 20이라는 '공간'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변화시킨 것이지요. 



이처럼 사람은 공간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공간에 의해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현재 일하는 공간은 서울에 위치한 회사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인근에서 가장 높은 빌딩에 있습니다. 본 건물에는 여러 팀들이 한 층씩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팀과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의지와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세로로 이루어진 건축물의 특징인 것이지요. 

Apple Park : 출처 - https://www.fracttal.com/en/blog/apple-park


2006년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애플의 규모가 커지고 직원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캘리포니아 여기저기 임대한 공간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하나의 사옥에 모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애플파크(Apple Park)입니다. 잡스는 애플의 신사옥 디자인을 담당한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에게 대성당과 모습이 비슷한 픽사의 사옥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애플 사옥은 모든 것이 한 지붕 아래에 있어야 한다라고 당부하고, 죽음 직전까지 굉장히 많은 시간을 사옥 건설에 투자할 만큼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하나의 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애플파크의 직원들은 한 방향으로 걸으면 무한대의 복도를 만날 수 있고, 이곳에서 애플의 우수한 인재들이 만나는 이벤트 빈도가 높아져 쉽게 의견을 교환하고 생각을 확장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애플파크의 원 안에 공원을 만들어서 직원들이 햇살을 받거나 바람을 맞으며 쉬거나 산책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습니다. 복도뿐만 아니라 원 안의 공원도 직원들이 만나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죠. 애플파크 덕분인지 지금도 애플은 최고의 기업 중 하나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혁신은 각기 다른 전문가가 만나서 각자의 생각을 확장하면서 이루어나가는 것이기에, 혁신을 원하는 기업과 사람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쉽게 만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공간은 그 안에 있는 우리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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