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예측: 어쩔 수가 없다

단 한 번의 삶 #8

by 왈로비

어느 날 친한 회사 동료에게 물었습니다.

"나만 이렇게 AI가 불안한가요?"

그러자 회사 동료는 말하였습니다.

"네가 기술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그런 거 같아. 아직 AI를 써보지 않은 사람도 많은걸"




몇 년 전, 회사의 대강당에서 외부인사 강연이 있었습니다.

'송영길'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호리호리한 체형의 긴 머리, 다소 빠른 말투.


그리고 그의 첫마디


"당신의 직업은 안녕하십니까"

당시는 현재와 같이 AI가 그렇게 활용되지 않던 시점이기에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로스쿨에 변호사시험까지 합격한 그리고 경력이 쌓일수록 지식과 지혜가 늘어나는 변호사 직역은 안전할 것이라고, 당연히 대체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연 이후 송길영 박사는 시대예보라는 시리즈로 세 권의 책을 썼습니다.

첫 번째 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는 개인에 집중합니다. 최소 단위의 집단이었던 핵가족이 붕괴되고 핵개인이 등장합니다. 핵개인은 배달 앱, 세탁 앱 등 IT기술의 발전 덕분에 스스로 홀로 설 수 있었습니다.

[이전글 참고 - 핵개인의 시대, 핵가족이 살아가는 법]


두 번째 예보 <호명사회>에서는 개인의 사회적 위치에 집중합니다. 기존에는 OO대리님, OO변호사님 등 상대와 나의 관계에서 서로의 호칭이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호명사회에서는 어떠한 일을 꾸준히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좋아해야 하는 것, 그렇게 쌓인 조예를 인정해 주어 사람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여 마침내 호칭이 사라지고 개인 그 자체가 부각됩니다.

[이전글 참고 - 호명사회, 어떻게 살 것인가?]




세 번째 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에서는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선언합니다.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송길영 작가도 이는 예보가 아니라 "특보"라고 이야기합니다.


경량문명은 소비가 아닌 생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생산에 관한 변화는 받아들이지 않으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목이 짧은 기린'처럼 낮은 곳에 열린 잎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 높은 곳에 있는 나뭇잎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음을 암시합니다.


마켓컬리, 오아시스마켓의 콜드체인을 통한 하루배송은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직접 마트에 가지 않아도 다음날 새벽에 음식 재료를 배송해 주니 편리합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은 싫어. 물건은 직접 보고 사야지" 하면서 마켓컬리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소비에 관한 변화는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택시 업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대학 다닐 때만 해도 택시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오로지 택시에서는 현금만 받던 시대였습니다. 또한, 카카오택시는 소비자 입장에서 편리한 서비스입니다. 위험한 길가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택시를 기다리며 급하게 손을 흔들며 잡아야 했던 이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스마트폰의 화면을 몇 번 터치하는 것만으로 택시를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카카오택시를 안 쓰는 것도 가능합니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여전히 손을 흔들어 길에 있는 택시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산자인 택시기사의 입장에서 변화의 수용은 완전히 다른 임팩트를 줍니다. 신용카드를 받지 않거나, 카카오택시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택시이용자는 그 택시를 외면하게 되고, 결국 해당 택시는 돈을 벌지 못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즉, 소비와 달리, 생산과 관련된 변화는 피할 수 없습니다.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은 생산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로, 생산의 주인공인 기업에 관하여 말합니다.


최근 각광받는 기업 순위 대시보드인 'Lean AI'가 있습니다. 린 AI는 매출을 인원수로 나누고 직원 1인당 벌어들인 돈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깁니다.


그렇게 당당히 린 AI에서 1등의 영광을 거머쥔 기업은 전 세계 이용자가 사용하는 메신저앱인 '텔레그램' 앱입니다. 고작 30명의 사람이 이 거대한 IT 서비스를 개발, 운영하며 연간 1조 5천억 원($1,000,000,000)을 벌었습니다. 이를 직원수로 나누면 1인당 무려 500억 원($33,333,333)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참고로 삼성전자의 1인당 매출은 텔레그램의 3%인 약 14억 원(2023년 기준)입니다.


임직원 수와 생산설비를 늘려야 성장할 수 있는 중량문명에서는 임직원수와 자산이 중요하였습니다. 중량문명의 기업은 IT서비스를 하기 위해서 온프레미스로 서버를 구축하고, 서버를 관리할 사람을 고용해야 했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니 사람을 관리할 HR인력을 추가로 고용해야 했습니다. 갑자기 사업이 잘 되어 서버용량을 늘리고 싶어도 중량문명의 기업들은 당장 서버를 늘릴 수 없습니다. 서버를 추가할 공간을 임대하고 서버를 구매하고 운영할 사람을 추가로 고용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사업이 잘되는 게 일시적인지 영속적인지 판단하기도 어려워 섣불리 투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경량문명의 기업들은 다릅니다. 경량문명의 기업들은 IT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서버의 경우 AWS 등 클라우드를 활용합니다. 매달 구독료만 지불하면 됩니다. 사업이 갑자기 잘되면 기존 1,000명의 트래픽을 100만 명으로 늘리는 것도 아주 쉽습니다. 추가 요금만 지불하면 됩니다. 서버를 직접 운영하지 않아도 되니 물리적인 시설이나 유지관리할 사람도 필요 없습니다.


경량문명의 기업들은 자신의 크기를 쉽게 늘였다 줄이는 변동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변동성은 가벼움을 의미하며, 가벼운 경량문명의 기업들은 날개 달린 신발과 모자를 착용하여 바람과 같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헤르메스처럼 더 멀리 날아갈 수 있습니다.




요새는 법률 자문 의견서를 작성하는데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습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AI를 활용하여 초안을 잡습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AI가 작성한 의견서를 실제 법령 및 실무례에 맞게끔 다듬으며 회사의 사업 특성을 고려한 결론을 도출하면 됩니다. 초안부터 작성해야 했던 때와 비교하면 꽤 빨라졌습니다. 때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쟁점을 AI가 알려줄 때가 있어 그 효용은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AI에 대한 경의(敬意)는, 경외(敬畏)로 다가왔습니다.


일하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 한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회사 내에서 누군가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동법의 발전은 언제나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최근 노동법적 화두는 플랫폼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지입니다. 배달기사의 업무시간은 측정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배달기사를 보호할 사업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은 배달기사의 건강을 위해 근로시간을 보장하고 싶어 합니다. 플랫폼노동자를 포함한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유럽, 미국, 한국 등에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적 논의가 의미 있을지 의문입니다.


작년까지 인공지능의 IQ는 100 정도였다고 합니다. 올해는 130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괜찮네'라고 생각했던 AI가 이제는 '나보다 나은데'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전속도를 보건대 앞으로 AI는 대부분의 인간보다 나은 지능을 가질 것임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한발 양보해서 인간노동자들을 고용하고 근로시장을 보장한다고 해도 이러한 경쟁력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노동자는 각종 노동법령에 의해 보호받기 때문에 쉽게 줄이지도 못할뿐더러 새로운 인력을 채용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새로운 인력이 유입되면 회사 문화가 변화되고 기존 인력과의 갈등이 일어나는 등 많은 인력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기 않습니다. 또한, 네이버, 카카오 등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대기업 대부분은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한국 자동차 회사의 경쟁자는 일본의 도요타, 미국의 테슬라, 중국의 샤오펑 등 각 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들입니다. 샤오펑이 인간노동자를 줄이고 AI에게 상당량의 업무를 맡김으로써 생산성과 효율성을 늘리고, 비용을 절감하고 그것이 차량의 품질과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된다면, AI 대신 인간노동자를 활용하는 한국의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경량문명의 기업들은 인적으로도 더 가벼워집니다. 사람을 굳이 이용할 필요가 없다면 AI를 더욱 과감하게 사용합니다. AI를 사용하니 업무의 효율성도 극대화됩니다. AI는 인간과 같이 휴식시간을 보장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 회사에 근로자지위확인, 통상임금 등 소송을 거는 리스크도 없습니다.


남은 인간노동자들은 AI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일을 기획하거나 프로세스화 되지 못하는 일입니다. AI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인간은 소수가 될 것이며, 어쩌면 미래에는 CEO 조차도 AI로 대체되어 인간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초경량문명의 기업도 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합해 보면, 경량문명이라 함은 가벼워진 기업을 의미합니다. IT기술 및 AI의 활용 등으로 물적, 인적 자원이 가벼워집니다. 가벼워진 만큼 의사결정, 내부 프로세스, 조직운영의 연결성이 쉽고 빨라집니다. 그렇게 경량문명의 기업들은 생산성과 효율성이 극대화됩니다.




지금은 편하게 사용하는 AI. 아직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기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제나 미래를 반 발자국 앞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경량문명은 이제 막 태동한 단계입니다. 아직은 새벽녘이라 모든 사물들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이 어둠이 경량문명의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경량문명이 높게 떠올라 세상을 환하게 비출 때는 이미 늦게 됩니다.


"당신의 직업은 안녕하십니까?"


적어도 변호사라는 직업은 안녕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법령과 판례는 공개를 기본으로 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어야 법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개된 정보를 학습하는 것. AI가 가장 잘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AI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법률리스크를 검토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최신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종이공장에서 열심히 일한 제지전문가 만수가 다시 제지 공장에 취업하여 직업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룹니다. 한 자리 남은 취업의 기회. 종이업계가 망하든 말든 만수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찌 되든 그 자리는 내가 차지할 것이라고 외치는 만수의 모습은 경량문명에서 중량문명의 직업을 갖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우리의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일 것입니다.


경량문명은 피할 수 없습니다. 생산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물론 지금은 AI보다 의견서를 더 잘 쓸 수 있습니다. 주변 동료보다도 운이 좋아 경량화되어 가는 기업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취업할 시기는 어떻게 될까요?

대학교 입학, 로스쿨 입학, 취업에서 우리가 경쟁한 건 오직 인간뿐이었습니다.


경량문명의 시대 우리의 경쟁자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학습하고 업그레이드하여 결국은 인간을 아득히 초월할 AI입니다.


요새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는 도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도배는 AI에 침투당하지 않고 기계에 의하지도 않고, 오로지 인간의 손에 의해서만 할 수 있기 일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로봇과 같은 기계에 AI가 탑재되면 지식노동자만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도배와 같은 육체노동자 역시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청소부가 집에 오지 않고 로봇청소기를 쓰는 것처럼요.


경량문명의 시대 대부분의 인간은 직업이 없을 것입니다.

직업이 없으면 돈을 벌 수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결국, 경량문명은 생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를 대출 없이 산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당장 직업을 잃게 되면 아파트 대출은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요. 대출을 갚지 못하며 은행은 저당권을 실행하고 경매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직업이 없기 때문에 경매로 싸게 나온 집조자도 살 수 없습니다. 몇 차례의 유찰 후 아주 낮은 가격에라도 팔리면 다행입니다. 그렇게 한순간 집 값이 폭락할 수 있다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그려지기도 합니다.



저는 몹시 불안합니다. 안녕하지 않습니다.

경량문명의 시대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기본소득이 본격화되어 최소한의 삶은 보장될까요.

현재에도 상당수 직장인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의 재정인데, 세금을 낼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아직은 답을 찾지 못했지만, 경량문명의 탄생을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저 역시도 송길영 작가에 이어 경량문명의 탄생을 "선언"합니다.


이 불안과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쳐 보겠습니다.

어쩌면 그 답은 사람의 온기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경량문명의 시대, 부디 각자 잘 살아남아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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