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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llflower Aug 30. 2017

<공범자들>이 두려운 이유

우리의 순진함에 대하여

 상식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서술돼 있다.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분별 따위. 그러니까 상식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합의해 놓은 선(Line)이자, 사회에 기대하는 최후의 선(善)이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결코 깨지지 않으리라 믿는 것.


 우리나라는 작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아주 긴 시간 동안 촛불로 넘실댔다. 각자의 구호는 조금씩 달랐을 지도 모르나, 하나는 같았다. 누구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그에 응당한 벌을 받기를, 정당하지 않은 대가를 가져 간 사람들의 죄를 묻기를 바랐다. 그리고 대통령은 파면됐다.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우리는 이 공을 법이라는 최소한의 상식으로 넘겼다. 누구에게라도 공정할 것을 천명한 디케의 저울을 믿으며.


정의의 여신 디케. 저울과 칼을 들고 있다.




어쩌면 비상식이 승리할 지도 몰라

  그러나 나의 이 당연한 상식에 균열이 간 건, 전 대통령의 재판 방청을 갔을 때였다. 지난 5월이었다. 바깥은 뜨거웠다.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가 탄생했다. 딱히 무언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은연 중 나는 피고인이라는 신분이 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그 일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리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곳은 밖과 사뭇 달랐다. 나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두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었다. 그들은 전 대통령이 등장하면 통곡하기도 했다. 변호인들은 어땠나. 전 대통령이 다가오면 90도로 인사하며 의자를 빼주는 모습이 나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더욱 이상했던 것은 뭐랄까. 이 사태의 거대함이랄까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것 같은 피고인들의 모습이었다. 천장을 연신 쳐다보고, 하품을 하던 피고인들의 모습. 이 재판이 자신의 재판이라고 생각지 않는 것 같은 그 여유로움. 안과 밖의 그 괴리감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잘잘못을 가리려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냥 그저 무서웠다. 그들은 아직도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은 정말 승리할까? 우리의 상식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맹목적인 비상식이 승리할 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




영화 <공범자들>의 포스터.

 

두려움은 허상이 아니다

 영화 <공범자들>. 내 두려움은 허상이 아니다. 지난 10년 간 그들이 믿는 상식, 그러니까 비상식은 계속해서 현실로 이루어졌다.


 어떤 사람이 해고됐고 감봉됐으며 부당 전보가 되었는지에 대해 말하려는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출한 정부가 그 권력을 언론을 탄압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한 영화다. 정부를 감시하는 자리에 정부를 찬양하는 프로그램이 들어왔다는 사실도, 정의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언론의 기본인 사실을 전달하려던 사람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다는 것도 기록하려는 영화다.

 

이 기록들은 얼마나 비상식적인 이야기들인가? 그러나 지난 10년간 이 이야기들은 모두 현실이 되었고,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공범자들> 이라는 영화가 바라는 최소한의 목표였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계몽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기록할 수 있을 때 기록해두는 것 말이다.






우리의 순진함에 대하여

  그들은 비상식에 기대어 있다. 우리가 천진난만하게 상식이 실현되길 소망하고 기다리고, 믿는 동안 그들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비상식을 밀어붙인다. 아니, 그럴 지도 모르고 그럴까봐 두렵다. 탄핵 절차를 밟았으니 그 이후에는 최후의 선을 믿어봐야지, 기대해봐야지, 우리가 그렇게 순진하게 있는 동안 또 다시 상식은 뒤집힌다. 아니 뒤집힐 것이다.


 왜냐. <공범자들>이 변하지 않은 결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행사에 참석한 공영방송의 사장들은 지루한 얼굴로 하품을 한다. 기자의 취재에 피하거나 누구에게 그를 막으라고 하지도 않는다. 무척이나 여유로운 이 모습들은 내가 재판에서 목격한 모습들과 오버랩 된다. 그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믿고 있다. 비상식은 여전히 살아 있다.


 영화의 마지막, 이명박 전 대통령을 찾아간 최승호 기자에게 던져진 질문은 이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에 있나?"
"저 뉴스타파에 있습니다."
"그렇구만."



 그렇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범자들>을 보고 내가 절대 절망하지도, 좌절하지도 않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여기에 있다. 바쁘고 지친 현실의 삶을 살면서도 더욱 눈을 똑바로 떠야겠다고, 절대로 눈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다. 최후의 선마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지금 오늘, 우리와 함께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브런치에 정치적 색깔을 담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는 좌우의 문제도, 당파의 문제도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잘못된 일을 한 이는 벌을 받아야 하고, 그 잘못에 최소한 송구스러워해야 한다. 이 간단한 상식조차 부수고 말 것인가? 나는 되묻고 싶다.


 2017년 8월 25일.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1심 선고가 났다. 그의 형은 5년형이다. 나는 두렵다. 특정인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이 결과가 퍼지고 퍼져서, 우리가 여전히 순진한 사람들로 남아 있을까봐 두렵다. 이 와중에 8월 27일. 해직됐던 YTN 기자 3명이 3천 2백 49일만에 복직했다. 이 소식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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